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55마일, 폭 2.5마일 크기의 남북을 나눈 경계에는 지뢰, 참호, 철조망 등과 같은 전쟁 도구들이 깔렸고, 경계선은 반도 위의 땅과 사람들을 모질게 갈라놓았다. 경계를 두고 분리되자 대립이 시작되었다.”

신간 ‘슬픈 경계선’에서 말하는 한반도의 38선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인류학자인 저자 ‘아포’는 아시아 내 다양한 나라들의 경계 지역을 여행하며 느낀 문제의식을 책 속에 담았다. 사람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그어지는 슬픈 경계선. 이 선을 중심으로 정체성이 나뉘고 전쟁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서로를 차별한다.

아포는 타이완인이다. 그는 비무장지대와 판문점을 관광하며 타이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남북한 분단의 의미도 덧붙인다. 한국전쟁 당시 타이완은 파병을 통해 남한을 돕고자 했으나, 미국이 이를 거절했다. 한국전쟁으로 중국의 타이완 침공 계획이 어그러졌지만, 동시에 타이완의 정체성이 상실돼 국제사회에서 자유를 잃은 셈이 됐다고 한다.

'슬픈 경계선' 표지. 사진제공=교보문고

38선 외에도 ▲라오스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홍콩 등 여러 국가 속 경계선을 책 속으로 끌어와 타이완인의 시각을 담는다. 중국·미얀마·라오스·태국 4개국의 국경을 나누는 메콩강, 인도네시아 화교와 원주민 간 종족 경계선, 전쟁 중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오키나와섬 등. 38선으로 갈라진 한민족과 2차 세계대전 이후 갑자기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가 된 조선족 등 한국 역사에 관한 내용도 다룬다.

저자는 “책에 나오는 내가 방문한 곳들을 하나같이 타이완과 유사한 문화 및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이웃 국가들을 많이 여행하고 여러 언어들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들과 타이완이 멀고도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 타이베이의 옛 지명 가운데 많은 것들이 타갈로그어와 말레이어에서 왔음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뚜렷해 보이는 국경선이 어쩌면 가장 의미가 흐릿할 수도 있다.

작가는 책을 집필한 목적이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있지 않다고 못 박는다. 그는 “독자들이 남들과 똑같은 서술 방식이나 고정관념으로 쏠리지 않는 태도를 터득하기를 바란다”며 “자신이 자라온 곳을 포함해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자신만의 시각을 찾기를, 동서남북 어느 곳을 향하든지 맹목적으로 따라가지는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박힌 경계선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책이다.

◇슬픈 경계선=아포 지음. 김새롬 옮김. 추수밭 펴냄. 368쪽/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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