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이어 흥행시킨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 콤비는 또다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첫 회 시청률 6.3%로 시작해 매회 최고 수치를 경신하며 지난 21일에는 13.1%를 기록했다. 

기존 의학 드라마가 긴장감 넘치는 수술 장면과 의사들 사이의 알력 다툼을 다뤘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99학번 의대 동기들 5명의 우정을 중심으로 대학 병원 내의 여러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큰 갈등없이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만으로도 시청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환자와 충분히 소통하는 슬기로운 의사는 가능할까 

그나마 악역에 가까운 역할은 가끔 나오는 흉부외과 천명태 과장인데 진료시간이 짧고 환자의 질문에도 불친절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나온다. 반면 주인공 5명은 환자들의 사소한 이야기 하나하나에 친절하게 귀 기울이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어루만지려 노력한다.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충분히 전달하고, 의사는 환자가 이해할 때까지 치료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실제 대학병원의 의사는 천명태 과장에 가깝다. 대학병원의 진료 실태에 대해 흔히 '1시간 대기 3분 진료'라고 이야기한다. 특별히 의사들이 불친절해서가 아니라 짧은 시간 동안 컴퓨터 모니터에 띄운 검사 결과를 보며 진단하고 처방할 뿐, 환자와 눈을 맞출 겨를도 없다. 바로 다음 환자를 봐야 하므로 의사는 한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환자권리장전을 준수하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환자와 의사 간의 따뜻한 소통이 있는 병원은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이상적인 병원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4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해 현재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에 소속된 회원조합만 25개에 이른다. 전체 조합원 수(세대)는 총 4만8554명, 출자금은 전체 133억원이다. 무엇보다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협력하며 민주적 의료기관, 건강한 생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치료만을 목적으로 두지 않고 건강유지 및 증진활동을 위해 다양한 건강 소모임과 예방교육을 하며 가족주치의 제도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질병 및 치료과정을 충분히 설명하며 환자권리장전을 준수하고 있다.

필자도 경기 구리시의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서울 은평구의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가입해 많은 의료혜택을 누리고 있다. 느티나무의료사협에서 조합원 할인가로 영양제를 맞기도 하고 건강 예방 정보를 쉽게 접한다. 다음 달부터는 은평구 살림의료사협의 살림건강센터 다짐에도 등록해서 내 체력과 건강상태에 맞는 운동프로그램에도 참여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의료사협을 통해 꾸준히 믿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소통하며 상의할 수 있는 주치의를 만나게 돼 감사했다. 

다른 사회적경제 조직처럼 의료사협도 의료기관의 공공성과 환자와의 소통 증진, 지역사회와 밀착의 사회적 의미를 밝히고 진료 문화를 바꿔 나가는데 영향을 줬다. 지자체마다 도입하고 있는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지역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도와주는 마을주치의 제도, 문재인 정부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는 지역사회 기반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등이 결합된 돌봄 서비스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 대표적이다. 

지역과 밀착된 의료공공성 확보와 반대로 가는 ‘비대면 진료’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러한 지역사회 기반의 공공의료 시스템의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는 ‘비대면 진료’이다. 기재부 중심으로 정부의 하반기 경제 활성화 정책을 위한 비대면 산업 육성의 일환으로 비대면 의료를 위한 인프라 구축 논의가 진행 중이다. 비대면 의료는 이명박 정부때부터 신성장동력 고부가 서비스산업으로 추진됐고,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의 하나로 제시됐던 원격의료의 다른 이름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의료 공공성 저하를 이유로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원격의료에서 ‘비대면 진료’로 이름만 바꾸고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다시금 추진 중이다. 

코로나를 가장 모범적으로 이겨내며 전세계가 K-방역에 주목하게 된 데 원동력은 공공병원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공적 마스크 공급'과 '진단키트의 신속한 공급' 등 공공정책을 폈던 사실에 있다. 비대면 진료로 가속화되는 의료영리화와 대형병원 쏠림현상은 오히려 K-방역을 약화시키는 방향이다.

드라마처럼 환자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소통하며 상의하는 ‘슬기로운 의사’의 존재를 바탕으로 지역주민들과 밀착된 지역 병원들이 더 살아나고 대학병원 쏠림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10원칙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재부의 신사업 동력 추진으로서 의료 서비스가 고려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병원은 어떠해야 할까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1원칙.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살림의 가치와 목표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없이 조합원이 될 수 있습니다.

2원칙.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통제
살림의 주인은 참여하고 협동하는 조합원입니다.

3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조합원 스스로 자본을 모으고, 사업소를 이용하고, 민주적 경영과 노동의 협동에 참여합니다.

4원칙. 자율과 독립
외부 기관이나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체계와 기준을 갖추고 돈으로 환산되기 어려운 사회적 가치를 계속 생산해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바꿔갑니다.

5원칙. 교육, 훈련 및 홍보
모두가 더 잘 협동하는 조합원, 더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교육하고, 널리 홍보합니다.

6원칙. 협동조합 간 협동
<살림>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운 변화를 위해 다른 협동조합과 협동하여 조합원과 이웃 모두를 이롭게 합니다.

7원칙. 지역사회에 대한 관여
지역사회 건강에 기여하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8원칙. 약자 우선과 다양성 존중
약자를 우선할 때 '약자를 만드는 구조'를 바꿀 수 있고 내가 약자가 될까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평등과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이웃과 함께 건강해집니다.

9원칙. 적정 의료와 건강증진활동
믿을 수 있고 지속가능한 의료를 실현하고, 우리 스스로 건강의 주체가 되어 모두의 건강자치력을 키워갑니다.

10원칙. 호혜적 돌봄
돌봄이 존중되고 정의롭게 분배되는 구조를 만들어, 나이 들고 아파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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