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세민(왼쪽) 강원대 의대 학장, 유윤종 의학과장이 5일 강원대 의대 앞에서 대학 측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 신청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강원대 의대
류세민(왼쪽) 강원대 의대 학장, 유윤종 의학과장이 5일 강원대 의대 앞에서 대학 측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 신청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강원대 의대

이로운넷 = 이정석 기자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등 무더기 징계에 나선 가운데, 그동안 전공의가 떠난 자리를 채우던 전임의마저 떠날 움직임을 보이자 의료 현장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강원대 의과대학 교수들은 5일 오전 강원도 춘천 강원대 의과대학 앞에서 삭발식을 하고 대학 측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 결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강원대는 2024학년도 49명인 의대 정원을 140명까지 늘려달라는 의대 정원 신청안을 전날 교육부에 제출했다.

삭발에는 류세민(흉부외과 교수) 의대 학장, 유윤종(이비인후과 교수) 의학과장이 참여했다. 박종익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승준 호흡기내과 교수가 동료의 머리를 밀었다.

류 학장은 "지난해 11월 개별 의과대학의 희망 수요조사에서 학장단은 2025년 입학정원 기준 100명을 제출했다"며 "하지만 대학본부는 4일 교수들의 의견과 반대로 일방적인 140명의 증원 규모를 제출함으로써 학생들이 학교에 돌아올 통로를 막았다"고 전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개별 교실의 교육역량의 실제적인 확인이나 피교육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현재 40개 의과대학이 제출한 수요조사의 총합은 정부의 2000명 증원의 주요한 근거로 둔갑해 비민주적인 정책 결정 과정에 항의하며 교정과 병원을 떠난 학생들과 전공의들을 압박하는 정치적인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원대 의대 교수들은 의대학생과 전공의들의 피해 방지와 원활한 의학교육을 위한 움직임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4일 국군수도병원 소속 군의관이 민간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자료사진=뉴시스
4일 국군수도병원 소속 군의관이 민간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자료사진=뉴시스

전임의도 이탈…의료공백 커지며 의료대란에 환자만 불안 

이런 가운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4~5일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위반 여부를 확인 중이다. 주요 100개 수련병원 가운데 전공의 수가 많은 상위 50개 병원에 지난 4일 현장점검을 마쳤고 5일 남은 50개 병원을 방문한다.

중대본이 지난 4일 오후 8시까지 신규 인턴을 제외한 레지던트 1~4년차 9970명을 점검한 결과 근무지 이탈자는 90.1% 수준인 8983명에 달했다. 중대본은 업무개시명령 위반이 확인되는 대로 3개월 이상의 면허정지 절차를 집행할 방침이다.

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대형 병원에서는 전공의 복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전임의마저 계약을 포기하고 있다. 이들 병원에서 전임의의 절반이 재계약이나 신규 계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임의는 전문의를 취득한 뒤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연구·진료하는 의사들로 통상 1년 계약을 하고, 계약이 만료되면 재계약을 하거나 본인 진로로 간다. 이들의 이탈은 본인 자유·의사이기에 정부가 별도로 행정명령을 내릴 수 없다. 

이에 따라 의료공백은 더 커지게 될 전망이다. 일부 병원에는 군의관들이 투입돼 민간인 환자들을 돌보고 있지만 결국은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만 발을 동동 구르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속속 전해진다. 의료 대란을 넘어 의료 시스템 붕괴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의대생들도 휴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일까지 정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휴학 신청은 총 5387명으로, 전체 의대생의 약 29%에 달한다.

실제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은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교육부는 휴학을 신청했지만, 요건을 갖추지 못한 휴학계는 집계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강경 일변도다. 이에 맞서 교수들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서울아산병원·강릉아산병원·울산대 의대 교수들은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정부의 사법처리가 현실화되면 스승으로서 제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경희대 의대 교수협의회·연세대 의대 교수평의회 등도 유사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가운데 교육부가 전날까지 의대를 둔 대학들에 증원신청을 받으면서 대학 총장과 의대 교수 간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3일 열린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긴급 간담회에서는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김정은 학장이 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5일 중대본 브리핑을 통해 "전임의와 교수 여러분께서 지켜야 할 가장 귀중한 가치는 바로 환자의 생명"이라며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방법이 아닌 대화를 통해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차관은 정부가 전임의와 교수 등 의료진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강조하며 "여러분들의 목소리는 환자 곁에 있을 때 더욱 강하다는 사실을 기억해달라"며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의사로 남아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정부의 전공의 복귀 데드라인을 넘긴 지난 4일, 서울 주요 병원은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며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이 언론들을 통해 전해졌다. 

환자들이 주요 병원 대신 군 병원 등 공공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치명적인 의료사고를 막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며 환자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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