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티앤씨 재단이 혐오사회를 주제로 연 '너와 내가 만드는 세상' 전시회를 열었다. 해당 작품은 세계에서 발화된 혐오발화를 모아 이미지화한 '왜곡의 심연'./출처=티앤씨재단.
지난해 11월 티앤씨 재단이 혐오사회를 주제로 연 '너와 내가 만드는 세상' 전시회를 열었다. 해당 작품은 세계에서 발화된 혐오발화를 모아 이미지화한 '왜곡의 심연'./출처=티앤씨재단.

BJ 땡초는 지적장애 여성 A씨에게 강제로 ‘벗방(옷 벗은 채 방송)’을 시킨 혐의로 지난 1월 6일 체포됐고 이달 3일 구속됐다. 그는 여러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돌며 A씨에게 ‘리액션’(별풍선을 받으면 취하는 행동)을 강제하고, A씨가 거부하면 강압적 태도를 보이며 방송을 진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A씨와 연인사이”라며 “(A씨와) 동의하에 한 거다. 여러분들이 자극적인 걸 좋아하니까 자극적으로 방송했다”고 해명했다.

땡초가 생산한 콘텐츠는 ‘혐오’ 콘텐츠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약자를 이용하고 조롱의 대상으로 희화화했다는 점에서 혐오적”이라고 말했다.

혐오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는 땡초 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현상이 될 만큼 쏟아지고, 수위는 세진다. 김 소장은 “(혐오 콘텐츠가) 단지 혐오표현의 수준이 아니라 폭력과 위해의 수준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지난 2017년 유튜버 ‘김윤태’는 후원금 20만원이 모이면 페미니스트 유튜버 ‘갓건배’를 죽이러 가겠다고 선언하며 추적과정을 중계했다. 

이 같은 현상의 답은  “대중이 자극적인 걸 좋아하니까”라는 땡초의 해명에서 찾을 수 있다. 혐오 콘텐츠로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고 싶어서다.

관심은 조회수와 별풍선(아프리카TV의 사이버머니 개념)을 유도하는 가장 큰 동인이고, 콘텐츠 생산자에게는 돈이 된다. 유튜버 김윤태의 살인을 부추기며 갓건배의 신상을 공개한 유튜버 신태일의 영상 조회수는 300만~496만회를 기록했다. 이는 그의 평소 조회수(50만회)보다 6배가량 높은 수치다. 유튜브가 창작자에게 주는 광고수익이 조회수 당 평균 1.2원이라는 MCN협회(1인 미디어 산업 진흥 및 크리에이터 창작 지원)의 ‘국내외 MCN 산업 동향 및 기업 실태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하면 신태일은 영상 하나당 3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얻은 셈이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지수씨가 2019년 발표한 석사 논문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혐오발언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를 살펴보면 혐오표현·막말이 포함된 콘텐츠일수록 후원수익 금액이 107% 증가했다. 

배설의 ‘놀이문화’에서 ‘혐오경제’로

미디어 이론을 연구하고, ‘검색되지 않을 자유’를 출간하며 정보자본주의 시대의 야만성을 폭로한 임태훈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개인 창작자가 이 같은 혐오 콘텐츠를 통해 돈을 버는 현상을 ‘모욕경제’라고 불렀다. 

지난해 11월 티앤씨 재단이 혐오사회를 주제로 연 '너와 내가 만드는 세상' 전시회. 혐오 발화를 통해 찢어진 입을 공유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지난해 11월 티앤씨 재단이 혐오사회를 주제로 연 '너와 내가 만드는 세상' 전시회. 혐오 발화를 통해 찢어진 입을 공유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애당초 혐오는 특정 커뮤니티의 배설·유희의 일환처럼 소비됐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가 대표적이다. 임태훈 교수는 “혐오는 예외적 공간에서 약자인 ‘소수자’에게 모욕·조롱하며 자기 불안을 배설하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들만의 리그’ 같았던 혐오가 수익모델로 정착된 건 유튜브 등 플랫폼 기업이 대형미디어에 한정됐던 광고 수입 분배 모델을 일반인에게 확장하고, 아프리카TV, 트위치, 다이아TV 등 개인 방송 플랫폼이 다원화되면서다. 플랫폼이 구축한 수익모델에 기대 돈을 버는 BJ, 크리에이터, 유튜버 등의 창작집단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융희 문화연구가의 말에 따르면 혐오 콘텐츠는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혐오 콘텐츠를 소비함으로써 ‘혐오하는’ 사람이 되는데, 이는 대상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창작자들은 이 우월감을 이용하는 것”이라 말했다. 

모욕경제가 범람하는 또 다른 까닭은 ‘두려움’ 때문이다. 일베에서 혐오가 나타난 이유 역시 ‘나의 자리가 빼앗긴다’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두려움은 이제 특정 집단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이융희 문화연구가는 “패배나 탈락이 생존의 위협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타인을 제거하고 혐오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며 “이 두려움이 혐오를 소비하고 만드는 동력”이라고 말했다. 

