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맛, 부대찌개1.어릴 때 동두천에서 살았다. 미2사단이 있는 곳, 우리 삶은 대개 미군 부대 주변에서 이루어졌다. 부대찌개는 누구나 알지만, 그 유래가 동두천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당시 미군부대 종사자들이 미군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부대 밖으로 빼돌렸는데, 대표적인 메뉴가 빵과 소시지 종류였다. 먹다 남은 음식이라 잼도 묻어있고 이빨자국도 있었지만 가난한 기지촌 사람에게는 싼 값에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2.우리는 그 빵을 부대빵이라고 부르고, 이런 저런 소시지, 햄에
탕수육으로 맛있게 냉장고 털기 1.올해는 채소 값이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추석 즈음이면 채소도 과일도 어느 정도는 냉장고에 남아 있을 법하다. 돼지고기, 닭가슴살, 소고기, 아니 하다 못해 가지라도 있으면 냉장고 음식으로 탕수육만 한 음식이 없다.조리법은 복잡해 보이지만 시간과 노력이 조금 걸릴 뿐 어렵거나 복잡하지는 않다. 두 가지로 생각하면 편하다. ①돼지고기 밑간을 해서 두 차례 튀겨준다. 그래야 바삭한 맛을 제대로 즐기기 때문이다. ②소스를 만든다. 다만 ①번 튀김만 해도, 마요네이즈, 케첩 등의 소스를 찍었을때 충분히 맛
간단한재료 훌륭한 맛 비빔국수1.비빔국수는 각종 채소를 양념장에 비벼 먹는 음식을 말한다. 재료도 구하기 쉽고 조금만 신경을 쓰면 간단한 양념만으로도 식당 요리 못지않은 맛을 낼 수 있다. 냉장고를 보니, 텃밭에서 가져온, 양배추, 당근, 깻잎 등이 있다. 이 정도면 비빔국수를 만들어줄 수 있겠다.2.어느 음식이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특별한 조리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집마다 조리도구가 다르고 화력이 다르고 집에 있는 식재료가 다르고 무엇보다 입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요리란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식구들의 입맛에
가족을 위로하는 만두전골1.명절이다.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에 친지들이 모여 즐겁게 요리를 하고 흥을 나누는 자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한 사람들 속에서 죽어라 일해야 하는 고행의 나날일 수 있다.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고향나들이가 많이 줄어든다니 한 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2.사실 주부들이야 어디 가지 않는다고 마냥 편한 것도 아니다. 대신에 집에서 식구들을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탓에 외식도 쉽게 못하고 어디 돌아다니기도 여의치 않으니, 주부들의 피로도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가
1.봄이 반가운 이유는 들판 여기저기 봄나물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쑥, 냉이, 달래, 전호, 돌미나리, 영아자, 민들레 등 이런 저런 나물을 채집하는 것만으로도 텃밭 작물을 보충하고도 남는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나물은 냉이와 달래, 노지의 냉이, 달래는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작고 손도 많이 가지만 그 맛과 향만은 어느 음식에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가을이면 텃밭 주변에 달래가 쑥쑥 올라온다는 사실은 몇 해 전에 알았지만 그 동안 냉이는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와 농막 주변을 산책을 하다가
1.“나 정도면 와이프한테 잘해주는 거 아냐?” 내가 오래 전부터 밥상을 차린다는 건 이제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오랜만에 만나 술 한 잔을 하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렇게 사느냐?”에서 시작해, “잘했다. 불쌍한 여자들, 위해주면서 살아야지”까지 반응도 다양하다. 그러다가 한 놈이 얼큰하게 취하더니 아내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다. “이 정도면 와이프한테 잘해주는 거 아냐?” 이것도 해줘, 저것도 해줘, 그런데 웬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단다. 2.그놈은 억울할지 몰라도, 사실 부부의 불화는
1.수십 년 만에 이사를 앞둔 장모님, 잠시 댁에 들렀다 가라신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아내와 함께 갔더니 오래 된 술을 몇 병 내놓으신다. 병따개로 따는 25도 소주 세 병, 인쇄도 병도 촌스러운 양주 한 병, 오래 된 안동소주 한 병……“얼마나 많이 숨겨놓았는지 여기저기 술이 없는 데가 없어.”2.장인어른은 애주가셨다. 아마 장모님 몰래 술을 감춰두셨는데, 갑자기 쓰러지시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묵었던 모양이다. 생전에 그렇게 술을 좋아하셔서, 내가 찾아갈 때마다 핑계 김에 어떤 식으로든 술상
1.- 냉이 많이 올라왔던데 안 캐러 가?- 여기 마저 정리하고 따라갈 테니 먼저 가서 캐고 있어유. 감자 이랑에 비닐을 씌우고 들깨밭으로 갔더니 아내는 냉이는 캐지 않고 주변만 서성거린다. - 왜, 무슨 문제 있어요?- 얘하고 얘하고 어느 게 냉이인지 또 모르겠어. 2.냉이와 지칭개 얘기다. 지난해에도 냉이를 캤건만 1년이 지나면서 또 헷갈리는 모양이다. 사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겠다. 냉이, 지칭개, 애기똥풀, 민들레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크기로 올라오는데 낯선 사람에게는 그놈이 그놈이다.
