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전공의 미출근에 따른 비상진료체계를 안내하고 있다. /자료사진=뉴시스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전공의 미출근에 따른 비상진료체계를 안내하고 있다. /자료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이화종 기자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수련의,인턴·레지던트) 7000여명에 대해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 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반발한 일부 전임의와 교수들도 집단행동에 동참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정부는 현장을 점검해 위반사항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할 계획"이라며 "7천여명의 면허정지 처분 절차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 8945명 가운데 7854명에 대해 소속 병원으로부터 업무개시명령 불이행 확인서를 받아내 행정처분은 예상되는 사태였다.

박 차관은 "(이번 면허정지 처분은) 불가역적"이라며 "오늘(4일) 현장 확인을 해서 부재가 확인되면 바로 내일(5일) 예고(면허정지 사전통보)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라 업무개시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최대 1년의 면허정지 처분을 받을 수가 있다. 정부도 '최소 3개월의 면허 정지 처분'을 예고했기 때문에 수련기간을 채우지 못해 전문위 취득 기간이 1년 이상 장기화될 우려도 있다.

◆ 전임의와 교수들도 집단 행동 동참···의료대란 부르는 정부의 행정 처분 돌입

노조가 없어 대정부 교섭능력이 부재한 젊은 의사들이 무더기로 면허를 정지당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에 전임의와 의대교수들까지 집단 행동에 동참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한겨레의 4일 보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각병원의 설명을 들어보니 전국 의료기관 전임의 평균 재계약 비율은 평소 2월에는 70~80%정도였으나 지난 1일 기준 30%에 불과했다.

경북대의 한 의대교수는 공개적으로 "정부는 협박만 하고 있다"라며 교수직을 그만 두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충남대 의과대학 교수와 충남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교수도 지난 1일 성명에서 "전공의에게 무리하게 사법절차를 진행한다면 절대로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소속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집단행동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4.6%가 전공의 면허정지 등 사법 조치에 대해 집단행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431명 재직 교수 중 293명이 참여했다.

권태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장 / 사진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권태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장 / 사진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 권태환 경북대 의대 학장 사퇴···홍원화 총장의 의대 300정원 확대 항의

권태환 경북대 의대 학장은 홍원화 경북대 총장에게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대규모 의대 증원을 하면 교육이 어려워진다"는 취지의 항의 메세지를 보내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지난 2일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언론 인터뷰에서 홍 총장은 "(경북대 의대) 신입생 정원을 250~300명으로 늘려 달라고 교육부에 전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홍 총장은 "경북대의 경우 의대 교수 55%가 증원에 찬성하는 상황"이라며 "1981년만 해도 한 학년 정원이 240명이었다. 그 시절 많을 때는 300명을 대상으로도 수업을 했으니 정원을 늘려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라고도 말했다.

경북대의 현재 의대 정원은 110명인데,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를 정부 수요 조사에 제출할 계획을 공개한 것이다. 그러나 경북대에는 이정도 규모 인원을 수용할 교실도 없다고 한다.

권 학장은 "의대 교수 55%가 증원에 찬성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일부 교수들이 회의에서 '현재 교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인 125명(15명 증원)까지 일단 받자'는 의견을 냈을 뿐인데, (홍 총장은) 마치 55%가 대규모 증원을 찬성하는 것처럼 말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학본부는) 교육부로 보내는 서류 제출을 보류하거나, 현행(110명) 동결 혹은 의대 학장협의회에서 요청한 10% 증가 폭 안에서 제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 학장은 "내가 82학번이어서  정확히 아는데, 당시 경북 의대 정원은 160명이었고, 정부가 30%를 추가해 208명이 됐다"라며 "240명이라는 숫자 자체도 오류이지만, 당시와 현재 의과대학 교육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원이 대폭 늘면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기준을 못 맞춰 폐교될 학교들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된다"라고 우려했다.

경북대 뿐 아니라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도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각 학교 총장에게 "3월 4일까지는 제출할 수 없다"라며 답변을 제출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의대 정원 수요는 대학의 교육역량 평가, 의대 교수들의 의견 수렴 등의 절차가 필수적이지만, 교육부가 정한 시한까지는 이런 절차를 밟을 시간이 없다"라며 "정부 정책에 동조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미래 발전에 걸림돌이 되게 했다는 원성을 듣는 총장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성명에는 전국 40개 의대중 33개 의대 교수협의회 및 교수평의회가 이름을 올렸다.

◆ 의학계 "의사들에게도 노조 필요"···조선일보 "절차 지키는 파업권 주는게 낫지 않나"

전공의 파업은 정부와 의대에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주지 않아 다소 성급한 감이 있긴 했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었다.

현 시점에서도 전공의가 전임의를 거쳐 교수가 되는 길은 좁디 좁은데 의대 정원을 갑자기 대폭 확대하면 환자들에게 많은 의사들이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의대생들이 낙오하는 결과만 초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은배 연세대 의대 교수가 지난 2020년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개 의과대학 학생들의 1인당 교육비용은 평균 2억1000만원이었다. 인건비, 강의 및 임상실습 과목, 교수학습활동경비, 관리 운영비 등이 고려된 금액이다.

의대 예과 2년동안 연 2530만원, 본과 4년동안 연 4000만원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의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1년간의 인턴 수련비용은 인당 7300만원 4년간의 전공의 수련 비용은 매해 인당 1억4600만원정도가 소모된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은 1인당 8억6760만원을 들여서 낙오자들을 쏟아내는 황당한 정책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셈이다.

그동안 정부 정책에 옹호하는 논조의 기사들을 냈던 조선일보는 지난 달 28일자에서 '태평로-차라리 의사 파업법을 만들자'라는 제목으로 논평을 냈다. 

매체는 "의사들에게 파업권을 주면서 파업 절차를 지키게 하고 필수 인력이나마 유지하게 하는 '의사 파업법'을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라고 지적했다.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한 안덕선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도 의사노조의 필요성을 언급한 일이 있다.

안 소장은 지난 2023년 5월 29일 메디게이트의 칼럼을 통해 같은 해 3월에 있었던 영국의 젊의 의사회의 3일간의 파업을 언급하면서 "전체 의사들의 권익 보호와 실효성 있는 대정부(복지부와 건보공단)협상을 위해 일부 병원이나 의과대학의 의사노조 단체가 아닌 봉직의, 개원의, 의대교수, 전공의 모두를 포함하는 전국의사노조협의회를 구성할 필요성이 의사노동조합을 위한 토론회에서 노동조합 전문가들이 주문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의사협회는 법조인과 노동조합 전문가와 협업해 본격적인 근로환경 보호를 위한 조직화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환자들이 실제로 원하는 의사는 전공의가 아니라 과장급 전문의들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병원을 늘리고 전문의를 늘리는 체계적인 대책을 내는 대신 학생만 많으면 돈을 버는 대학에게 정원을 늘리라는 정책을 내놓으니 전공의는 물론 전임의나 교수들까지 분개하는 것에 십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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