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 (왼쪽부터) 윤석열, 조희대, 한덕수./자료사진=뉴시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 (왼쪽부터) 윤석열, 조희대, 한덕수./자료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윤병훈 발행인

사람들의 생각은 '참~'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설득하려 하는 것을 알 때 설득에 대한 면역 체계가 자동으로 작동한다. '설득 면역 세포'는 새로 침입(입력)된 논의에 대해 면역을 형성하며, 태도 변화에 저항하고, 방어 반응을 동시적으로 생각하도록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다양한 화학 물질들은 현 상태에 대한 강력한 편향을 유도하는 '체제 정당화 세포'와 이미 가진걸 선호하는 '위험 회피 세포'를 불러 모으거나 활성화시켜 우리가 사회·경제·정치 체계를 지각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왜곡하여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형성한다. 

임박한 대선 정국에서 '이재명만 안됐으면..'라는 측과 '반드시 이재명이 되야..'라는 파가 반반 정도라고 상정할 때 한 쪽이 반대 쪽에 '네 생각이 틀렸다'라며 설득하는 것은 그에게 '설득 면역 백신'을 주사하는 것과 같아 그의 심사를 더욱 굳게 하여 그를 투표장에 밀어넣는 의도치 않는 결과로 나타나, 설득을 할수록 상대편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바탕에 깔린, 대선과 관련된 세 장면-한덕수ㆍ조희대ㆍ이재명-에 대한 단상과 소회를 나열해 본다.

한덕수...경제대통령?, 민중은 개돼지가 아니다

"중립은 언제나 희생자가 아닌 억압자를 돕는다. 침묵은 언제나 피해자가 아닌 학대자에게 힘을 실어준다." 198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엘리 위셀(Elie Wiesel)의 증언이다. 내란 사태 내내 중립적 입장을 앞세우거나 불리한 상황이면 침묵을 지켜왔던 한덕수 전총리가 5월 4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공식 개설하고서 경제·통상 분야 관련 경력을 집중 부각한 이른바 '경제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웠다. 

무능과 비겁함의 결합 정치가 윤석열 정권의 상징이라면 한덕수는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한 '침묵의 공모자'이다. 단순히 순응하는 것도 그 상황에 도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가 위기이면 그 위기는 누가 초래했는가? 정의(正義)가 서야 경제도 있다.

한덕수는 자신이 총리로 재직한 3년 동안 권력자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도, 정부 기관과 공기업의 요직에 권력에 대한 충성심 외에는 자질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바보와 괴짜들을 임명해 정부를 더욱 당파적으로 만들어도, 엄청난  무능으로 국민과 정부기관에 막대한 손실을 입혀도, 검찰과 법원을 길들여 사법부를 장악해도, 이념에 편향되어 이웃 나라와의 관계가 산산조각 나는 사태를 눈 앞에서 보면서도, 어처구니 없는 계엄을 선포해도 권력자를 감싸고 옹호하며 지지하고 내란에 침묵한 공조자이다. 그가 복종한 것은 독재자의 권위였고, 순응한 것은 기득권 이익집단이었다. 아무런 성과가 없어도 그는 해고되지 않았다. 

이제 그가 대선판의 심판복을 내던지고 선수로 나서서 서민들의 '경제'를 들먹인다. 내란사태가 현재진행형인데, 사태 당사자인 그가 다른 모든 중요한(자신에게는 불리한) 이슈는 묻어두고 '문제는 경제야, 바보들아'를 우려내려는 그의 선거전략은 민중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취급하며 존엄성을 훼손하는 짓이다.

관료직 내내 꼭대기에 머물러 있었던 그가 마치 내려다보는 듯한 걱정으로 민중을 업신여기고, 조롱하면서 지배하려는 거만하고 도취된 생각의 발로이다. 자기 잘난체 하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켜온 무리들(엘리트 집단)을 대표하는 그의 머리 속에 민중은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준다(고 약속만 하)면' 권위에 순응하고 표를 주는 욕망의 화신으로 낙인된 개돼지 무리로 각인되어 있어서이다.

