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에도 의료·돌봄·물류·교통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수노동자는 대면 노동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들이 사회기능 및 일상생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을 수행해 ‘필수노동자’로 불리지만 일의 중요성에 비해 지원책은 미비해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필수적인 직업군을 선별해 통합적으로 관리·지원·보호함으로써 국가적 재난 대응능력을 강화하는 제도마련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필수노동자를 위한 지원책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토론회도 열렸다. 6일 국회에서 열린 ‘필수노동자를 위한 정책지원 및 제도수립 토론회에는 국회의원, 전문가, 필수노동자, 정부 관계자 등이 모여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토론회는 김영배 국회의원실, 더불어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회,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가 주최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와 김영배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이낙연 당대표는 “필수노동자는 공기와 같은 존재로 평소 잘 인지하지 못 하지만 아주 소중한 존재”라며 필수노동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참석해 축사를 진행했다./사진=김영배 국회의원 유튜브 갈무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참석해 축사를 진행했다./사진=김영배 국회의원 유튜브 갈무리

조례 통해 필수노동자 지원한 성동구...상위법 필요

전국에서 최초로 필수노동자를 위한 조례를 발표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필수노동자 지원을 위한 성동구의 경험과 입법제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성동구는 8월 말 조례를 제정하고 9월 10일 공포했다. 이를 통해 성동구는 약 6000명의 필수노동자에게 마스크, 손소독제, 보호복 등을 패키지로 지급했다. 이번주부터는 독감백신 무료접종을 진행하고 있다. 추가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감염 위험과 감염 스트레스가 높은 필수노동자를 위한 코로나19 무료 검사와 심리치료 지원, 사회적거리두기 단계 변화에 따른 위험 수당지급 등을 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기초자치단체에서 느끼는 한계도 공유했다. 정 구청장은 “필수노동자를 지원을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법안이 필요하다”며 “상위법이 없어 다양한 근로 형태를 띠는 필수노동자를 정의, 구분하기 어려웠고, 관련 조례를 만드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규모가 커 기초자치단체가 지원하기 어려운 필수노동자도 있었다. 성동구는 마을버스기사, 아파트 경비원, 미화원 등을 지원했지만, 시내버스기사, 대형병원 노동자, 택배·물류 노동자 등을 지원할 수 없었다.

필수노동자 위한 법 부재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필수노동자 지원과 안전보건 향상을 위한 국회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통해 국내 필수노동자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미국의 국토안보부에서는 필수노동자를 위한 지침이 나온 뒤 수차례 수정을 거쳐 세부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 정책을 실행할 때 지침을 참고해 필수노동자를 고려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뒤처져 있다. 류 소장은 “한국은 필수노동자에 관한 논의가 크게 진행되지 않았다”며 “우리는 법 체계상에서도 필수 유지업 노동자의 쟁의 행위를 제한하는 개념의 법률만 있을 뿐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한 법률은 없다”고 지적했다. 

김영배 국회의원이 토론회 좌장을 맡았다./사진=김영배 국회의원 유튜브 갈무리
김영배 국회의원이 토론회 좌장을 맡았다./사진=김영배 국회의원 유튜브 갈무리

돌봄노동자, 일자리 줄고 대우 못 받고

앞선 두 발제를 기반으로 필수노동자 각 분야 현장의 현황과 사례를 기반으로 한 토론도 진행됐다. 최경숙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장이 ‘재난시 돌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 과제’를 주제로 토론에 나섰다. 그는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필요성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코로나19가 유행이던 지난 4월 돌봄 노동자 3400명을 대상으로 한 센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장기요양보호사의 경우 평균 월 평균 122만원의 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이마저도 수입 예측이 어려워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다. 또한 이들의 20%는 일자리를 잃었고 이 중 44%는 한 달 이상 일을 하지 못 했다. 중단 이유의 83%는 이용자가 서비스 중단 요청을 했기 때문이었다.

안전권을 보장받지 못한 사례도 많았다. 대면 접촉이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았다. 코호트(동일집단)격리 시에는 휴게공간이 마련되지 않았고, 간병인은 야간 수당도 없이 늦게까지 업무에 시달렸다.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로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방문요양보호사는 자신이 방문하는 가정의 확진자, 자가격리대상자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관계부처에 문의해도 “알아서 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 가정을 방문한 후 “아들이 외국에서 와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최 센터장 “돌봄은 공공재지만 민간에 다 맡겨져 있으면서 최소한의 노동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노동조건 개선과 돌봄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가치 인식 제고 및 존중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필수노동자 포괄적으로 인정해야

박정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본 필수노동자 지원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을 이어갔다. 그는 지원법안 법제화 시 필수노동자 인정에 있어 근로법상 근로자 여부를 따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필수노동자이면서 지원이 절실한 택배·배달기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지원에서 소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 택배기사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택배기사는 현재 일주일 평균 71시간 일하고, 평균 식사 시간은 12분에 불과할 정도로 과로에 빠져있다”며 “근로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연차가 없고 하루를 쉬려면 자신을 대신할 인력을 마련하는데 25만~35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해 휴식을 취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필수노동자가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지원책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 정부 측 관계자로 나온 강검윤 고용노동부 차별개선과 과장은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근로기준법 적용에 제외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장기적인 논의와 의견수렴이 필요해 기초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플랫폼노동자, 필수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관련 개념을 모아 어떻게 입법 등을 진행할 수 있을지 현장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말했다.

필수노동자는 코로나19로 갑작스레 관심을 받았다. 개념도 낯설고 지원책도 미비하다. 특히 필수노동자로 분류되는 돌봄, 택배, 배달 분야 종사자가 특수고용형태를 띄고 있어 기존 노동자 지원 정책에서도 소외를 받고 있다. 일은 해야하는데 지원은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지만, 반가운 소식도 있다. 이낙연 당대표는 필수노동자 지원을 위한 TF가 발족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토론회가 진행된 6일 1차 회의가 진행됐고, 필요한 정책을 빠르게 추진할 방침이다. 아직 미비한 점이 많지만, TF, 토론회 등을 통한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토론회 좌장으로 나선 김영배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활발한 만큼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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