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랩은 ‘Live’와 ‘Laboratory’가 합쳐진 단어로 일상생활 속 실험실을 의미한다. 이곳에서는 전문가와 사용자가 협력해 일상 속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방법을 도출한다. 사용자의 관점이 전반에 반영되기 때문에 전문가의 일방적인 해결책보다 활용성이 뛰어난 장점을 갖는다. 이런 특성 덕분에 리빙랩은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 연구·개발 방식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17일 진행된 ‘SOVAC 2020’은 ‘TMI 정보쇼, All About 리빙랩’을 주제로 국내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리빙랩을 소개했다. 

성태현 교수는 완제품이 나오기 전 제품을 사용하는 당사자에게 의견을 물었다./사진=SOVAC 유뷰트 갈무리
성태현 교수는 완제품이 나오기 전 제품을 사용하는 당사자에게 의견을 물었다./사진=SOVAC 유뷰트 갈무리

당사자·시민과 함께한 제품개발

성태현 한양대학교 전기생체공학부 교수는 LED 안전 작업복을 개발했다. 그는 야간에 일어나는 환경미화원 사고사례를 접하면 새로운 작업복의 필요성을 느꼈다. 첫 제품은 일반 안전복보다 14배 밝은 빛을 낼 수 있었지만, 현장 반응은 좋지 않았다. 환경미화원들은 “옷에 LED가 너무 많아 덥고 무거운 데다 어깨에 위치한 LED 때문에 눈이 부셔 시야 확보가 어렵다”는 의견을 전했다.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성 교수는 2·3차 수정을 거쳐 작업복을 조끼 형태로 변형시키고 세탁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2019년에는 조달청에 혁신제품으로 등록되는 등 성과를 입증받았다. 그는 “리빙랩 방식을 적용하기 전까지는 눈감고 따발총을 쏘는 것 같았다”는 말로 리빙랩이 제품 개발의 방향성을 잡는 데 얼마나 큰 도움 주는지를 설명했다.

리빙랩을 통해 휴대용 안저 카메라를 개발한 곳도 있다. 김윤택 천안K안과 원장은 나이지리아 출신 연수생들에게 자국에서 사용 가능한 안저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저 카메라는 안과에서 녹내장 등 망막질환 진단을 위해 사용하는 장비로 무게는 24kg, 가격은 최대 10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보급이 어렵고 회진에 사용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김 원장은 대학병원, 일반의원, 원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일반 시민 570여 명과 함께 휴대용 안저 카메라를 개발했다. 가격은 기존 안저 카메라의 10% 수준, 무게는 600g에 블과해 활용성이 높였다. 실제 사용도 가능하다.

김미영 씨는 연속혈당측정기로부터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 환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 /사진=SOVAC 유뷰트 갈무리
김미영 씨는 연속혈당측정기로부터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 환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다. /사진=SOVAC 유뷰트 갈무리

같은 경험으로 통한 사람들 치유받다

리빙랩의 역할은 제품개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품뿐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면 어떤 모임도 리빙랩이 될 수 있다. 암 경험자가 모인 리빙랩 룰루랄라는 암 경험자를 향한 편견 없는 사회를 위해 매년 공연을 열고 있다. 이곳에는 20세부터 78세까지 암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였다.

우정윤 씨는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모여있어 시너지가 있는 활동이 많고, 암으로 인해 우울하고 힘든 마음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정서적 치유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룰루랄라는 직장내 암 환자를 위한 포용적 환경 마련을 위해 자조모임을 지원하고, 사회복귀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법률·제도 변경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김미영 씨는 1형 당뇨를 앓는 아들을 위해 해외 리빙랩커뮤니티에서 연속혈당측정기를 발견하고 국내로 들여왔다. 여기에 오픈 소스를 이용한 앱을 통해 실시간 확인 기능을 추가하고 이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의 어머니들과 공유하며 리빙랩을 형성했다.

하루 최대 24번, 수시로 혈당을 확인해야 하는 1형 당뇨 환자에게 연속혈당측정기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지만, 논란도 있었다. 김미영 씨는 식약청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불법의료기기를 수입·제조·판매했다는 혐의였다. 이 소식에 많은 사람이 모였고 김미영 씨를 도왔다. 그 결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더 나아가 2020년부터는 구매비를 지원하는 정책이 만들어지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마을e척척 앱./사진=SOVAC 유뷰트 갈무리
마을e척척 앱./사진=SOVAC 유뷰트 갈무리

마을, 리빙랩으로 뭉치다

지역을 매개로 리빙랩을 형성한 곳들의 성과도 눈에 띈다. 상도동 성대골 지역 주민은 에너지 자립 마을을 조성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주민들은 환경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내린 답은 재생에너지, 그중에서도 태양광이었다. 집마다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전기를 사용한다. 또한 이를 관리하기 위해 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고 4년째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광주광역시는 지역문제해결 플랫폼 ‘마을e척척’을 통해 민·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지역 문제를 해결한다. 지금까지 횡단보도 위치를 조정하고, 쓰레기 수거함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지역 문제를 발굴·해결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지자체의 공도 컸다. 위서영 광주광역시 마을공동체팀 주임은 “마을공동체 활동을 많이 했는데도 실질적으로 마을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는데 앱 덕분에 그런 공간이 생겼다”며 앱을 통해 지역 문제를 확인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방송에 패널로 출연한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의원은 광주의 사례를 “마을 전체가 하나의 실험실로서 시민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앱을 활용해 언택트 시대에도 적절한 맞춤형 해법”이라고 평가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