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에 애정을 갖고 일하는 청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일의 의미'를 찾는 청년들이 모여서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다. 중간지원조직,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분야도 다르고 연차도 다른 청년들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내친 김에 사회적경제에 대한 의문을 담아 '왜요레터'를 발행하기로 했다. 오는 12월까지 매월 마지막주 일요일 노동환경, 전문성, 일의 진행 방식, 젠더, 정치 등을 주제로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을 이야기 할 예정이다. <이로운넷>은 이들 청년의 고민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옛날 사경, 요즘 청년] 코너를 마련했다. 날것의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해 익명을 택했다. 다소 거칠지만 솔직하고 생생한 청년들의 대화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대화 전문을 보려면 '왜요레터'를 신청(클릭)하면 된다.

❓카롱 : 어쩌면 비영리 및 사회적경제는 사람이 아닌 기업과 팀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함. 생태계를 구성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실무자나 조직 내부의 실무자들의 목소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음. 

❓지니 : 조직 내부의 이야기와 비전을 논의 하면서 구성원들의 목소리보다 조직 밖의 사람들에게 기대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음. 외부의 목소리에 기댈수록 조직이 가지고 있던 지향점과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 ‘전문성이 있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또 내부 구성원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음.

❓감자빵 : 비영리를 진지하게 커리어로 바라보고 야망을 가지고 생태계로 진입한 1인. 민간 중간지원조직에서 약 5년간 일을 하다보니 긍정적인 생각 반 부정적인 생각 반에 마음이 혼란한 일이 많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활동가의 전문성은 분명 있다고 생각함. 다만 이를 위한 논의의 자리나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낌. 

❓튼튼 : 1N년차 경력의 잔뼈 굵은 비영리 및 사회적경제 현장 전문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직할 때마다 내 경력의 전문성을 존중받지 못해 분노를 느끼던 차에 현장 전문성에 대한 고민과 논의들이 적고 언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임을 알고 충격 받음. 또한 능력과 인성은 논외로, 영리에서 비영리로 온 사람들이 더 빠르게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을 보고 은연중에 열폭(?)하고 있다는 자백을 하기도 함.

❓윈터 : 민간 및 공공 중간지원조직 경험 7년 보유. ‘이 분야에서 지속가능하게 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잠정적인 결론을 통해 분야와 상관없는 전공으로 대학원을 진학했음.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필요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성있게 논의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는 낮은 편.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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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나 비영리조직에서 일하며 쌓이는 전문성은 분명 있지만, 그 언어와 이를 설명하기 위한 사례가 부족해 실무자들이 일경험을 쌓으며 혼란을 겪고 있다. 담화에 참여한 사회적경제와 비영리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은 5년에서 10여 년 이상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전문성을 스스로 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감각을 명확한 언어로 풀어내고 설명하는 것에는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했다. 감자빵(닉네임)은 “비영리 및 사회적경제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에게 분명 전문성이 있다고 보지만 구체적으로 우리의 일을 말하려는 노력과 자리가 부족하다”며 “정말 잘나가는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이 우리 분야에서 일한다고 해서 단번에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기 어렵다”고 말하며 비영리나 사회적경제만의 방식과 감수성이 전문성이라고 설명했다. 

