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본소득은 1516년,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처음 등장했다. 토마스 모어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조건없이 식량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 500년 후, 기본소득 논의는 4차 산업혁명 대응책 차원에서 다시 떠올랐다. 인공지능(AI) 고도화의 결과로 예상되는 일자리 축소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복지체계에서 발생하는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제기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 재난 상황은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붙였으며, 국내에서도 기본소득 관련 담론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본격화했다. 이로운넷은 기본소득을 둘러싼 각양각색 입장을 살펴봤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매달 현금 지급!”

최근 화두로 떠오른 기본소득을 한마디로 정리한 문장이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은 정부 혹은 지자체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아무런 조건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개인과 기업, 국가가 함께 부조하는 기존 복지체계와는 다르다. 기존 복지체계는 보험료를 전제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복지급여를 지급받는다. 일정 수준 개인의 부담을 전제로 한 조건이 정해져 있다.

이에 비해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없이 지급한다. 단순히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의 관점이다.

이런 주장을 한 대표적인 사상가로 벨기에 경제철학자 필리페 판파레이스를 들 수 있다. 그는 국가가 인간의 실질적 자유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물질적 자유의 충족이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라는 맥락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거론했다.

스페인 학자 토마스 페인은 자연재산이 모든 사회구성원의 공동소유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는 토지와 환경 등 공유재에서 나온 이윤을 균등하게 분배받을 권리가 있다고 역설했다. 많은 기본소득론자의 재원 마련 계획에 토지세, 환경세, 데이터세 등 공유부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란?

보편적 기본소득 5가지 요건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은 ‘보편성(특정집단이 아닌 모두에게 지급), 정기성(지속 지급), 개별성(개인에게 지급), 무조건성(심사없이 지급), 현금성(현금 지급)’ 등 5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기본소득이다. 이는 기본소득 연구자와 활동가의 국제네트워크 기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서 제시한 기준이다. 

지난 4월 전 국민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과 3월 경기도 도민에게 지급된 ‘재난기본소득’은 큰 범위에서 기본소득의 한 종류지만, 이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니다. 5가지 요건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구성원에게 조건없이 주어졌기 때문에 보편성무조건성은 갖췄지만, 1회성 지급인데다 사용기한 및 사용장소를 제한해 정기성, 현금성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아울러 둘 다 사용지역 및 기한이 한정돼있는 돈을 지급했기에 준현금으로 분류된다. 정부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가구단위로 지급해 개별성도 갖추지 못했다. 

기본소득이 꼭 보편적 기본소득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다양한 기본소득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5가지 요건 중 몇 가지에 해당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타당한지 검토해 볼만하다. 

국내·외 기본소득제도 추진 현황

국내·외 기본소득제도 추진현황

해외에서는 미국, 스위스,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 스페인 등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실험이 펼쳐지기도 했다. 1982년부터 석유를 판매한 금액의 일부를 떼 모든 주민에게 1년 1회 배당하는 제도를 시행한 알래스카도 한 예다. 스위스에서는 지난 2016년 기본소득 도입을 두고 국민투표를 진행했으나 반대 76.7%로 부결됐다. 성인에게는 매달 300만원, 미성년자에는 78만원을 지급하는 안이었다. 기본소득 도입시 예상되는 막대한 세금 인상이 주요 반대이유였다. 

국내에서는 정당 중 녹색당이 보편적 기본소득을 최초로 내세웠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 1인당 매달 40만원씩 지급하자는 공약을 내걸었다. 같은 해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최근 세계적으로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본소득 실험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부터 시행한 청년배당 제도를 이름만 바꿔 경기도에서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경기도에 3년 이상 거주 중인 만 24세 청년에게만 분기별로 25만원씩 1년에 총 10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청년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요건 중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등 3가지 요건을 충족했다. 만 24세 청년이라면 ‘누구에게나’ ‘개별’적으로 1년에 4번 정해진 날짜에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로 지급하기 때문에 현금성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강원도는 지난해에 육아기본수당을 도입했다. 2019년부터 강원도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에게 4년간 월 30만원씩 총 144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올해부터는 월 50만원씩 지급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육아기본수당은 무조건성, 현금성, 정기성 등 3가지 요건에 부합한다. 다만 부모에게 지급해 개별성은 충족하지 못했다. 청년기본소득과 육아기본소득은 모두 기본소득을 특정 집단에게 지급해 보편성 요건은 만족하지 못한다. 

기본소득 전국시대...보편적 기본소득 주장은?

기본소득 주장 ‘보편적 기본소득’ 5가지 요건 비교

국가적으로는 올해 6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배고픈 사람이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내세우며 기본소득 카드를 꺼내면서 전국민적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이낙연 의원(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이재명 지사(더불어민주당), 안철수 대표(국민의당), 김세연 전 의원(미래통합당) 등도 기본소득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 기본소득’과 유사한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은 기본소득 원이슈(One Issue) 정당을 표방하는 기본소득당이다. 기본소득당은 21대 총선에서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매월 6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기본소득당이 정한 60만원은 1인 가구 최저 생계비 52만원보다 높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재원마련 방안으로 시민세와 탄소보유세, 토지보유세 등을 제시했다.

김세연 미래통합당 전 의원 역시 보편적 기본소득제와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김 전 의원은 “인구는 2028년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 2060년에는 4000만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인구가 준 만큼 정부의 기능과 규모를 축소 조정하고 기본소득을 도입해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은 정부’로의 전환에 기본소득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재원은 복지예산 구조조정 및 데이터세, 기계세 등으로 충당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 아니라 복지적 형태를 가진 경제정책”임을 강조한다. 그는 순차적으로 지급액을 늘려가는 방식의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한다. 이 지사는 “현재 세계적인 저성장은 불평등과 소비 수요 부족에서 온다”며 전국민 기본소득 지급이 소비 수요를 늘릴 수 있는 좋은 카드라고 설명한다. 다만 당장 많은 액수를 지급하는 건 쉽지 않다고 본다. 그가 최종목표로 삼고있는 기본소득 월 50만원 지급은 증세가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월 5만원으로 시작해 국민적 동의를 얻어 기본소득 지급액수를 점차 늘려나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소득제와 비슷한 주장도 천차만별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지난 7월 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온국민공부방 제4강 '한국 복지국가가 가야할 길은?' 온라인 강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국민의당 유튜브 캡처

기본소득 논의의 포문을 열었던 미래통합당 내 일부 의원들은 국민의당과 함께 꾸린 ‘국민미래포럼’에서 만 19~34세와 0~2세 양육가정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명확한 시행계획이 나오진 않았지만, 가구에 지급하는 해당 소득은 개별성이 충족되지 않는다. 또한 모든 국민에게 주는 것이 아니므로 보편적이지 않다. 통합당은 지난 13일, 정강·정책에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을 1호로 명시하고 ‘기본소득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미래통합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우파형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안심소득제를 내세웠다. 안심소득제란 가구의 소득수준에 따라 상이한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로, 중위소득 기준보다 부족한 부분의 40~50% 금액을 각 가정에 지급한다. 오 전 시장은 최소비용 맞춤형 지원으로 경제적 낙오자를 선별하고 소득 격차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안심소득제는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 선별적으로 지급하므로 개별성무조건성, 보편성을 충족하지 못한다. 다만 그는 기본소득제보다 안심소득제가 근로의욕 고취 및 재분배효과가 월등하다고 말한다. 

한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측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5가지 요건을 현저히 갖추지 못했다면 기본소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박선미 사무국장은 "국민미래포럼안과 안심소득제 모두 기본소득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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