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학교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1년의 휴학을 의결한 15일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림대학교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1년의 휴학을 의결한 15일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로운넷=이정석 기자) 27년 만의 의대 증원 추진에 의료대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공의 사직이 잇따르고, 일부 의대에서는 동맹휴학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후폭풍이 강하게 일고 있자 환자단체는 정부와 의사단체와의 강대강 대치를 멈춰달라고 호소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혹시나 하며 지켜봤던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집단 반발이 15일부터는 릴레이 사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의료 현장의 중추적 역할을 맡은 전공의들의 집단 반발이 예상되면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이 사직서를 제출해 파장이 예상된다.

대전협 박단 회장은 15일 페이스북에 "잃어버린 안녕과 행복을 되찾고자 수련을 포기하고 응급실을 떠난다"는 글을 올렸다.

박 회장은 "생사의 경계에 놓인 환자를 살려 안도를 느낀 적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병원서 근무한 지난 3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고 불행한 시기였다"고 토로했다.

이어 "죽음을 마주하며 쌓여가는 우울감, 의료 소송에 대한 두려움, 주 80시간의 과도한 근무 시간과 최저 시급 수준의 낮은 임금을 더 이상 감내하지 못하겠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오는 20일 사직서를 제출할 예정이며 수련계약서에 따라 인수인계 차질 없도록 다음 달 20일까지 30일간 병원서 성실히 근무한 후 세브란스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제나 동료 선생님들의 자유 의사를 응원하겠다"며 "부디 집단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달라"며 당부도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피해 사직서를 제출하는 꼼수라는 의료계 안팎의 시선도 잇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회피하려는 꼼수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검토하고 있다"며 "의사단체는 명분 없는 불법 파업 논의를 중단하고 환자를 살리는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라"고 말했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생들의 집단 반발도 시작됐다. 한림의대 비상시국대응위원회는 의과대학 4학년 학생들이 의견을 모아 집단 휴학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1년간의 학업 중단으로 이 의료 개악을 막을 수 있다면 1년은 결코 아깝지 않은 기간임에 우리는 동의했다"며 "전국 의과대학 학우 여러분, 우리의 휴학이 동맹휴학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 13일 유튜브에는 자신을 대전성모병원 인턴이자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전공의(레지던트)가 될 예정이라고 밝힌 의사가 "의사에 대한 시각이 적개심과 분노로 가득한 현 상황에서 더는 의업을 이어가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며 사직하겠다고 밝히는 영상이 올라왔다.

실제로 해당 의사는 전날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병원 측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에 반발해 단체행동을 논의했던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대한의사협회(의협)에 이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된 13일 서울 한 대학병원 의과대학 앞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에 반발해 단체행동을 논의했던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대한의사협회(의협)에 이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된 13일 서울 한 대학병원 의과대학 앞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 '의대 증원 반발' 전공의 집단행동 자제 촉구

정부는 "법과 원칙에 입각한 대응"을 거듭 천명하면서도,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등 의료계 달래기에도 나서고 있다.

정부는 "의사 면허 취소" 엄포에 이어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와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리는 등 강경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이날 전공의들이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해도 집단행동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별성을 띤다고 해도 사전에 동료들과 상의했다면 집단 사직서 제출로 볼 수 있다"며 "개별 병원에서는 사직서를 받을 때 이유 등을 상담을 통해 면밀히 따져 개별적인 사유가 아닌 경우 정부가 내린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날 의료계의 반대가 심한 '비대면 진료 전면 확대'와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활용' 방안을 거론하며 의료계를 압박하고 나선 상태라 강대강 대치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환자단체 "고래싸움에 등 터져…정부·의사 강대강 대치 멈춰야"

문제는 의료 소비자인 환지들이다. 환자단체들은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형국"이라며 정부와 의사들이 '강대강 대치'를 멈추고 대화와 해결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한국루게릭연맹회 등 6개 중증질환 관련 단체는 15일 의사들의 단체행동으로 우려되는 의료 공백에 대한 입장문에서 "중증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는 정부와 의사단체들은 즉각 이 사태를 멈추고 대화와 해결책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와 의사단체가 환자 피해의 책임을 서로 상대측으로 전가하며 누구도 환자에게 진정성 있는 양해를 구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증질환 환자와 가족들은 의료현장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양측의 극단적 대립구도 속에서 극도의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며 좌불안석이다"고 호소했다.

단체들은 지난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당시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에 나섰던 것을 들었다.

이들은 "당시 합의로 현안을 해결할 기구가 출범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의대 증원에 대한 어떤 합의점이나 합리적 대안도 없이 환자들만 피해를 볼 극단적인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해 정부·의사단체 양측이 공동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중증 환자들에게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의사 단체는 물론 협상의 노력이나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보건당국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발단은 정부가 내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천명 늘리기로 하면서다.

의대 정원 확대가 제주대 의대가 신설됐던 1998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의대 증원은 27년 만에 이뤄지는 셈이다.

당시 의대 정원은 3507명이었으나, 2000년 의약분업 때 의사들을 달래려고 감축에 합의해 2006년 3058명이 됐다. 이후 동결돼 왔다.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증원 규모는 올해 정원의 65.4%에 달한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이런 내용의 2025학년도 입시 의대 입학정원 증원 규모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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