1.매년 3월 중순이면 농막부터 찾는다. 겨우내 묵은 때도 걷어내야 하지만 당장 3월 말, 감자를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마늘 이랑에서 보온용 볏단을 제거한다. 여기 저기 손톱만한 싹들이 인사를 한다. 작년에는 혹한으로 절반 가까이 동사하는 바람에 이번엔 좀 더 두텁게 덮어두었다. 비닐터널 아래서도 봄동, 상추, 시금치 들이 겨우내 죽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봄에 심어도 된다지만 겨울을 나면 더 달다는 얘기에 혹해 매년 가을에 파종을 하고 비닐터널로 보온을 해둔다. 2.모터는 또 고
1.“요리법 좀 알려주세요.”가끔 페이스북에 음식을 올리면 중년남자들이 가끔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본다. 어렵지 않아 보이니까 그대로 따라 해서 가족들에게 점수 좀 따고 싶다는 얘기다. 물론 마음이 가상해 자세히 알려주기는 한다. 하지만 종종 집에서 음식을 한다면 모를까, 그저 어쩌다 한 번 해볼 생각이라면 결과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요리법은 그저 머릿속 약도에 불과하다. 정작 약도를 들고 나서면 이것도 헷갈리고 저것도 이것 같아 목표지점에 도달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내가 이곳에 내놓는 요리법은 내
1.이라는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보내기 위해 소위 ‘관리비용’으로 2억 원, 3억 원이 기본이라는 얘기는 이런 저런 통로로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아들 어렸을 때 생각이 난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가? 공부를 하도 안하기에 야단을 쳤더니 울면서 그런 얘기를 한다. “그림,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공부를 하면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 불안하다.” 그 뒤로도 몇 번인가 아들을 앉혀놓고 설득을 해봤지만 소용은 없었다. 2.어느 날, 아내와 아이들 교육문제를
1.오랜만에 텃밭에 나왔다. 겨울이야 특별히 할 일도 없지만 눈과 빙판으로 진입로도 막히는 통에 이맘때가 돼야 나들이가 가능하다. 나는 우선 겨우내 씌워둔 비닐터널을 걷어내고 시금치, 봄동, 상추에게 봄바람을 선물한다. 겨우내 얼마나 답답했을꼬. 마늘 밭에서 보온용 볏짚을 치우니 여기저기 꼬무락꼬무락 새싹들이 보인다. 텃밭을 가꾸면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새싹들과 인사하는 때가. 2.아직 땅이 다 녹지 않았지만 3월 중순이면 감자를 심어야 하기에 장소를 골라 미리 퇴비를 뿌려둔다. 올해 첫 농사인 셈이다.
