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책 표지 이미지. 사진제공=교보문고

‘홀로세(Holocene).’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부분으로, 약 1만2천년 전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까지를 말한다. 네덜란드 대기 화학자 파울 요제프 크뤼천는 최근 2천년을 일컬어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인류가 지구의 지층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은 것.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저자 라즈 파텔과 제이슨 무어는 홀로세도, 인류세도 아닌 ‘자본세(Capitalocene)’를 주장한다. 이들은 “1400년대 이후의 역사를 자본세로 불러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엮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자본세 600년의 역사가 어떻게 구축됐는지, 그 자본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고든다. 자본주의는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영국이 아니라, 15세기 대서양의 섬에서 시작됐다는 관점에서 유럽과 신대륙의 역사를 다룬다.

특히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7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에 주목한다. “저렴하다”는 건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이다. 이들을 값싸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거래를 가능하게 했던 오랜 자본주의 전략을 각 장에서 파헤친다.

저자는 저렴한 것의 예로 닭을 든다. 닭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유전자를 조합하고 가슴 근육을 부풀린다. 육계 농장과 사료용 토지에는 공공 자금이 투입되고, 막대한 에너지가 싸게 공급된다. 계육 공장은 시급 25센트를 받는 노동자들로 굴러가는데, 노동자의 86%는 질병을 앓고 있으며 대개 가족 돌봄에 의존한다. 이 시스템 덕분에 닭은 저렴한 식량으로서 다시 노동자들에게 제공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대개 사람들은 자연과 사회를 분리해서 둘이 따로 작동하는 것처럼 여긴다. 사회는 자연을 지배하고 자본으로 바꿀 수 있는 주체로 여겨진다. 토지 등 자연 하나하나에 값을 매겨 ‘개발’이라는 단어 아래 착취했다. 그 결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느껴질 정도로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극단적인 기상이변도 나타난다.

그간 저렴하게 유지됐던 세계는 이제 지속가능하지 않다.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는 추천사를 통해 “자본주의가 인류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왔다면 그 과실은 지구가 그리고 인류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에 기대왔다는 사실을 더 늦기 전에 상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모든 대상에 최소한의 값을 매기려 했던 노력을 되짚어봐야 한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 라즈 파텔·제이슨 무어 지음, 백우진·이경숙 옮김, 북돋움 펴냄. 348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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