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코로나19 사태 등 재난을 거치며 국가에 ‘실질적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기본소득 논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기본소득을 넘어 기본자산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본소득은 정기적으로 소액을 지급하는 반면, 기본자산제는 목돈을 한번에 지급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만 25세가 되는 청년에게 성인 평균자산의 60%를 기본자산으로 주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5일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양극화 시대, 왜 기본자산인가?’ 토론회에서는 정태인 전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이 좌장을 맡고, 김종철 서강대 교수와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이 자신의 기본자산제 모델을 소개했다. 이어진 지정토론 시간에는 김만권 경희대 교수, 임경석 경기대 교수, 김공회 경상대 교수, 구본우 중앙대학교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열린 '양극화 시대, 왜 기본자산인가?'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열린 '양극화 시대, 왜 기본자산인가?'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두관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며 자산이 자산을 불리는 시대가 됐다. 자산없이 소득만으로는 자산 형성이 어렵다”며“양극화 현실 타개위해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기본자산의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토론회 이후 신생아 1인당 200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자산제 도입을 제안했다. 신생아 명의로 2000만원씩 든 계좌를 지급하고, 특정 이율을 적용해 성인이 된 이후에 인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최소 4000만원 수령이 가능하다. 김 의원은 추후 구상을 구체화해 ‘기본자산 조성과 지원에 관한 법률’(가칭)을 통해 입법화에 나설 방침이다. 

기본소득제는 ‘사이비 공산주의’

먼저 김종철 교수는 ‘기본자산제 : 정의 회복을 위한 정책’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생산적 활용 의무에 방점을 찍은 새로운 기본자산제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먼저 기본소득제는 ‘사이비 공산주의’라며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본소득은 이념적으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배당한다는 측면에서 공산주의와 비슷하다”면서도 “공산주의는 자산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지만, 기본소득제는 그렇지 않다. 자산을 대규모로 공유하지 않은 채 어떻게 모든 구성원이 기본생활을 충족할 만큼 나눠줄 수 있겠나”고 비판했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사회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GDP의 4분의 1(한국기준 월 80만원 지급)을 배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월 60만원 지급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급액을 점차 늘려 최종목표로 월 50만원을 목표로 설정하는 등 비슷한 규모를 제시하고 있다.

김종철 서강대 교수가 ‘기본자산제 : 정의 회복을 위한 정책’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종철 서강대 교수가 ‘기본자산제 : 정의 회복을 위한 정책’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 교수는 “GDP의 4분의 1을 기본소득으로 배당하려면 약 500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막대한 예산을 세금으로 거둘 수 없다는데 있다”며 “세금 수입은 이데올로기, 법, 세력관계 등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소유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세금을 원활하게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회보장제도를 존치하면, 기본소득제가 현실적으로 비전으로 제시되기엔 무리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나라 고령화율을 고려하면 사회보장성을 높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사회보장지출 금액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며 “재원을 기본소득에 쓸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생산의무 부여 기본자산제, 근본적 개혁 가능

따라서 그는 자산 불평등·대주주에 의한 회사소유·금융·부채 등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기본자산제’를 제안했다. 김 교수의 기본자산제는 생산수단을 생산자에게 부여해 반드시 생산적 활동에 이 자산을 활용해야만 하는 점이 핵심이다. 기본자산액은 1억원으로, 생산활동이 가능한 20~64세의 모든 개인에게 지급한다. 또한 기본자산의 소비성 지출 및 자산 양도 등을 금지한다. 상속도 기본자산의 4배까지만 받을 수 있도록 제한한다. 초과되는 상속자산은 기본자산 재원으로 활용한다. 

