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The Smurfs)는 1958년 벨기에의 만화잡지로부터 시작되어 1961년에 에니메이션으로 방영되었다. 인간보다 훨씬 작은 스머프들이 사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동들이 주 내용이다. 스머페트, 똘똘이 스머프, 파파 스머프, 투덜이 스머프 등 개성 가득한 스머프들이 등장하며 악역으로는 스머프를 잡아 수프에 넣어 끓여먹을 생각을 하는 가가멜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 헐리우드에서 2011년부터 3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가 제작되었다. 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럽에서도 빠르게 확산되던 3월에도 프랑스에서 대규모 ‘스머프 축제’가 열릴 정도로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이 축제는 스머프 팬들이 분장하고 모이는 방식인데 작년에 독일에서 세운 2762명의 기록을 깨고 3500명 이상이 참가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1983년 KBS에서 방송하며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재방송되는 등 모든 연령대에게 친근한 만화이다. 올해도 3월부터 EBS에서 다시 방영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스머프 마을

나 역시도 어렸을 때 스머프에 푹 빠졌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스머프는 게으름이 스머프였다. 이 스머프는 이름 그대로 게을러서 늘 빨간 술이 달린 수면용 모자에 잠옷 차림으로 잠을 자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그 나른하고 한가로움이 부러웠다. 그런가 하면 늘 "난 ○○가 싫어"라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아기 스머프 돌보기 등 할 건 다하는 츤데레 같은 투덜이 스머프도 좋았다. 또 발명가 편리 스머프, 요리사 욕심이 스머프, 시인 스머프 등 다양한 직업들이 어우러지는 모습도 좋았다.

재미난 건 스머프들은 모두 다 잘하거나 인정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에게는 조금씩 부족함이 있고 다양한 스머프들이 개성 있게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게으름이 스머프마저 요트 대회에서 잠든 채로 우승하기도 한다. 또 가장 인기 많은 스머프 중 하나인 똘똘이 스머프는 가끔 옳은 얘기도 하지만 잘난 체를 많이 해 다른 스머프들에게 내던져서 마을 바깥으로 날아가서 거꾸로 처박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도 기죽지 않고 다음 에피소드에서도 그만의 똘똘함을 빛내려 노력하고 다른 스머프들도 미워하기도 보다는 그런가보다하고 함께 한다. 

모두가 개성을 발휘하며 잘하든 못하든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메꿔가며 살아가는 스머프 마을의 모습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되었을 때 사회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특정한 대상에 심사를 통해 지급하는 생활보장제도와 달리 모든 구성원들에게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지급된다. 

기본소득을 통해 소득과 일의 연계고리를 끊어보자

기본소득이 주는 가장 큰 사회적 상상력은 소득과 일의 연계고리를 끊었다는 데 있다. 시장에서 가치가 매겨지고 돈을 받을 수 있는 일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스머프 마을의 개성있는 스머프들처럼 우리는 24시간 여러 일들을 한다. 집안일과 자원봉사처럼 돈을 받지 않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그동안은 돈이 안되는 일,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또한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고된 일에서 벗어나는 시대가 코앞에 와 있다. 기계가 현재 인간이 하고있는 일의 대부분을 대신하면 소득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는 현재와 같은 생산이 이뤄지는데 생산수단을 소유한 상위 1%만 살아남고 99%는 비참하게 살아야만 할까?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일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나눴다. 노동이 생계유지를 위한 활동이라면, 작업은 그 자체가 목적이자 자아실현을 위한 창작 활동에 가깝다. 행위는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의사소통하면서 이뤄지는 사회적 활동이다. 기본소득은 인간들이 노동에서 벗어나 작업과 행위로 더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 

기본 소득, 그리 멀지 않은 미래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사태로 성큼 다가왔다. 이는 진보 진영만의 이슈는 아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출범 이후 첫 번째 정책의제로 기본소득을 제안하며 이번 달 3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굽는 걸 보고, 먹고 싶은데 돈이 없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럼 그 사람한테 무슨 자유가 있겠어."라며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또한 경기도는 지난 18일 도내 농촌지역에서 ‘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기본소득 사회실험은 핀란드, 미국, 네덜란드,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실시되었으나 OECD 가입국 중 농촌지역에서 사회실험을 하는 것은 경기도가 최초다. 상상하는 그 무엇보다 더 역동적인 ‘다이내믹 코리아’인만큼 기본소득의 사회는 멀지 않을 수 있다. 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표현대로 미래는 이미 와 있고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일 것이다.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사회적경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책과 영화를 통해 지금과 같은 칼럼을 쓰며 살아가고 싶다. 어떨 때는 게으름이 스머프처럼 1주일 내내 나른하게 있고 또 한 주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이 책 저 책 보다가 똘똘이 스머프가 되어 지적 허세도 부리고 싶다. 지식생산 노동자로서 시장에서 값이 매겨지는 강의와 연구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마음껏 글을 쓰며 오히려 지금보다 더 생산력은 더 높아지고 사회에 대한 기여도 많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한량 스머프’라고 이름을 붙여보리라.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