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은 협동조합 현장의 이야기를 시민들과 나누고 협동의 가치를 보다 확산하고자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의 서울시협동조합청년기자단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청년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현장, 이로운넷에서 만나보세요.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위치한 경희대학교. 정문 앞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비좁은 가게들 사이로 푸른 잎들이 무성한 가게를 볼 수 있다. 바로 찻집 녹원의 입구다. 가게에 들어서니 ‘팽주’들이 밝은 미소로 맞아주었다. 

‘팽주(烹主)’는 ‘차를 우려 내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대부분 대학생들로 구성돼 있으며, 카페의 종업원들처럼 음료와 양갱을 직접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한다. 팽주들이 내어주는 오미자 에이드와 초콜릿 양갱을 맛보며 정수연 대표팽주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초록색 풀로 뒤덮인 전통찻집 '녹원'의 입구 전경./사진=황도은 청년기자
초록색 풀로 뒤덮인 전통찻집 '녹원'의 입구 전경./사진=황도은 청년기자

녹원을 만드는 사람들, 팽주

정수연 팽주는 팽주에 대해 ‘녹원의 전부’라며 “팽주의 손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만든 공간이기에 팽주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팽주들은 운영지원, F&B, 소셜아트, 재고관리, 온라인녹원, 공간관리, 회계 등 총 7개의 팀으로 구성돼 가게 운영의 전반적인 과정을 담당한다. 이들은 매주 회의를 통해 더 좋은 녹원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

녹원의 메뉴는 F&B팀 팽주들이 주도적으로 개발하며, 아이디어가 있는 팽주가 먼저 제안해 개발되기도 한다. 정수연 팽주도 “녹차를 너무 좋아해 기존의 메뉴인 흑임자 꼬숩이(일종의 라떼)를 변형한 녹차 꼬숩이 메뉴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녹원의 색다른 메뉴들도 팽주들이 정성스레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대표 메뉴로는 ‘시간차’와 ‘양갱’이 있다. 시간차는 각각 오후 12시, 3시, 6시의 분위기에 맞는 재료를 통해 제작한 수제 티백이다. 어른들의 간식으로 인식돼온 양갱도 단호박 크림치즈, 초콜릿 등의 새로운 맛을 개발해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녹원의 메뉴들은 수제 제품 거래 플랫폼인 ‘아이디어스(idus)’ 입점을 통해 인터넷으로도 구매 가능하며, 전국 택배 배송을 시행 중이다.

오미자 에이드와 초콜릿 양갱(왼쪽)과 가게 한편에 마련된 엽서 방명록 공간./사진=황도은 청년기자
오미자 에이드와 초콜릿 양갱(왼쪽)과 가게 한편에 마련된 엽서 방명록 공간./사진=황도은 청년기자

30년 넘은 사랑방에서 폐업→ 경희대생 재건 프로젝트

사실 녹원은 폐업 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찻집이다. 1985년부터 약 30여년간 회기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전통찻집이었지만, 지난 2016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폐업했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힘을 모아 재건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18년 녹원이 재탄생했다.

다시 태어난 녹원의 시작은 일반 사업자였다. 그러나 비영리를 추구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활용하는 구조가 사회적협동조합과 더 부합한다는 판단 끝에 ‘녹원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사회적협동조합이 된 만큼 녹원은 다양한 지역사회와 상생 중이다. 먼저 각 지역 농가의 재료를 이용한다. 오미자 차와 에이드는 강원도 홍천 농가의 오미자, 대추차와 양갱은 충북 보은 농가의 대추를 사용한다. 이는 농산물 플리마켓인 ‘리버 마켓’에서 만난 인연으로 시작됐다. 이외의 재료들 역시 근처 청량리 시장에서 구매해 여러 지역의 농가들과 상생 중이다.

아울러 지역주민과의 상생에도 힘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만의 블렌딩티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 ‘토크 살롱’ 등 프로그램이 있다. 녹원의 공간을 활용해 지역 주민과 대학생들이 연결되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녹원

녹원을 이끄는 채은, 수연, 미리(왼쪽부터) 팽주가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황도은 청년기자
녹원을 이끄는 채은, 수연, 미리(왼쪽부터) 팽주가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황도은 청년기자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가 오가는 찻집 녹원에서 팽주로 활동하며 가장 보람찼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수연 대표 팽주와 옆에 있던 채은, 미리 팽주가 입을 모아 “과거 녹원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찾아오셨을 때 뿌듯하다”라고 답했다. 옛 녹원의 정체성과 추억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희대 출신이자 현재는 교수님이 되어 찾아오신 손님, 경희대 교내 커플(CC)였는데 부부가 되어 자녀들을 데리고 오신 손님들도 있다. 팽주들은 “누군가 추억의 한 장면을 되살리며, 다시 새로운 추억도 만들어 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렇게 단단하게 성장한 녹원의 앞으로의 목표는 운영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낼 수 있는 협동조합이 되는 것이다. 정수연 대표팽주는 “아직 녹원은 직접적인 사회적 가치보다 간접적 가치만 생산한다고 생각한다”며 “식품 원재료를 못난이 농작물로 사용하여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또 공간을 지니고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등 직접적인 사회적 가치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녹원이라는 공간을 알고 찾아올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것 역시 앞으로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다. 회기를 방문할 일이 있다면, 찻집 녹원을 찾아 여유로운 차 한잔과 추억을 기록해볼만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