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식론은 피어슨과 마흐로부터 온 것이다.” 정문강

“과학의 만능, 과학의 보편, 과학의 관통은 그것의 재료에 있는 것 이 아니라 그것의 방법에 있다.” 정문강

과학주의자라는 오해

과현논쟁에서 장군매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5.4 신문화운동에 나선 청년들에게 과학파의 강렬한 세계인식을 심어준 정문강은 자신의 전공분야인 지질학만을 공부한 상아탑의 지식인이 아니었다. 그가 쓴 ‘현학과 과학 토론의 여흥’이라는 글에는 그가 평소 애독하고 자주 참고하는 책들이 열거돼 있는데, 그 목록을 통해 그의 사상적 원천과 취향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그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가장 유명했던 과학자들의 책, 다윈의 <종의 기원>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읽은 과학자였다. 당시 지질학은 다윈의 진화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정문강은 다윈이 살던 영국에서 지질학을 연구했기 때문에, 다윈의 사상은 정문강이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갖추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독서목록에는 다윈은 물론 당대 생물학의 최신 학문인 유전학과 발생학에 관한 책들이 다수 발견되는데, 예를 들어 토머스 모건의 <실험 동물학>과 톰슨의 <유전성>이 그것이다.

정문강은 인류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케이트의 <인류의 고대>는 물론, 당시 유명한 인류학자였던 더크워즈의 <체형학과 인종학>, <역사 이전의 인류> 등의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문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고, 정문강은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원칙>은 물론 소스타인 베블런의 <근대 문화 속의 과학의 지위>, 로빈슨의 <마음의 형성> 등 심리학과 사회과학 서적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정문강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은 다윈이나 아인슈타인 혹은 윌리엄 제임스가 아닌, 실용주의의 창시자 존 듀이,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과학교육자 토머스 헉슬리, 통계학자이자 과학비평가였던 칼 피어슨, 그리고 물리학자이면서 당시 근대유럽의 철학계에 급진적인 영향을 미쳤던 에른스트 마흐 등이었다. 즉, 정문강은 지질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통해 지질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던 과학자였지만, 그의 진정한 목표는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는 일이었음이 그의 독서 취향에서도 발견되는 셈이다. 정문강은 과학 내부의 이론에 심취하기보다 과학을 통해 인식론적 개혁을 추구했고, 과학의 역사적 철학적 사색을 통해 거대한 사회의 변화를 도모했던 실천적 과학지식인이었다.

정문강은 지질학자이자 과학사상가로 근대 중국에 과학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정문강의 폭넓은 독서와 사상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많은 역사가들은 과현논쟁에서 그의 급진적인 과학 옹호 발언만을 근거로, 그를 과학주의자로 매도해왔다. 하지만 이런 오해는 1970년대 정문강을 연구했던 D.W.Kwok의 연구시각과 1960~70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 마르쿠제, 에릭 프롬, 하버마스 등이 주도한 반과학주의 사조에서 기인한 편향일 뿐이다. 예를 들어, 정문강이 ‘과학만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그는 이 말을 ‘과학적 방법의 보편적 적용’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지, ‘과학 자체에 대한 절대적 신념’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지식 내부에 과학방법의 만능이 있다. 과학의 만능은 과학의 재료가 아니라 방법에 있는 것이다. 과학의 만능은 과학의 결과가 아니라 과학의 방법을 말한다.”

듀이와 피어슨 그리고 마흐 등 과학과 철학을 종합해 사상체계로 만들었던 당대 최고의 사상가들을 접했던 정문강의 과학에 대한 인식론은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근대 과학의 핵심에 과학적 방법론이 있음을 깨닫고 있었고, 바로 그 방법론이 과학이 세계에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미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과학과 근대 과학을 구별시키는 것은 자연에 대한 관찰만이 아니라, 자연을 조사함에 있어 갖게 되는 특별한 목적과 방법이다. 근대 과학을 구별 짓는 것은 첫째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데 있어 마지막 수단으로서 실험이나 조심스런 관찰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며, 둘째 실증적 증거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서 많은 양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정문강이 과학주의자라면, 세상의 모든 과학자를 과학주의자라고 불러야 한다. 정문강은 과학자로서의 정체성과 과학사상의 공부를 그의 역사학과 철학 공부에 접목시켜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준, 근대 중국에서 보기드문 과학적 세계관을 지닌 과학자였다. 

