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남은 생존자 20명, 미래세대가 기억할 이름 ‘김복동’
[리뷰] 남은 생존자 20명, 미래세대가 기억할 이름 ‘김복동’
  • 이로운넷=양승희 기자
  • 승인 2019.08.06 03: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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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 故김복동 27년 투쟁 담은 다큐
전 세계 돌며 피해 사실 증언, 日정부에 사과‧배상‧교육 요구
“힘닿는 데까지 싸우겠다” 의지…한지민‧윤미래 기억 다짐해
영화 '김복동'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27년간 투쟁한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 운동가 김복동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 '김복동'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27년간 투쟁한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 운동가 김복동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나이는 구십넷, 이름은 김복동.”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언뜻 평범해 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 및 평화 운동가로 살 수밖에 없었던 굴곡진 삶을 들여다보면, 그 이름이 다르게 읽힌다. 김복동이라는 사람을, 아픔을,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뜨겁게 올라온다.

영화 ‘김복동’은 위안부 피해자 故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1992년 3월 피해 사실을 고발한 뒤부터 2019년 1월 28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투쟁한 27년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전 세계를 돌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 역사 교육 등을 요구해온 할머니의 발자취가 담겼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4세이던 1940년 ‘군수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위안소로 끌려갔다. 이후 8년이나 고통의 세월을 보낸 뒤 1948년 광복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온다. 가족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제대로 털어놓지 못한 김 할머니는 40년간 부산에서 숨죽여 산다. 1991년 故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를 신고한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그는 이듬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여해 발언하는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여해 발언하는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

‘김복동’은 위안부로 겪은 피해 사실에 관한 증언 그 자체보다는 사과 없는 일본을 향한 고발과 전쟁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김 할머니의 다양한 행적들에 방점을 찍었다.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부정하고 망언을 일삼는 아베 총리,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등 일본 정치인을 향해 김 할머니는 “내가 바로 증거이자 증인”이라며 맞선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서도 김 할머니는 중심적 인물로 활동한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나 눈비가 쏟아지는 한겨울에도 할머니는 항상 집회 현장에 나가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또 촉구한다. 1992년 1월 시작된 집회는 현재 1400회에 육박했고, 단일 주제 중 세계 최장기 시위라는 슬픈 기록도 세웠다.

결론이 나지 않는, 기약이 없는 긴 싸움을 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김 할머니는 “내 힘닿는 데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며 투지를 불태운다. 일본 정부가 역사를 부정하고 교과서에서도 감추니, 김 할머니는 직접 일본을 찾아 젊은이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다. 미국, 유럽 등 전 세계를 다니면서 국제사회의 지지와 관심을 호소한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미국, 유럽 등을 돌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사과를 촉구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미국, 유럽 등 세계를 돌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사과를 촉구했다.

목숨을 건 투쟁에 돌아온 건 다름 아닌 ‘조국의 배신’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한일 합의’에 따라 위안부 문제 종결을 선언한다. 피해 당사자를 제외하고 일본과 일방적으로 맺은 굴욕적 합의였다. 아베 총리는 이때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마디조차 건네지 않았다. 합의에 따라 세워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위해 김 할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을 때조차 거리로 나와 1인 시위를 했다.

피해자들이 진정 바라는 건 알량한 돈 몇 푼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사과의 말 한마디다. “이미 용서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할머니들의 마음에 일본 정부는 끊임없이, 지금까지도 비수의 화살을 꽂는다. 위안부 피해자를 대하는 아베 정부의 뻔뻔한 태도를 보고 있자면, ‘편의점에서 일본 맥주 캔을 좀 더 빨리 내려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 4일 한 분이 별세하면서 이제 국내 위안부 피해 생존자 할머니는 단 20명이다. 삶 그 자체가 증거인 이분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 정부는 공식 사과, 법적 배상, 역사 교육을 약속할까? ‘김복동’은 일본이 이를 전부 외면하더라도, 할머니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미래 세대들이 끝까지 맞서야 함을 말해주는 듯하다.

“다시 태어나면 엄마가 되고 싶다”던,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꿈꿨던 김 할머니.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김복동이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 ‘김복동’을 통해 그런 관객들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배우 한지민의 내레이션과 가수 윤미래의 노래가 그 다짐을 더한다. 오는 8일 개봉.

김복동 할머니는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거리로 나와 투쟁을 이어갔다. 한일합의 무효,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을 위해 눈을 감기 전까지 싸웠다.
김복동 할머니는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거리로 나와 투쟁을 이어갔다. 한일합의 무효,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을 요구하며 눈을 감기 전까지 싸웠다.

사진제공.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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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2019-08-06 14:09:58
기사 정말 잘 봤습니다. 댓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