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이화종 기자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 동반자'라는 표현으로 관계를 과시하면서 '한쪽이 무력침공을 받을 시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조약을 맺었다.

북한의 조선 중앙통신은 지난 20일 전날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합의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전문을 공개했다.

통신에 따르면 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일성 집권기인 1961년 맺은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의 제 1조와 거의 유사한 내용이다.

이 조약은 "체약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련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유엔헌장 제51조와 양측의 법에 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점이다.

유엔헌장 51조는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국제연합회원국에 대하여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지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살얼음판 같던 냉전시대의 조약에 비해서는 다소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겠다는 조심성이 읽히는 대목이다.

◆ 조약은 조약일뿐···이해관계가 틀어지면 언제라도 버려지는 종이조각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대한 용산의 반응은 지나치게 거대어 보인다.

이번 북·러 조약은 지난 2023년 8월 18일 캠프 데이비드 회의실에서 윤석열·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체결한 '3국 협의에 대한 공약'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이다.

3국협의에 대한 공약에는 '대중 견제 공조' '대북 방어 협력'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 제제 공조' '공급망 정보 공유' 등 실질적으로 북·중·러에 피해를 주거나 전략적 압박을 행동들이 군사·외교·경제 전반이 포함돼 있고 실제로 행사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전쟁이라도 불사할 기세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호후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이사회의(NSC)에서 "엄중한 우려를 표하며 이를 규탄한다"라면서 강경한 입장을 냈다.

장 실장은 "6·25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먼저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전력이 있는 쌍방이 일어나지도 않을 국제사회의 선제공격을 가정하여 군사 협력을 약속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책임과 규범을 저버린 당사자들의 궤변이요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성명을 통해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어떠한 협력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의 위반이며, 국제사회의 감시와 제재의 대상임을 분명히 강조한다"라며 "특히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제재 결의안을 주도한 러시아가 스스로 결의안을 어기고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우리 안보에 위해를 가해오는 것은 한-러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북·러조약은 장실장이 지적한데로 '선제공격을 가정한 당사자들의 궤변'일 뿐이다.

그렇지만 공격을 받기 전에 '적 기지 선제 타격'을 하겠다는 일본이나 유사시 '참수작전'을 펼치겠다는 목적으로 한·미 특수부대원들이 켈리포니아에서 훈련을 실시한 것에 비하면 여전히 수위가 낮다.

문제는 동북아 5개국 정상이 모두 극단적인 환경에서 대통령실이 예민할수록 외교부가 나서서 긴장을 늦추고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의 외교부에게는 역할을 기대하기는 커녕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 예산 부족으로 가계약 상태에서 머물고 있는 폴란드 K-2전차, K-9자주포 수출계약 / 사진 = 현대로템 제공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 예산 부족으로 가계약 상태에서 머물고 있는 폴란드 K-2전차, K-9자주포 수출계약 / 사진 = 현대로템 제공

◆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준다?···폴란드와의 K-2, K-9 방산 계약 진행이 더 효과적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까지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의 고대 법전에서 가장 유명한 법문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일 것이다.

얼핏 보면 보복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보복을 통제하는 법이다. 상해를 입힌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상해로 벌할뿐 목숨까지 취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북·러조약이라는 외교적 행보를 도발로 간주한다면 역시 우리도 외교적인 방법으로 보복을 해야 한다. 

푸틴과 김정은은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덕담이나 하고 종이에 서명을 하는 정돈데 우리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에게 실제 무기를 지원하는 실물을 동원한다면 러시아나 북한이 더 큰 규모, 더 위험한 방법으로 도발할 명분만 주는 것이다.

관계 개선을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반대로 가는 외교가 외교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K9A1 자주포 / 사진 = 한화디펜스 제공
K9A1 자주포 / 사진 = 한화디펜스 제공

오히려 러시아에게 자극을 주려면 지난 2022년 방산계약 가계약을 맺은 폴란드와의 K-9 수출계약을 조속히 진행해서 폴란드의 대러 방위능력을 올려주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1000대의 기본계약중 180대만 이행된 K-2전차의 협의를 가속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방 확장을 꿈꾸는 러시아에게는 실질적 압박이 되면서 우리는 방산계약을 마무리하고 K-2 전차와 K-9 자주포들을 납품하면서 실익을 얻을 수 있다. 

더우기 폴란드와 러시아는 교전 중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러시아의 선택지가 더 적어진다. 양국 간의 거래에 러시아가 개입할 명분도 없다.

이 계약은 수출입은행의 지원 예산이 부족해지면서 가계약 상태에서 지지부진 하고 있는 상태다.

채산성 없다는 보고까지 있는 해저 유전을 파는데는 돈이 아깝지 않다는 정부가 확실하게 이익이 보장되는 방산계약에는 돈이 없다는 모양새가 됐는데 이참에 무리를 해서 계약을 진행시킨다면 방산업체도 용산도 윈윈하는 결과도 기대된다.

반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할 경우 사실상 전쟁에 참여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데다 수주를 처리하는 것이 아닌 '지원'이기 때문에 어떤 실익도 기대하기 어렵고 인명을 살상하는 결과에 관여해서 생긴 앙금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