실무자들은 사회적경제와 비영리 분야에서 일하며 쌓은 전문성을 ▲민과 관 등 다양한 주체를  연결하는 힘 ▲민과 관사이 프로세스 이해 능력 ▲투명성 및 합리성을 고려한 예산사용 방식 ▲새로운 사회현안 및 의제를 파악 후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능력 등을 꼽았다. 하지만 담화 참여자들은 영역에서 쌓은 개인의 전문성을 어떤 업무에서 어떻게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튼튼(닉네임)은 “내가 가진 전문성인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은 언제나 고평가된 적이 없고 나 자신조차도 내 전문성을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 그 이상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다”며 “우리의 이 전문성이 능력의 일부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아직 정확한 명칭이 없는 우리의 이 전문성에 이름을 붙이고 평가체계를 만드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담화 참가자들은 ▲이미 한계를 정한 사업의 범위와 방식으로 인한 전문성에 대한 합의와 공론 부족 ▲조직 내부 구성원보다 교수 및 영리 기업인 등의 외부인에 기대는 방식 ▲영리의 방식에 매몰 돼 비영리만의 전문성 평가 기준 등한시 함 ▲교육팀 등이 없어 개인의 열정과 열의에만 기대는 전문성 성장 방식 등을 분야에서 일하며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이유로 꼽았다. 윈터(닉네임)는 “업무의 진행방식을 보면 내가 아니라도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형태로 진행되고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처럼 일의 프로세스가 정립돼있거나 업무 내에서 분야가 명확히 나눠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을 잘해내기 위해서는 더 공부하고 네트워크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지금 일하는 조직은 그 정도까지 요구하지도 않고 내부 구성원들도 이에 대해서 각자 고민하지만 조직에서 큰 의제가 아니다보니 합의나 공론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성을 명확히 하고 쌓아가기 위한 개인과 조직의 노력으로 ▲직업으로의 비영리에 대한 지속적인 발화와 케이스 공유 ▲겸손은 넣고 개인의 능력과 역량 PR 집중 ▲전문성 강화를 위한 금전지원 및 활동에 대한 근무시간 인정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와 미션에 대한 조직 차원의 회고 ▲개인의 범위에서 벗어난 조직 내부적인 역량 및 전문성 강화 고민 ▲실무자들을 위한 콘텐츠나 정보 등의 양적 증가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였다. 

튼튼은 담화를 마무리하며 “영리에서 온 사람들만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을 보고 은연중에 열폭(?)하고 있었는데 우리 전문성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자체가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직을 하고 적응을 할 때 ‘왜 나는 경력이 있는데 인정을 안해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분노에 휩싸이곤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통해서 객관적인 인정의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더해 비영리와 사회적경제 현장의 전문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우리의 전문성을 분류하고 수집해 측정할 수 성과로 표출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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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하면서 나에게 쌓인 전문성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윈터 : 민간 및 공공 중간지원조직에서 7년 정도 일했다. 나도 카롱처럼, 일에 대해서 어떤 전문성이 쌓이고 있다는 느낌이 많지 않다. 그래도 꼽아보자면, 어쨌든 중간지원조직에서 일을 했으니 민과 관, 주민과 관, 사회적경제기업과 대기업 등 다양한 주체를 매개로 하는 연결의 역량이 쌓이는 듯 하다. 이런 연결의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과 수용력이 는 것 같다. 

감자빵 : 나는 민간 중간지원조직에서 5년 정도의 경험이 있다. 주로 기부금을 활용한다. 그래서 투명성을 고려하고 합리적으로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을 이슈 없이 잘 처리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일하며 쌓인 전문성이다. 비영리가 일하는 방법과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 감각적으로 알게 됐다.

튼튼 : 사회적경제 및 시민사회 영역에서 10여 년 간 일하면서 일을 대하는 태도와 감각을 배웠다. 늘여서 설명하자면, 사회현안과 새롭게 제안되는 의제를 파악하고 그 함의를 활용해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업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수 있는 고객이 누구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같은 감각을 배웠다. 또 사업에 참여하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사람과 소통하는 단계와 방식을 배웠다.

지니 : 나는 생협조직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수의 조합원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 많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를 설명하고 또 참여하게 하기 위한 언어를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다보니 사람의 마음을 얻는 부분에 대해서 전문성 아닌 전문성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일이 되게 하는 방식’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Q. 일하며 내 전문성을 내가 의심하게 되거나 사업을 진행하면서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있는지.

윈터 : 융자사업을 진행했을 때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 관련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해야하는데 조직에서 그것까지는 신경써주지 않아서 스스로 공부하는 수 밖에 없다. 팀 스터디도 있지만 업무가 바쁘다보니 지속적으로 운영되지도 않는다. 

