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미첼, 발레 역사에 흑인 자리 만들다
아서 미첼, 발레 역사에 흑인 자리 만들다
  • 박유진 객원 기자
  • 승인 2018.09.22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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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외면한 사람들] ⑤ NYT, "국제적 스타덤 오른 최초의 흑인 발레 무용수"
미국 최고 발레단 '뉴욕시티발레단' 입단→최초 고전주의 흑인 현대 무용단 ‘할렘무용단’ 창단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1957년 미국 시티센터. 무용에서 신고전주의 시대를 열었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안무가 조지 밸런친이 발레 합작품 <아곤>을 선보였다. 특이점은 뉴욕시티발레단 수석 무용수 다이애나 아담스가 ‘흑인’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 사람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이 듀엣은 성사됐으며, 공연을 본 무용 평론가 릴리안 무어는 “탁월하게 유연하고 아름답게 훈련된 두 몸에서 선형적 디자인의 모든 가능성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훗날 이 작품은 뉴욕시티발레단의 걸작 중 하나로 여겨진다.

당시 듀엣에서 흑인 무용수였던 아서 아담 미첼 주니어(Arthur Adam Mitchell Jr.)는 “백인 무용의 진수와 순수성 그 자체인 다이애나 아담스를 흑인과 함께 무대에 세운 배짱을 감히 상상할 수 있겠느냐”고 올해 1월 뉴욕타임즈(NYT)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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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는 미첼이 뉴욕시티발레단에서 13년간 활동하며 "눈부신 존재감, 최상의 예술성, 그리고 강력한 자아감을 보였다"고 평했다.

아서 미첼은 1934년 3월 27일, 할렘에서 태어났다. 그는 비영리 교육단체 PAL(Police Atheltic League)의 학생 합창단,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고 탭댄스 수업을 듣는 등 어려서부터 음악 관련 활동을 했다.

중학교 때 그는 학교 축제에서 춤을 췄는데, 그 모습을 본 생활지도 상담사는 그에게 맨해튼 공연 예술 고등학교의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했다. 미첼은 그곳에서 처음 공식 무용 교육을 받는다. 복부근육이 찢어져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열심이었던 미첼은 실력을 인정받아 유럽과 미국을 넘나들며 공연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버몬트주 베닝턴 대학교로부터 현대무용 장학금을, 뉴욕시 아메리칸발레학교로부터 발레 장학금을 제안 받았는데, 발레를 선택했다. 당시 발레 분야에는 흑인 무용수를 위한 길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NYT에 의하면 미첼은 학교 설립자 링컨 커스틴으로부터 발레단에 입단하려면 수석 무용수만큼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미첼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해외에서 공연하다가 1948년 설립된 발레단이자, 미국 최고의 발레단으로 불리는 뉴욕시티발레단으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아 들어갔다. 1956년 공연 <서부 교향곡>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데뷔했는데, 미첼은 관객석에서 ‘헉’ 하는 소리와 인종차별 발언을 들었다고 몇 년 후 회고했다.

이후에도 주요 역할들을 맡거나 수석 무용수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직접 춤추는 일 뿐 아니라 유명 안무가들을 도와 다른 발레 공연에서 역할을 만들거나 안무 짜는 일도 함께 했다. 뉴욕의 캐서린 던햄 스쿨, 워싱턴의 존스-헤이우드 발레스쿨 등 유명 발레 강습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할렘 무용단은 심각한 재정 문제와 흑인 현대 무용과 18세기 유럽 예술 간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헤쳐 나갔다.
할렘 무용단은 심각한 재정 문제와 흑인 현대 무용과 18세기 유럽 예술 간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헤쳐 나갔다.

그는 1969년 미국 최초의 고전주의 흑인 현대 무용단 ‘할렘무용단’을 설립했다. 흑인 인권을 위해 싸웠던 마틴 루터 킹의 암살 사건 이후 흑인 아이들에게(특히 그가 나고 자랐던 할렘가의) 예술을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양한 피부색이 돋보일 수 있도록 공연 의상을 디자인하는 등 흑인 무용수들에 맞게 고전 작품들을 재단했다. 무용단은 리모델링한 작은 차고 안에서 연습을 시작해 197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3개의 발레 공연으로 공식 데뷔를 마쳤다. 이어 런던, 모스크바, 트빌리시 등 해외 투어 공연도 했다. 1992년에는 남아프리카를 방문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미첼은 1971년 카페지오 상, 1975년 댄스매거진 상, 1993년 케네디센터 예술 훈장과 뉴욕의 핸델 메달 등을 수여했다. 일생 동안 흑인 발레의 길을 닦았던 그는 이달 19일 심부전 합병증으로 맨해튼에서 사망했다.

“내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300~400년 된 예술 형식과 사회에 맞서서 흑인들이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한 일.”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남긴 말이다.

자료 출처:
https://www.nytimes.com/2018/09/19/obituaries/arthur-mitchell-dead.html?rref=collection%2Fsectioncollection%2Fobituaries&action=click&contentCollection=obituaries&region=rank&module=package&version=highlights&contentPlacement=1&pgtype=sectionfront ,
http://www.dancetheatreofharlem.org/ ,
https://www.nycballet.com/ballets/a/agon.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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