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더 늦기 전에... 끝까지 싸워달라.’ 김복동 할머니를 기리며
[기자수첩] ‘더 늦기 전에... 끝까지 싸워달라.’ 김복동 할머니를 기리며
  • 박재하 에디터
  • 승인 2019.01.3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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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홈페이지
사진출처.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홈페이지

“이제 살아계신 생존자 분들은 23명... 시간이 정말 남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알린 위안부 피해자이자 전쟁 없는 세상을 호소하며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연대한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오후 별세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학생, 시민들과 수요 집회에 참여하며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했지만 끝내 사과받지 못했다. 같은 날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신 이모(94세) 할머니도 노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 할머니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통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알린 1992년 이래로 일생을 일본군의 악행을 알리는데 온 힘을 다했다. 1993년, 세계인권대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직접 증언했고 2000년에는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에 출석해 위안부 실상을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는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또한 암 투병 중이던 지난 2015년에는 박근혜 정부에서 통과시킨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이를 무효화하고자 미국과 유엔을 오고 가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국경없는기자회와 프랑스 AFP 통신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으로 김복동 할머니를 선정했다.

그래서일까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자 하는 추모 행렬이 시민사회부터 정계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김 할머니의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 강경화 외교부 장관, 각 정당의 대표, 영화계 인사(김복동 할머니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이었다.) 등의 조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30일 오후, 수요정기집회에는 김 할머니를 추모하고자 4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단 23명.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들의 한을 풀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15년 한·일 합의 당시 여당의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이었던 A 국회의원이 김 할머니 빈소에서 "당시 위안부 합의는 외교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따위의 말을 하는 것만 봐도 그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있다. 증인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범죄자들의 반성과 사과는 더욱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 달라.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의 지원을 끝까지 해달라"는 김 할머니의 유언에 "더 늦기 전에 강력하게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화답은 말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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