감자빵 : 나는 아직 경험한 조직이 하나 뿐이다. 그렇다보니 일을 하다보면 ‘이 조직에서만 유효한 방식이 아닐까?’ 하는 좀 특수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다른 조직에 가서도 이 방식이 통할까’ 하는 방식의 쓸모에 대한 고민을 3년 차 정도까진 좀 했다. 또 당시에 맡은 사업이 계속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오래 일하다 보니 그때그때 열심히 했던 게 다른 업무 진행에 도움이 되고 다양하게 해본 게 좀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다양하게 하느라 힘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또 대부분의 사업에서 들은 이야기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실무자로 일하면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경우가 많이 없었는데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분명 다 이해는 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누군가에게 이를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건 어렵다. 사실 교수님이나 유명한 연사님들이 그런 건 다 해주시니까. 그렇지만 일을 할수록 나도 역량을 기를 때가 왔다고 느낀다. 담당하는 팀의 성장을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분들을 연결해주는 것도 역량이다. 그런데 일 하다 보면 내 네트워크가 조직의 네트워크를 넘을 수 없다. 내 네트워크가 너무 한 줌(?)이라 연결하는 역할에 부족함을 느낀다. 그런데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꽤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오히려 조직에서 욕구가 있으면 내 강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Q. 전문성과 연관된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지

윈터 : 지금 속한 조직에서만 그런건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조직이 하는 일 자체가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업무의 진행방식을 보면 내가 아니라도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처럼 일의 프로세스가 정립되어 있다거나 업무 내에서 분야가 딱딱 나눠져 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을 더 잘해내기 위해선 더 공부하고 네트워크도 쌓아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일하는 조직은 그 정도까지 요구하는 것 같지도 않다. 구성원들도 이에 대해서 각자 고민하지만, 합의나 공론이 일어나진 않는다. 사회적경제의 전문성을 쌓는다면 차라리 개별 조직에서 일하는 게 더 전문성을 쌓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중간지원조직에서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물론 지금 하는 일에서 가치나 임팩트를 부여하기 위한 발전적인 고민을 한다면 개선하고 나아갈 방향이 있을텐데, 그런 고민을 다 같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 게 현실이다. 

튼튼 : 윈터의 고민과 이어질 수 있겠다. 사실 우리가 영리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전문성을 가질 수도 없고 가지려고 하는 것도 적절한 태도는 아니다. 사실 수준까지 갈 필요가 없다. 이전에 사회적금융을 담당한 적이 있었는데, 영리보다 금융을 잘 하거나 관련 전공을 수료한 사람보다 잘할 순 없었다. 또 환경에 대한 일을 한다치면 환경 전공 학위를 가지고 있거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 따라갈 수 없었다. 앞서 업무의 태도나 감각으로 표현되는 전문성을 쌓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주제의 사업을 다루면서 이행해 나가야 하는 과업의 방식과 범위를 비롯해 함께 협업할 기관을 찾는 것 등의 감각이 우리의 전문성이다.  

지니 : 고민이라기보다 전문성이 나오면 억울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생협에서 중요한 내부정책을 만들 때 유명한 교수님을 데려온다. 하시는 이야기들 보면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 또 오래된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왜 우리의 전문성에 대한 방향이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나같은 실무자에게 발언권이 없는 게 학위가 없기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대학원 진학고민을 했던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대학원의 목표가 발언권인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래서 협동조합 내에서 개별 주체로서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한 전문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협동조합인데, 생각보다 자치적인 목소리보다 외부 전문가의 목소리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음을 느낀다.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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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문성에 대한 의심, 당혹감 등을 느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튼튼 : 화가 나면서 ‘어떻게든 잘한다’ 같은 승부욕이 화르륵 타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니 : 나도 튼튼과 비슷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시키지 않아도 나서서 밤을 새고 주말을 반납하고 일을 하면서 ‘내 능력을 보여줘야겠다’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그런데 이런 식의 대응이 지속가능한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방법이다. 어느날 내가 ‘이렇게 노력할거면 더 좋은 급여를 주는 곳에 가는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들을 잊고 인정받는 것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방법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윈터 : 이야기한 것들 다 공감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조직에 기대하는 게 없다. 힘든 상황이 일정 수준을 지나면 다 놓게된다. 바꿔보려고 하다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오면, 기대가 접히고 내 상황은 내가 알아서 스스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직에 뭔가를 크게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가 없으니 욕할 거리도 없고 실망도 없다.  

