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1884년 테네시주의 어느 기차 안. 승무원을 포함한 건장한 남성 3명이 여성 한 명을 자리에서 강제로 끌어내린다. 그런데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이 여성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도 끝나고 노예 제도도 폐지됐지만, 근거 없는 인종차별은 여전한 사회였다. 사건의 주인공 ‘아이다 B. 웰스(Ida B. Wells)’가 자리에서 끌어내려진 이유는 흑인이 1등 칸에 탔기 때문이다. 열차 내 흡연 칸으로 가라는 승무원의 말에 웰스는 1등 칸 표를 구매했다고 설명하지만, 답은 폭력으로 돌아왔다. 웰스는 집으로 돌아온 후 변호사를 고용해 철도 회사를 고소했다. 지방법원은 회사 측에서 웰스에게 500달러를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회사는 테네시주 대법원에 상고했고, 판결은 뒤집혔다. 웰스가 회사 측에 보상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로자 파크스(1955년, 버스에서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체포됐던 흑인 여성으로 유명하다)를 앞섰던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라고 불리는 아이다 B. 웰스. 그는 이 법적 공방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인권 운동을 펼쳤다.

“이 나라의 전체 사법부 시스템은 백인의 손에 있다. 여기에 유색인종에 대한 선입견까지 더해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인 배심원단은 증거가 거의 없더라도 흑인 죄수가 유죄라고 확신한다.” - 아이다 웰스, "The Red Record" 中

웰스는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기 1년 전인 1862년 7월 16일, 미시시피주에서 노예의 딸로 태어났다. 1878년 부모가 황열병으로 죽자, 웰스는 미성년의 나이에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고등학교에서 중퇴하고 나이를 속여 교사로 일하면서, 휴식 시간마다 틈틈이 자신의 공부를 했다.

흑인에게 동등한 대우를 보장한 ‘1875년 시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875)’이 1883년 무효화되고, 남부에서는 1876년부터 공공장소에서 흑인·백인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이 시행되는 모습을 보며 웰스는 언론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뉴욕타임즈(NYT)에 의하면 그의 목표는 ‘흑인을 위해 흑인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었다.

모스, 맥도웰, 스튜어트에게 벌어진 비극을 기리는 표지판. "이 린치 사건은 '멤피스 자유 발언'의 편집장인 아이다 웰스가 전국적, 국제적인 반-린치 캠페인을 벌이는 계기가 됐다"라고 쓰여있다.

1892년, 그의 흑인 친구 토마스 모스, 캘빈 맥도웰, 헨리 스튜어트가 ‘린치(lynch)’를 당해 사망했다. 린치는 ‘사적 제재’라는 의미로, 법적 수속을 밟지 않은 채 개인이나 단체가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행위이다. 흑인 남성 3명이 운영하던 식료품 가게에 손님이 많아지자, 경쟁 사업을 하던 백인들이 그 모습에 화가 나  가게를 공격해 싸움이 일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백인 한 명이 죽었다. 모스, 맥도웰, 스튜어트는 감옥에 갔지만 린치 무리들이 한밤중 이들을 끌어내 폭행하고 살해했다.

아이다는 자신이 공동 운영하고 편집장을 맡았던 지역신문 ‘멤피스 자유발언(Memphis Free Speech)’에 사건 내용을 쓰고 흑인을 대상으로 만연하게 벌어지는 린치 행위를 비난했다. 이 때문에 그의 신문사가 백인 린치 무리에 의해 공격받기도 했다.

신문사가 공격받은 후 웰스는 뉴욕으로 이사했다. 물리적, 심리적 협박에도 웰스는 린치를 당한 흑인 피해자들에 관해 계속 기사를 썼다.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백인들이 하는 사업을 보이콧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Southern Horrors: Lynch Law in all its Phases)”라는 제목을 책자를 냈다. 책자에는 흑인을 대상으로 벌어진 부당한 린치 사건에 대해 웰스가 조사했던 내용이 담겼다.

NYT에 따르면 웰스는 신장병으로 1931년 6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종차별 수단인 대량 투옥(mass incarceration)을 연구하고 보호관찰관으로 일하는 등 활동을 이어나갔다. 또한 ‘전국 흑인 여성 협회,’ ‘미국 흑인 지위 향상 협회(NAACP)’ 등을 설립하는데 기여했다. NAACP는 미국 대표 흑인 인권 단체로, 지금도 약 3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다.

NYT는 웰스에 대해 “편견으로 고생했지만, 살아 있는 내내 미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흑인 여성이자 미국의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 중 하나”라고 평한다. 한국에서는 웰스의 생애를 담은 그림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아이다 웰스의 생애를 다룬 한국 그림책
"진실은 힘이 세다 : 흑인 여성 언론인 아이다 웰스 이야기"
사진=교보문고

자료출처: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8/obituaries/overlooked-ida-b-wells.html
https://www.womenshistory.org/education-resources/biographies/ida-b-wells-barnett
http://people.duke.edu/~ldbaker/classes/AAIH/caaih/ibwells/ibwbkgrd.html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apr/27/ida-b-wells-civil-rights-movement-reporter
http://raycomgroup.worldnow.com/story/5951441/ida-b-wells-the-original-rosa-pa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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