1.그야말로 가족들이 호들갑이다.강의를 떠난 지 2년이니 꽤 오랜만이다. 비록 1주일에 두 시간 정도이지만 강의안 작성하고 과제 만드느라 하루 종일 바빴다. 강의를 시작할 때면 늘 이렇게 긴장하는 버릇이 있다. 진땀이 흐르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은 기본이다.몇 년 전에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져 시작부터 5분간 멍하니 서있기도 했다. 트리플 A형의 슬픔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강의 얘기가 나오면 나보다도 가족이 더 호들갑이다. 사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번역가, 작가잖아. 젊은 편집자들 만나야 하니
1.강원도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복수초를 보았다. 아직 꽁꽁 언 겨울이건만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초면 어김없이 이렇게 노란 황금잔을 내민단다. 그래서인가? 얼음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고 해서 우리말 이름도 얼음새꽃이다. 복수초를 비롯한 봄꽃들의 생존전략은 신기하다. 꽃받침을 꽃잎으로 만들고 꽃잎은 암술처럼 바꾸어 꿀샘까지 만든다. 개미 등 곤충을 유혹해 꽃가루를 전하기 위해서라지만 내가 감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곳은 따뜻한 양지가 아니라 춥고 어두운 산의 북사면 계곡이다. 남쪽은 서두르지 않아
1.“아빠, 나 아침에 설사했어.”아빠들은 딸한테 약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자식인데도 아들이 배앓이를 하면 그냥 “한 끼 굶어, 인마!”하고 끝내면서도 딸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이상하게 내 배까지 아프다.대학 1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더니 쉽게 배앓이를 한다. 아무래도 먹는 것도 신통찮고 먹는 시간도 들쭉날쭉하기 때문이겠다. “아빠, 나 그냥 집에서 다닐까? 시간표 조절하면 지하철 직행 타고 오갈 수 있는데.” 그러라고 했다. 집에서 먹고 다니면야 제 속도, 내 속도 편하지 않겠는가. 정 들
1. 명절이 되면 난 오히려 부엌에서 자유롭다. 모셔야 할 조상도 없고 찾아갈 고향도 없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내 임무는 포천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님을 찾아뵙는 것만으로 끝이다. 형제자매들이 모여 전을 부친다든지 설음식을 만드는 것도 옛날 얘기다. 먹고사는 게 더 빠듯해진 탓인가, 언제부턴가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더 바쁘다. 한가한 틈에 책을 한 권 읽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서령 작가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란 책이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분이다. 음식 얘기, 조리법 얘기인
1. 이곳에서야 주로 음식 얘기를 하지만 내 직업은 소설번역가다. 15년 이상 90권 가까이 번역을 하고 7년쯤 강의를 하고 얼마 전에는 번역 입문서 도 출간했으니 나름 중견번역가 반열에는 들었을 것 같다. “번역기가 좋아지면 번역가가 필요 없어질 텐데 그럼 어떻게 합니까?” 기계번역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요즘 심심찮게 듣는 질문이다. 번역기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야 이해는 가지만 내가 우려할 수준의 번역기는 100년, 200년은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 이전에
1.동생을 데리고 가출한 때가 1976년 봄, 내가 열일곱 살이었다.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리며 괴롭히는 새엄마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후 곧바로 서울 구로동 형 집에 가서 몇 개월 지내다가 그 후 진주, 부산을 떠돌며 금은세공, 인쇄 등의 일을 배웠다. 2.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은 4년 후였다. 서울 북아현동으로 이사와 신촌로타리에서 인쇄 일을 하던 때였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아버지는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았는지 동두천에서 신촌 인쇄소까지 찾아왔다. 인쇄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에
1.지난 아내의 생일. 새벽에 24시간 마트에 나가 굴을 사와, 굴미역국을 만들었다. 아내는 일어나 미역국을 먹고 출근했다. 음식을 시작하고 15년 이상 한 번도 아내의 생일에 미역국을 걸러본 적은 없다. 쇠고기미역국, 황태미역국도 해봤지만, 아내 입맛에는 굴미역국이 제일 맞는단다. 겨울에 태어났으니 굴미역국이 제격이기도 하다. 2.생일에 아내를 위해 해줄 건 아침 미역국밖에 없다. 결혼 초기 먹기 살기 어렵다는 핑계로 생일선물을 생략하기로 합의한 터라, 지금껏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해본 적은 없다.
1.“형아, 저 두꺼운 프린트 묶음이 뭔지 알겠어?”“응? 아니 모르겠는데?”“방탄소년단 노래들 가사를 모두 뽑아서 인쇄했어요. 무슨 얘기인지 잘 안 들려서.”아내는 요즘 남자 아이돌 그룹에 푹 빠져 있다. 이따금 유투브까지 뒤지며 동영상을 찾아보고 방탄소년단이 나온다고 하니 지난 연말 가요프로그램도 꼭꼭 챙겨서 봤다. 식사를 하면서 화제의 절반은 방탄소년단이다. 덕분에 나도 이런저런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이름에 익숙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 엑소, 위너, 트와이스……2.아주 아주 옛날, 아내는 조용필한테 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