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윤병훈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섭습니다. 호랑이는 보이지 않을 때 더 공포스럽습니다. 권력이 물리적 힘(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칼이 칼집에서 뽑아지고, 호랑이가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은 물리적 힘이 사용되지 않을 때 온전한 기능을 가지며, 물리적 힘을 사용하여 어떤 제재가 이뤄질 때 권력은 소멸 됩니다.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 로버트 달 (Robert Alan Dahl)은 권력을 "결과의 가능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습니다. 이에 의하면, 권력의 작용은 '제재와 복종'으로 나타납니다. A가 B에 대해서 B가 하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를 시킬 수 있을 때 A는 B에 대해서 권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B가 제재를 회피하거나 반발하면 A는 권력을 상실합니다.
칼이 칼집에 있을 때 제 기능을 발휘하듯이 권력을 유지하려면 물리적 힘의 사용은 피할 수 있는 대안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제재를 선호할 때 권력은 실패합니다. 바꿔말하면, 권력이 스스로를 관철하는 능력은 그것이 물리적 힘과 모순되지 않을 때 입증됩니다.
최근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에 공권력의 개입이 과히 폭력적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와 의사 집단 양쪽 모두 제제는 피해야 할 대안이나 둘 다 서로 자기만의 '권력'의 상실을 더 두려워합니다.
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의사단체 지도부에 대한 고발과 압수수색이 전방위적으로 행해지고, 면허정지를 예고하는 등 공권력을 동원한 정부의 강경 일변도의 제재에 의사집단은 '맞고소와 불복종'이라는 또 다른 폭력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두 이해자 간의 갈등에 폭력이 난무하게 된 현상에는 정부가 공권력을 소통을 수용하게끔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황을 물리적 힘으로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의사 집단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관철시키려고 제재라는 물리적인 힘에 계속 의존하는 것은 권력의 인플레이션(상실)을 가져오며, 국가의 폭력이 한층 더 난무하는 상황을 초래합니다. 결국, 양쪽 다 완전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요원해집니다.
서로 되먹임 되는 폭력 행사가 의료 서비스 시스템의 재앙적 파괴로 이어져, 수술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분노가 누구에게 향할지 두 집단은 유념해야 합니다.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하며, 갈등을 완화시킬 '서킷브레이커'와 같은 조정자가 나서서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벗어난 의사소통과 연대의 장을 마련해 어떤 현명한 합의를 도출해 내야 곧 마주할 재앙을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