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파도는 휩쓸리는게 아니라 그 파도를 타고 함께 넘어야 한다./이미지=Thomas Ashlock on Unsplash

십년도 더 전에 난생 처음 글로벌 비즈니스 컴퍼티션에 참여했습니다. '리콴유 글로벌 비즈니스 컴퍼티션'이라는 대회였죠.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의 이름을 딴 만큼 전세계에서 다양한 참여자들이 지원하였고, 대회에 투자한 규모도 꽤 컸습니다. 당시 저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력서에 한 줄 채우려는 빈곤한 시도 정도였던 터라 결선팀에 당선된 것만으로 매우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결선은 6팀이 싱가포르로 초대되어 일주일간 진행되었습니다. 결선팀 모두 수상이 예정되었기에 비행기를 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도착한지 이틀 째,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장관이 두명이나 배석하고 수십명의 엔젤들이 참석하거나, 가장 좋은 호텔에서 진행된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저에게 가장 큰 충격은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5팀이 모두 '소셜벤처'였다는 점입니다. 중국 농민들에게 적정주택(affordable housing)을 제공하고, 미국 교도소에서 약물 오남용과 투약사고를 방지하며, 내구도를 다소 희생하는 대신 가격이 매우 낮은 인공연골을 만드는 등의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막 생겼기에, 대다수 국민들이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네이버에 ‘사회적기업’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기업 A…’ 같은 내용만 나오던 때입니다. 심지어 해당 대회는 소셜벤처 대회도 아닌, 일반 벤처 대회였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뛰어난 청년들은 이미 자신들의 창업과 진로에 소셜벤처를 선택지로 놓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사실이 큰 충격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느껴지는 사회적기업 혹은 임팩트 비즈니스 활성화 속도와 글로벌에서 느껴지는 그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창업한 뒤에 뉴욕에서 열리는 한 서밋에 참여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영 전략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이클 포터 교수는 발제 중에 자신이 감명받은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줬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4학년 수업을 하던 중, 학교 요청으로 학생들에게 '졸업 뒤에 어디에 취업하고 싶은지' 설문을 했습니다. 당시 은퇴를 앞둔 시기라 요즘 대학생들이 어디로 가는지 저도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과거처럼 맥킨지나 골드만삭스 같은 곳들일지, 아니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현대 주역들일지 말입니다. 놀랍게도 학생들의 선택은 TFA(Teach For America)였습니다. TFA는 일종의 '비영리형 사회적기업'으로 현대적 야학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서밋에서 발표를 하던 마이클 포터 교수는 당시 감격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렸고, 이 내용을 들은 초거대 기업의 경영자들은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제 옆에 앉았던 델(DELL)의 한 임원은 ‘자랑스러운 미국’을 외치더군요. 프린스턴 대학생들의 선택도, 노교수의 감격도, 대기업 경영자들의 기립박수 어떤 것도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반응들이라 더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변화하고 있습니다. 수백개의 소셜벤처가 매년 도전하고, 정부의 모태펀드가 임팩트 투자에 지원되며, SK 등 대기업이 관계사 KPI에 50%를 사회적 가치로 하겠다고 말합니다. 뒤늦게 받아들여도 빠르게 배우고 따라잡는게 우리나라 특징인 만큼,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는 알 수 없어도 이 흐름은 곧 국내에도 다다를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사회의 본질적인 가치를 변화시키에 불가역적입니다. 이 일을 겪지 않았던 시절로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죠. 저는 이런 종류의 경험을 했던 선배들을 여럿 압니다. 바로 IT 붐이 일어났던 시대에 창업을 경험한 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말을 빌려 이런 변화를 바라보고 또 간헐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분들에게 제안합니다. 이런 큰 파도는 휩쓸리는게 아니라 그 파도를 타고 함께 넘어야 합니다. 꼭 큰 성공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 편이 더 좋은 속도와 더 넓은 광경을 제공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더 즐거운 경험이 되는 길을 선택해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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