실천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

정문강이 다양한 서구 사상가들의 책을 읽은 이유는 단지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중국의 독립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그가 변화시켜야만 할 세상의 전부였다. 따라서 그에겐 지질학이라는 분과학문에서 뛰어난 학자가 되는 것보다 지질학자로서 세상과 조우할 좀 더 일반적이고 체계적인 사상체계가 필요했다. 그래야만 중국사회가 정문강을 필요로 할 때 그의 역할이 단지 지질학적 조사를 수행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을 통해 중국 사회를 바꾸려는 사상가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문강은 “과학을 하나의 광범위한 사상체계로 간주하고, 과학을 인생을 평가하고 전통을 비판하는 기준으로 삼을 것을 요구”했다 7.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강조는 지질학자로서의 정문강이 중국의 전통을 혁파하고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했던 가장 기초적인 사상체계였으며, 칼 피어슨과 에른스트 마흐의 과학적 인식론은 바로 그런 정문강의 목표에 완벽하게 합치되는 사상이었던 것이다.

과학적 방법론의 보편적 성격은 정문강의 신중국건설을 위한 훌륭한 무기였다. 동시에 과학적 방법론은 구체적이며 실천적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정문강은 바로 이런 구체성을 통해 중국을 개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지질학자라는 정체성과 결합해 실천으로 옮겼다.

”중국이 현재 ‘적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가난이 어느 정도의 땅인지를, 장군매는 연구한 적이 있는가? 이 1년 동안 북방지역은 가뭄을 당해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3천만 명에 이른다. 그들은 자녀를 팔기도 하고 사람 고기를 먹기도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난하면서 평안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국인의 년 평균 수입은, 나의 연구에 의하면, 50元에서 60元에 불과하며, 이는 松坡 도서관 노동자의 1달 임금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이것을 어떻게 적으면서도 균등하다고 할 수 있는가?”

공허한 이론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 정문강이 과학을 통해 새롭게 건설하려던 중국의 모습이었다. 공자를 종교적 성인으로 모시며 공허한 형이상학적 담론을 일삼던 현학파의 양계초와 장군매는 과학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실천에 앞장서던 정문강에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낡은 전통이었던 셈이다. 그는 오직 다른 철학자들의 말에서 빌려온 공허한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일관하는 장군매에게 그가 중국에서 실천해온 지질조사의 구체성과 실천적 측면에 대해 말한다. 

“나는 타인의 학문을 모른다. 나는 장군매가 지질조사를 통해 출판된 책을 한 번 보길 권한다… 필자의 <양자강 하류의 지질>과 <운남동부의 지질구조> 등은 비록 진정한 발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타인의 말을 답습한 것은 결코 아니다.”

정문강은 20세기 초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과학자였지만, 결코 상아탑에 안주하지 않았다.

당시 중국은 열악한 상황에 부닥쳐 있었고, 중국의 고답적 전통은 물질적, 경제적으로 낙후된 현실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신문화운동에 나선 지식인과 청년들은 중국의 전통적 문화를 거부하고, 과학과 민주라는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딩원장은 바로 그런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과학자였으며, 시대가 원하는 요구와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중국근대화라는 실천적 사상을 펼친 과학사상가였다. 과학구국이라는 그의 신념을 강건하게 떠받친 건 그의 과학사상이었고, 그 과학사상은 현장과학자로 살아온 그의 경험과 근대과학의 세계관으로 철학을 세운 사상가들의 이론이 중첩된 결과였다. 정문강은 근대 중국의 기틀을 만든 실천적 과학사상가였다. 그리고 정문강이 과학을 통해 도달한 사상적 깊이는 결코 인문학자들의 그것보다 못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대적 맥락 속에서 더욱 빛나는 과학적 인본주의에 가까웠다. 

”과학적 태도는 지극히 평등한 것이다. 과학이 각기 가는 길은 비록 하나로 일정치 않고 길 위에서 보는 대상도 일치하지 않지만, 출발지점이 서로 같고 길을 가는 방법도 서로 같아서 각자 길을 벗어난 만큼 더욱 가까워져 피차가 서로 더욱 도움을 줄 수가 있다. 과학적 태도는 지극히 겸허하고 온화하다. 과학의 지식세계와 공간은 서로 같아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고 미래 알게 될 지식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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