내란 전이나 탄핵 후 대선정국에도 그의 신념 체계는  '참~'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민중은 권력에 꼬리치고 물질에 대한 욕망에 눈먼 개돼지가 아니다.

조희대...'국가 포획' 기획, 민주주의 도구로 민주주의를 훼손

서울고법은 5월 2일 대법원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하루 만에 재판부에 배당하고 같은 날 공판기일을 지정하며 피고인 출석 소환장까지 발송했다. 게다다 이례적으로 법원 집행관이 직접 전달하는 집행관 송달 촉탁을 선택했다. 집행관 송달은 우편 전달이 되지 않을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대법원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사건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사법부가 조희대 대법원장을 위시한 내란세력을 옹호하는 집단에 포획되어 사법부 전체가 이재명 후보 피선거권을 박탈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이는 '국가 포획'기도라는 의심이 든다.

국가 포획(state capture)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국가 기관을 체계적, 조직적, 불법적으로 장악하여 정책, 법률, 자원 등을 사적 이익에 맞게 조작하는 현상을 말한다. 민주주의 핵심 기관(의회, 사법부, 언론)의 기능을 서서히 마비시켜 시민의 저항 기회를 차단하는 부패나 권력남용의 끝판왕이다. 세계은행 부패 연구팀은 2000년 "국가 포획은 "민주주의의 심장을 공격하는 만성 질환"이라 규정하며, "민주주의를 서서히 죽이는 독"이라고 공표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법원이 발부한 윤석열 체포영장이 저지될  때에도, 폭도들의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때에도 사법부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도 마치 다른나라의 사태인 양,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윤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을 향해 단 한번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서부지법 사태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어려움을 겪고 계신 서부지법 구성원들에 대한 심리치유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는 말은 했다)

그런 그가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대법원의 유죄 파기환송을 이끈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생중계를 한 것과 전례 없는 초고속 선고를 한 것 등은 국가 권력 구조 전체를 왜곡시켜 체계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독점하고자 하는 '국가 포획'을 기획하고 실행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지킬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국가 전체가 잃을 수 있는 것보다 크고 소중하다고 여겼음이 틀림 없다. 그가 사법정의의 수호자라는 가면을 벗고, 지배의 도구로서 기득권 수호 성직자 '클레르'를 자임한 이유로 보인다. 타락한 지식인과 엘리트, 새로운 세대의 클레르가 그를 필요로 하고 지원하며 '국가 포획'를 획책한다.

「지식인의 배반」 (La Trahison des Clercs, 1927년)의 저자 줄리엔 벤다(Julien Benda)는 "지식인의 배신"이 문명의 붕괴로 이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정치가 지금처럼 엉망진창 양극화로 치닫게 된것은 2,000년의 이른바 '행잉채드(hanging chads)'사건에 보수성향 연방대법원이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일으키며 조지.W.부시 손을 들어줌으로써 시작되었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국가 거버넌스의 근본적 붕괴(파괴적인 양극화 현상)는 사법부의 정치개입에서 발화되었다는 것이다. 

14년 넘게 장기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헝가리의 오르반 체제는 그가 임명한 대법원장이 "선거는 유지하되, 권력 교체를 막는 시스템"을 정교화했기에 가능했다. 덕분에 헝가리는 공정한 선거 경쟁을 저해하는 제도적·미디어적 장치, 사법부의 정치적 종속이 결합되어 "비자유민주주의" 모델을 확립한 케이스로 민주주의 퇴조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어떤 사회든 적절한 조건이 형성되기만 하면 민주주의에 등을 돌릴 수 있다.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민주주의를 도구로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려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그를 정점으로 한 엘리트 카르텔의 국가포획 기도가 성공하면 대한민국 거버넌스의 근본적 붕괴가 초래될 것이다. 이런 그에게 '지식인의 배반'이란 언사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5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육법공양에서 대선 후보들이 헌화 후 합장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 권영국 정의당 대선 후보,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5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육법공양에서 대선 후보들이 헌화 후 합장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 권영국 정의당 대선 후보,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이재명...가면을 벗어던지고, 설득하려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