그는 “상속을 과도하게 받는 것을 허용하면 다른 사회구성원에게 돌아갈 자산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라며 “상속과 증여는 능력주의에도 맞지 않는 불로소득으로 이를 제한해야 자산 불평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기본자산제는 기본자산을 ‘생산자 협동조합’ 또는 ‘종업원 지주회사’ 등에 투자하도록 한다. 그는 “기업 내에서 생산자들은 이윤추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며 “생산자들이 스스로 자기 재산을 출자하고, 스스로 회사를 운영하면 이윤 외에도 다른 사회적 가치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회사는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회사법의 원칙으로 제정하고, 공공성 강화를 위해 공동 의사결정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병권 “청년기초자산제, 모두를 위한 상속”

정의당의 싱크탱크인 정의정책연구소의 김병권 소장은 ‘청년기초자산제 도입의 배경과 내용’이라는 발표를 통해 ‘청년기초자산제’를 소개했다. 정의당은 지난 21대 총선 제1호 공약으로 모든 만 20세 청년에게 3000만원을 3년에 걸쳐 분할지급하는 청년기초자산제를 내걸었다. 만 20세 청년에게 1인당 1000만원씩 지급하자는 2017년 대선 당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청년 사회상속제’ 공약보다 진일보한 정책이다. 

김병권 소장은 먼저 “청년들이 불평등 공간에서 내뱉는 탄식은 사회 쟁점으로 주목받지 못했다”며 세습에 의한 자산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능력주의가 붕괴되고 새로운 유형의 세습이 고착화되고 있다”며 “제2의 토지개혁 수준의 정책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해방 이후 단행한 토지개혁이 자산 불평등을 상당 수준 완화했고, 국민들에게 ‘동일선상에서의 삶의 출발’을 어느 정도 보장해줬다고 분석했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은 청년기초자산제는 모두를 위한 상속이라고 주장했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은 청년기초자산제는 모두를 위한 상속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청년기초자산제가 단순 청년정책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상속’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청년기초자산제는 자녀를 둔 부모들을 지원하는 정책”이라며 “아울러 전체 사회의 자산을 세대간 이전으로 경제활동을 역동적으로 촉진하는 재분배정책이자 경제정책”이라고 밝혔다.

재원은 상속증여세에 종합부동산세를 통폐합해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겨우 이정도 규모로 자산재분배를 실현하는 건 쉽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청년기초자산제는 시작의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기초자산은 청년이 사회진출 시 밑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3000만원 규모로 설계됐다. 김 소장은 “기초자산의 규모는 대학 교육비, 주거비용, 학자금, 창업자금으로 활용할만한 정도가 적정하다”며 “이렇게 보면 약 3000만원~500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생산활동 의무방식 정당화 필요... 수혜자 반대 극복해야" 등 지적도 나와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청년기초자산제가 모두를 위한 상속이라고 주장했다.
김만권 경희대 교수가 지정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정토론 시간에는 두 발표자의 기본자산제 방안에 대한 제언이 이어졌다. 먼저 김만권 경희대 교수는 김종철 교수의 기본자산제에 대해 생산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기본자산을 지급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만권 교수는 “기본자산은 ‘모든 사람들에게 실질적 자유’라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왜 생산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기본자산을 주는지 정당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년기초자산제에 대해서는 정책의 문턱효과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20세 청년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기초자산제를 20대 초중반 청년층은 가장 불평등한 제도로 인식할 것”이라며 “이런 계층을 어떻게 설득할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공회 경상대 교수는 기본소득 및 기본자산제의 일반적인 특징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논했다. 그는 “기본소득이나 기본자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현방안”이라며 “기본소득 및 기본자산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한데, 세율을 조금만 높이는 것도 엄청난 사회갈등을 야기한다. 이를 조정할 역량을 우리 국가가 갖추고 있느냐의 문제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토론 말미에 “국민 개인 삶의 재생산에 필요한 자원이 △시장소득(임금 등) △공적 이전소득(아동수당 등) △각종 사회서비스(교육, 의료 등)라고 한다면 이들이 안정적인 배합을 도모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며 “기본소득·기본자산은 공적 이전소득 지급 논의에 그친다. 전체적인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단체사진
토론회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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