Q.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가 있다면

지니 : 사실 내 직무가 뭔지 모르겠다. 가끔 화가 나면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는데 ‘지금 내 커리어로는 어떤 부서로 지원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여기서 뭘했지’하는 생각도 든다. 조직 내에서 내 역할이나 직무가 명확하지 않다. 만능으로 다 해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팀의 이름이나 역할은 있지만 업무의 과업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진 않아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뭐든지 다 해내야 한다. 어떤 날엔 영어를 잘해야 하고, 어떤 날은 대외활동을 잘 해야 한다. 업무량도 많고 필요한 역량도 많다. 그래서 이도저도 안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무엇을 내 핵심역량으로 봐야할지 모르겠다. 아마 생협이라는 구조 안에서 실무자들이 겪는 고민일 거 같기도 하다. 

윈터 : 일을 하면서 성공 모델을 본적이 없는 게 큰 것 같다. 비영리 만의 성공모델이 있으면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커리어 루트나 일의 레퍼런스가 굉장히 불명확하다. 무엇이 잘하는 거고, 어떻게 했을 때 우리가 성공한거다라는 케이스가 없다. 최소 방향성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조차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비영리는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진 않지만, 그런 모양새가 될 수 있는 기부를 하는 사람과 기부를 받는 사람이 있다. 우리 조직의 사업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갑이라고 볼 수 있는 기부처가 원하는 수치를 맞춰주는 일을 한다. 갑과 더 사업에 대해 고민하고 가치를 추구하면서 나아가면 좋겠는데 결국에는 문서와 돈을 쓰는 일밖에 없다. 비영리는 영리보다 좀 더 많은 이해관계자와 소통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고도화된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우리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전문성도 영리의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하니 영리의 논리에 매몰되는 것 같기도 하다. 

감자빵 : 비영리 모임의 경우, 전문성에서 시작하더라도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게 나쁘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렇지만 전문성과 노동환경은 다른 분야고 두 개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발화돼야 한다. 비영리의 일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와 지속적인 케이스 공유가 필요하다. 

나는 분명 우리의 일이 전문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구체적으로 우리의 일을 말하려는 노력과 자리가 부족하다. 정말 잘 나가는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이 우리 분야에서 일한다고 해서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만의 감수성의 방식이 있다. 비영리의 기준이 아닌 영리의 방식인 효율로만 보면 뒤처지는 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리워드에 비해 일을 잘하는 플레이어들이 진짜 많다. 비영리와 사회적경제 분야는 자세히 보면 석박사 밭(?)일 정도로 고학력자가 많다. 좋은 학력으로 보상이 더 큰 곳에 갈 수 도 있지만 우리분야에 남아서 다양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렇지만 다들 겸손하고 조용한 거 같기도 하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니 고쳐달라 보다는 우리의 능력과 역량이 이런데 나를 모셔가라(?)하는게 순서에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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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특히, 영리에서 온 사람들이 '진짜 전문가'로 인식되고 활동가나 실무자는 뭔가를 '수행'하는 역할로만 고정된다는 느낌도 있다. 일하면서 이런 것들을 느꼈던 순간이 있는지 궁금하다. 또 이런 현상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튼튼 :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비영리나 사회적경제에서 일하고 싶지만 여기서 꾸준히 일한 사람보다는 영리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돌아오면 인정받는 경우가 많으니 영리에서 경험을 쌓고 올 거라는 이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영리에서 넘어온 전문가들에 대한 인식은 긍정반 부정반의 느낌이 있다. 영리에서 넘어온 분들은 ‘돈을 잘 버는 것을 포기하고 배운 것들로 좋은 일을 하겠다’는 동기나 목표가 분명했다. 그래서 오히려 비영리에 오래 있던 분들보다 역량이나 전문성 태도가 좋았던 기억이 많다. 영리에서 온 분들과 일할 때 여러모로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존경하고 좋아했다. 

다만, 인격을 배제하고 영리에서 넘어온 사람에 대해서 무한으로 선망의 분위기를 보내는 것이 배알이 꼴렸다(?). 인정할 것을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입을 떼고 이야기를 하면 콘텐츠가 됐다. 하지만 내가 가진 전문성인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은 언제나 고평가된 적이 없다. 연구일을 할 때는 내 전문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도 내 전문성을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 그 이상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다. 우리의 이 전문성이 능력의 일부로 평가되어야 한다. 아직 정확한 명칭이 없는 우리의 전문성에 이름을 붙이고 평가체계를 만드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비영리에서 개발한 능력도 인정하고 고평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영리에서 배울수 없는 그 ‘무엇’을 계속해서 개발해 나가야 한다.   