모두 저마다 다른 문제에 분노하고 있다. 아스팔트 극우, 태극기 부대. 기독교 극우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포퓰리즘 현상들은 어떤 무지나 이기심에 따른 행동이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그들의 불만이 새로운 집단 행동으로 바뀌게 된 정치사회적 정동(affect, 몸과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주관적 경험 같은 것)을 깊게 살펴봐야 한다. 이재명에 필요하고 해야만 하는 것은 이같은 '어둠의 사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5월 4일 대구·경북을 찾아 시민들에 지지를 호소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뭘 그리 잘못한 것이 있나"라며, "정보가 왜곡돼서 그럴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이 장면이 (나에게)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 치욕스러운 장면으로 느껴졌던 것은 이 나라에 끔찍한 사태를 초래한 윤석열의 지지자들에게서 드러난 명백하게 부족한 사고(思考)를 밝히려는 시도 대신, "제가 정말 그렇게 미움을 살 만큼 큰 잘못을 했느냐"며 호소하거나 가짜뉴스 때문이라고 설득하는, 영합하는 모습이 비췄기 때문이다.  

정치의 본질은 친구와 적의 구분에 있다. 인간 사회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 화해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정치적 정체성과 가치체계가 근본적으로 상이한 집단인 강남3구, 대구경북, 광주전남(어떤 측면에서만 해당되는)은 각각의 주민들이 오랬동안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투표를 하는, 생활이 곧 정치인 공동체이다. 

왜 이들 지역의 개인적, 사회적 변화가 그렇게 어렵고 느린지는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사람들의 생각은 '참~' 바뀌지 않는다"에도 원인이 있지만, 계층적 유사성(모두 같은 생각, 같은 생활 양식)이 무수한 개인을 역기능적인 하나의 페르소나로 축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활이 곧 정치인 이곳 각각의 경계에는 철조망을 두른 높은 담이 둘러싸고 있다.  강남3구에는 '부의 증식과 유지'라는 정동이, 대구경북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동이, 광주전남에는 '피해의식'이라는 정동이 담장을 받치고 있다. 이재명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이 이 경계를 넘어서려다 철조망에 찢기는 상처을 입고 물러섰다. 경계를 넘으려면 철조망에 찢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시도할수록 역효과가 나는 경우는 다르다. 이재명은 상처를 한번 더 남기는 의미 없는 시도보다, 그들을 휩쓸고 있는 무지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만 한다. 

이들에게는 설득의 언어보다 내부에서 스스로 변화의 힘을 끌어내게 하는 자극의 언어가 필요하다. 정동은 오직 대항하는 정동에 의해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항하는 정동은 억압받는 정동보다 강하다. 합리적 논리보다 분노, 희망, 연대감 같은 정동이 대중 행동을 촉발하고 변화를 이끈다. 

이와함께 이재명과 민주당은 최근 독일에서 헌법적 가치 위반 논란을 일으킨「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라는 우익 포퓰리즘 정당의 정당 해산 가능성이 공론화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AfD는 전국적으로 약 20%(동독 지역 3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가져 사회적 기반이 광범위한 정당이다. 이 정당의 해산 논의는 극단주의 정당에 대한 법적 제재라는 역사적 경험과 결합되어 "과거 나치의 망령과 현대 극우의 부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독일 민주주의"의 초상이 되었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갈수록 극우화 되어가는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진해산'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 내란죄의 책임을 물어 국민의힘을 위헌정당으로 해산하는 것을 당론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나,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는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갈수록 가난해진다는 데 있다. 개발과 성장은 시대와 지역에 관계 없이 언제나 소수에게 더 많은 특권을 준다는 의미이다. 또한 우리는 성장이 빈곤의 증가로 귀결될 수 있지만, 사회의 많은 부문에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득권 엘리트 카르텔의 '국가 포획' 획책을 분쇄하는 길이 이 사이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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