일베식 혐오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 ‘모욕경제’라면 최근에는 ‘혐오경제’ 현상이 두드러진다. 혐오경제는 모욕·차별의식·혐오표현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모욕경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렇게 ‘혐오’해야 사회가 올바르게 작동한다는 신념을 주입하기에 모욕경제와 다르다. 임태훈 교수는 “혐오경제 콘텐츠 생산자는 자신을 '구국의 영웅'처럼 포장한다. 비평용어와 이론을 구사하기에 모욕경제보다 훨씬 세련돼 보일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융희 문화연구가 또한 “구독자는 혐오경제 콘텐츠를 후원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한다는 믿음을 가진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유튜버 팩맨은 가수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에 문제될 게 없다며 성매매·여성혐오를 정당화했다. 여성을 정복하는 건 남성의 본능이고 “이걸 소화해야 진정한 자유 우파 시민. 개인주의자”라고 말한다. 팩맨의 구독자는 30만에 육박한다. 유튜브 ‘레인보우 리턴즈’채널이 만든 ‘동성애자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는 특강’에서는 동성애를 허용하고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에이즈가 퍼지고 이를 치료하는데 어마어마한 사회자본이 투입된다. 동성애 허용은 역차별”이라고 언급한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35만이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영상들의 조회수도 평균 30만에 달한다. 

방관, 은폐, 비호...혐오경제에서 이익을 버는 건 플랫폼

혐오가 화폐의 일종으로 유통되는 때에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건 플랫폼이다. 이융희 문화연구가의 말에 따르면 플랫폼은 방관함으로써 모욕경제-혐오경제 구조를 정착시킨다. 그는 저스틴 새코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저스틴은 2013년 아프리카로 출장가며 “아프리카에 다녀올게. 에이즈에 걸리고 오지 않길 기도해줘. 농담이야. 난 백인이니까”라는 트윗을 남겼다. 해당 트윗이 유명 저널리스트의 리트윗(RT)으로 세계에 퍼졌고 플랫폼에서는 저스틴에 대한 혐오·모욕이 난무했다. 저스틴은 정신병을 얻어 2년 동안 집 밖을 나오지 못했다. 구글은 이 사건으로 3일동안 4억 8천만원 가량의 트래픽 수익을 얻었다.

이융희 문화연구가는 “혐오경제를 창작자의 책임으로만 본다면 이 상황이 끊임없이 가속되는 이유를 놓친다”고 설명한다. 이어 “플랫폼은 필터버블(검색기록을 분석해 취향에 맞는 정보만 제공하는 기능) 알고리즘과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이익을 거두는지 은폐함으로써 책임에서 피해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페이스북이 자사 알고리즘이 혐오 발언, 극단주의 등 반사회적 행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묵인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너와 내가 만드는 세상'에서 소개된 작품. 익명으로서만 존재하는 개인의 얼굴을 담았다.
'너와 내가 만드는 세상'에서 소개된 작품. 익명으로서만 존재하는 개인의 얼굴을 담았다.

플랫폼이 방관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창작자를 비호하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TV는 기초수급자 비하, 5·18 폭동 발언, 인종차별 발언 등의 혐오표현으로 수십 차례 논란을 빚은 BJ 철구를 매번 특별 사면 형식으로 방송정지를 풀었고, MCN협회는 인터넷 개인방송사업자 규제법이 논의될 때마다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 조성’에 해롭다며 반대 의견서를 제출한다. 이융희 문화연구가는 “플랫폼의 방관·비호·변호에도 이름을 붙여야 한다. 혐오에 대해서 이것이 혐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그들의 방관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명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이전에 ‘진지한’ 논의 먼저

현행 방송법에서 1인 방송 등의 뉴미디어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이는 플랫폼에서 혐오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동력이다. 인터넷 방송은 비교적 엄격한 방송법이 아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규제되는데, 이 규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권고’가 전부다.

플랫폼은 3~7일 방송정지 수준의 가벼운 처분으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지난 2019년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터넷방송을 규제대상에 포함한 ‘방송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에 부딪혔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올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유튜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까지 하나의 법으로 규율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지난달 20일 밝혔다.

이융희 문화연구가는 규제 이전에 혐오에 대한 ‘진지한’ 소통·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규제를 권력에게 위탁하면 대중의 반발이 자명하다고도 덧붙였다. “무엇이 혐오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없지 않았는가. 혐오 관련 논란이 일 때마다 그게 왜 혐오냐는 반응이 수두룩하다. 이를 단순히 반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혐오에 대해서) 학술적 논의 말고 대중과 소통해본 적이 있던가. 그게 선행되지 않으면 규제는 제 효과를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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