윈터 : 튼튼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도 영리에서 온 사람과 일한 적이 있는데 비영리로 전환을 해야겠다는 큰 경험과 결심이 있어 일하기 쉬웠다. 외에 어려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느끼지 못했다. 이 흐름의 이야기를 전반으로 넓혀서 생각해보자면, 이미 비영리만이 가진 전문성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는데 영리분야에 대한 동경과 선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영리의 전문성을 중요한 가치로 잡다보니 우리가 잘하는 것조차 내팽개치고 쫓아가려고 하는게 아닌가 한다. 그런 모습이 좀 안타깝다. 물론 리더들도 고민하고 있을 거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돈에 관련된 부분도 떼어 놓을 순 없겠지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방향성을 명확히하고 가치를 지켜내야 하는데 여기저기 흔들리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지니 : 우리조직도 사업적인 성과를 늘리기 위해 영리기업 출신들을 스카웃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 왜 생협은 새벽배송을 안하냐고 물었다. 우리는 소비자의 편안함을 만드는 조직이 아닌데, 조직은 그 이유를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다. 우리가 왜 만들어졌는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와 사업성과가 충돌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 외부에서 온, ‘진짜 전문가’로 생각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힘을 얻고 이게 대세고 이를 따라야 한다는 흐름이 만들어 질 때가 많다. 조직과 목적이 바뀌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 조직에서 오래 일하고 조직의 미션이 내재화 된 사람들은 발언의 기회가 없어지고 그런 이야기들은 고리타분 한 것, 트렌드를 모르는 것 취급을 받게 되는게 어렵다. 사업의 성과에만 집중하니 조직의 정체성을 내재화하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우리가 해결해야하는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논의하기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다.

Q. 이야기 하다보니, '현장 전문가'에 대한 인식이 낮고 가져야 할 역량에 대한 범위나 깊이에 대한 고민이 논의조차 되지 않아 실무자들이 혼란을 더욱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내 업무의 전문가'가 가진 모습이 있다면 무엇인지.

지니 : 정말 모르겠다. 어렵다. 최근에 경험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업무를 맡아 진행해 혼란스러움이 더 커진 상태다. 업무를 하면서 내 머릿속은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조직의 목적,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알아가는 것 같긴 한데, 내 업무의 전문성을 생각하면 혼돈 속으로 빠졌다. 그럼에도 대답해보자면, 조직에서 부여하는 밀도 낮은 일 말고, 어떤 한 분야를 한다고 했을 때 "그건 ‘지니’에게 물어봐라"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내가 생각하는 전문가의 모습이다. 

윈터 :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네트워킹 능력이 중요하다. 이를 활용해 자원과 조직을 적재적소에 해줘야 한다. 넓게보면, 사회적금융에는 경제와 금융 전공지식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전반이 굴러가는 것도 날카롭게 알아야한다. 넓은 분야에 대해 폭넓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경제에 한정하더라도, 요즘 생태계의 분위기가 어떤지, 정책적으로 어떤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고 타조직에서 무슨 사업을 하는지 수시로 체크하면서 귀를 열어 놓아야 하는 게 현장전문가로서 해야 하는 일이면서 현장 전문가라고 불릴 수 있는 역량이라고 본다.

감자빵 : 제일 어려운 질문이었다.(깊은 한숨). 개인적인 가치관과 일이 일치가 되어야 한다. ‘여기가 또는 이 방식이 맞을까’ 하는 고민이 길어진다면 전문가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또 중간지원조직에 있으니 생태계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관점에서 어떤 사업과 방식이 필요한지, 같이 협업할 파트너들의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할 수 있는 비영리적 감수성도 중요하다. 영리에 있는 큰 기업들은 우리가 사업비로 지출하는 통상의 지원금보다 더 큰 돈을 바로 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생태계의 조직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기능하는지 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돈이더라도 우리가 더 잘 쓸 수 있고 잘 지원할 수 있다. 기부처도 우리의 이런 전문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튼튼 : 늘 문제제기만 하지 뚜렷한 답을 찾진 못하고 찾는 중이기도 해서 답을 하는데 어렵다고 느꼈다. 하나의 섹터에서 근무하면서 정보와 데이터가 아카이빙 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전문성이다. 자기가 담당하는 일 외에도, 유관 업체에서 하는 사업, 사회혁신 사업의 아이디어들, 포럼 컨퍼런스 교육 같은 거 두루두루 찾아다니면서 쌓은 데이터가 있다. 이게 누적이 되면 어느 순간 섹터의 흐름을 볼 수 있고 장단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 

