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이보그가 되다’ 표지 이미지./사진제공=사계절
책 ‘사이보그가 되다’ 표지 이미지./사진제공=사계절

“열여섯 살, 신경성 난청을 진단받았다. 내 귀에 맞는 보청기를 맞췄다.” -김초엽

“태어날 때부터 걸을 수 없었던 나는 열다섯 살에 처음 휠체어에 앉았다.” -김원영

작가 김초엽과 김원영은 열다섯 살 전후로 신체의 손상을 보완하는 기계들(보청기와 휠체어)과 만나 ‘사이보그’로 살아왔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최첨단 기술이 쏟아져나오는 오늘날, 두 사람은 인간의 몸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주목했다.

이들이 함께 내놓은 신간 ‘사이보그가 되다’는 오늘의 과학과 기술이 다양한 신체와 감각을 지닌 개인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전해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문제의식을 전한다. ‘첨단 기술을 동원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은 신체들이 이끌어가는 사회는 고통도 갈등도 불가능도 없는 편리하고 매끄러운 곳일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을 출간해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는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다. 책의 서문에는 그가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이 자리에 섰다”는 한 행사 주최 측의 소개말을 비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장애인을 어딘가 결여됐거나 불완전하다고 여기는 일상 속 언어적 폭력성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 기술과 맞닿은 지점에서는 2020년 KT에서 기가지니 인공지능(AI) 음성 합성 기술을 적용해 농인에게 목소리를 선물한 과정을 담은 광고를 예로 든다. 그는 “기가지니가 선물한 ‘목소리’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청인들이 청각장애인에게서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라며 “이런 ‘감동 영상’을 보는 비장애인들은 보청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들의 반응에서 일관되게 ‘소리를 되찾은 기쁨’을 읽어내려고 한다”고 이야기한다.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김원영 작가는 여러 책을 내고 연극배우로 활동했으며,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중1 때부터 휠체어를 탄 그는 그것을 타고, 밀고, 들어 올리고, 점프하고, 누우며 스스로 휠체어가 된다. 그는 “과학이 장애를 여전히 ‘없음의 상태(결여)’로만 바라본다면, 휠체어는 기술적으로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여전히 보행 능력 ‘없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 기기로만 간주될 것”이라는 생각을 밝힌다.

김원영 작가는 휠체어, 보청기, 지팡이, 의족 등 인공 보철과 결합한 장애인을 ‘청테이프’로 묘사한다. 사물들 사이를 수선하고 연결하는 청테이프처럼, 서로의 취약함을 채우며 연립하는 관계에 주목한다. 장애인과 세상을 잇는 활동지원사나 안내견, 독자, 관객, 소비자 등도 청테이프가 될 수 있다. 첨단 기업이 내놓는 기술이나 디자인에 접근하기 힘든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통해 매끄러운 세계에 균열을 내고, 벌어진 틈새에 출현할 미래의 기술을 기다린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두 사람의 대담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바라보는 대화가 펼쳐진다. 평소에는 보청기를 잘 착용하지 않는 김초엽은 휠체어를 신체의 일부로 느끼며 미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김원영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장애인 당사자의 공동체에 오랜 시간 속해 있던 김원영은 그런 경험 없이도 장애의 관점을 체화해 세계를 바라보는 김초엽의 시각을 놀라워한다. 독자들 역시 이들과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혹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시각을 통해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재탐색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 김원영 지음. 사계절 펴냄. 368쪽/ 1만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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