
이로운넷 = 이수진 에디터
부산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약 성안을 목표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국가별 입장 차이가 부각되고 석유화학 업계 로비스트들의 대거 참가로 협상 과정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 플라스틱 협약 첫날부터 입장차 첨예… 희망과 난관 공존 '빨간불'
25일 시작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목표로 첫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국가별 입장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며 협상 과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세계 최대 환경단체인 세계자연기금(WWF)은 협상 첫날 회의 진행 상황을 평가하며 일부 주요 쟁점에서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WWF는 이번 회의 옵저버로 참여하며, 협상 진행 과정을 빨간불, 주황불, 노란불, 파란불로 매일 평가하고 있다.
첫날에는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INC 의장이 제안한 '논페이퍼'가 공식 문서로 채택되며 협상의 출발점이 마련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르완다, 사모아, 노르웨이, 브라질, 영국, 미국 등 다수의 국가가 논페이퍼 채택을 지지하며 협상 진행을 촉구했지만, 아랍국가연맹과 유사 입장의 일부 국가들은 협상을 지연시키는 발언을 반복하며 논의의 속도를 늦췄다.
WWF는 협상 주제 중 '무독성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약한 조치에 그쳤다며 빨간불로 평가했으며, 특정 플라스틱 제품 및 유해 화학물질의 단계적 금지 논의는 주황불로 평가했다. 재원 확보와 이행 조치를 위한 의사결정 구조 확립은 노란불에 그쳤다.
프라산나 드 실바 WWF 부문장은 "협상 첫날은 인간의 탐욕과 같은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희망적인 긍정의 면도 드러낸 날이었다"며, "2024년에는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며, 대다수 국가들이 보여준 행동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발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 석유화학 로비스트 최다 참가...협상 압력 우려 "강력한 협약 필요"
이번 INC-5에는 역대 최다인 220명의 석유화학 및 화석연료 업계 로비스트가 참가해 협상 과정에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제환경법센터(CIEL)에 따르면, 이는 지난 4차 INC 때의 196명보다 12% 증가한 수치로, 한국 정부대표단(140명)이나 유럽연합(EU) 및 회원국들의 대표단(191명)을 합친 인원보다도 많다.
CIEL은 "화석연료와 화학산업 로비스트를 합치면 INC-5에서 가장 큰 단일 대표단이 될 것"이라며, 중국, 도미니카 공화국, 이집트, 핀란드 등 일부 국가 대표단에 포함된 로비스트도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다국적 화학기업 '다우'와 석유·천연가스 기업 '엑손모빌'은 이번 협상에 참석한 대표적인 석유화학 기업으로, 이들이 협상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린피스 대표단장 그레이엄 포브스는 "화석연료 및 석유화학 업계의 로비스트들은 협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려 하고 있지만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산 감축이 필수적"이라며, "유엔 회원국들은 협상에서 특정 산업의 이익보다 우리의 건강, 지역 사회, 생물다양성 및 기후를 우선시하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그린피스는 성명서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특정 국가나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들의 목소리가 협상에서 반영되도록 해야 하며, 산업 로비스트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강력한 협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유화학 업계 로비스트의 영향력이 협상에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환경 보호를 둘러싼 논의는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 맹탕 협약 우려 속 협상 진전 가능성... 국제사회 기대감 고조
26일 늦게, 참여국들은 논페이퍼를 기반으로 협상을 이어가기로 합의하며 협상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논페이퍼는 77쪽에 달하는 기존 협약 초안을 17쪽으로 간소화한 문서로, 협상의 촉진을 목적으로 작성됐다. 하지만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같은 핵심 쟁점이 빠져 있어 "맹탕 협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환경단체들은 플라스틱의 생애 전 주기를 다루고, 재사용 목표 설정, 일회용품 금지, 오염자 부담 원칙, 정의로운 전환 등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INC-5는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된다.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약이 이번 회의를 통해 성사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협상 막바지까지 치열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