물론 시간이 이런 눈을 만들어주진 않는다. 비슷하게 오래됐더라도 직접 탐색하지 않으면 이를 누적시킬 수 없다. 상위 리더십이나 대외협력 담당자에 비해서 일개 활동가인 나는 미비(?)하지만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말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형성하는데 이게 전문성을 모으는 과정이기도 하다. 실무자의 일을 제일 잘 아는 건 실무자다. 그리고 그게 바로 현장 전문가다. 현장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가질 수 있는 전문성이다. 메타 네러티브나 함의보다 사업의 실무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특정사업은 대상자들이 화가 나있는 경우가 많으니 소통 유의사항이 있다던지, 증빙자료는 이런 구성이 필요하다던지, 선정기준은 이렇게 잡는 게 좋다던지 하는 것들이 현장 전문가의 전문성이라고 생각한다. 

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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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무자들의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 이런게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교육이나 조직적 제도가 있는지.

카롱 : 비영리나 사회적경제는 외부의 강의나 강연이 많지 않기도 해서, 어디가서 뭘 배워야하는지도 감이 안잡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직 내부에서 스터디 모임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소액의 금전지원이나 근무시간 인정 등을 장려해주면 좋겠다.

지니 : 종종 의욕을 가지고 일하다보면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동료들끼리 자기의 강점, 일의 목적, 거기서 나오는 성과나 뿌듯함 같은 것을 공유하면서 우리 일의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감자빵 : 사업 운영만 하다보면 목적이나 방향을 잃기 쉽다. 기한을 맞춰야 하니 쳐내기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차원으로의 회고가 필요하다. 일을 하다보면 내부의 피드백이 너무 중요한데, 바쁘다보니 잘 못챙긴다. 조직 전체가 어렵다면 최소한 팀 범위로라도 필요하다. 생각을 정리하고 의견을 내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이후 좀 더 경력을 갖춘 담당자가 됐을 때 더 깊은 의견과 방향제시를 할 수 있고 내 사업에 대한 분석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또 한가지 팀에서 오고 갈 수 있는 정보와 외부에서 오고 갈 수 있는 정보가 다르다. 우리 영역자체에서 학습하는 분위기가 생기면 좋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 잘하는 거 숨기고 이건 ‘누구나 다하잖아요’라는 태도보다 ‘나 이거 좀 해봐서 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한다. 프로젝트 운영 다들 해봐서 아시지 않냐.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힘든 일인거 다알지 않나. 이런 이야기들을 활발하게 주고 받는 게 필요하다.

또 비영리는 영리에 비해 콘텐츠나 정보량이 적어 아쉬움이 많다. 비영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풀어가야하는 것이 많다. 조직안에서도 교육팀이 있는 곳이 없고 개인의 노력이나 적극적인 자세가 엄청 요구된다. 내가 먼저 요구하지 않으면 조직도 채워주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나의 의지와 노력이 너무 필요하다. 그에 비해서 일은 즐거울 때도 있지만 힘들 때도 있다. 재미없고 힘들 때, 개인이 노력하길 멈추면 더 이상 개인이 성장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Q. ‘전문성’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다뤘다. 오늘 담화를 나누며 느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튼튼 : 영리에서 온 사람들만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에 열폭(?)하고 있었는데. 우리 전문성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자체가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직을 하고 적응을 할 때 ‘왜 나는 경력이 있는데 인정을 안해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분노에 휩싸이곤 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를 통해서 객관적인 인정의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씁쓸하기도 하다. 더해 가까운 시일내에 비영리와 사회적경제 현장의 전문성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 고민을 해봐야하나하는 목표도 생겼다. 우리의 전문성을 분류하고 수집해 측정할 수 성과로 표출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카롱 : 사회적경제나 비영리 생태계 내에서 사람이 아니라 기업과 팀들만 고려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지원조직을 비롯해 현장에서 지원을 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이나 역량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다. 이에 대한 고민과 이야기도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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