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광주판>은 지역의 소식과 의견이 전국에 알려질 수 있도록 광주판만의 ‘칼럼’을 연재합니다. 광주에서 사회혁신을 위해 활동하는 리더들이 독자 여러분께 목소리를 직접 전합니다. 첫번째 순서로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윤희철 센터장이 ‘지속가능발전 이야기’를 월 1회씩 총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① 지속성이 아닌 지탱가능성
② 왜 선진국은 지속가능발전을 생각하는가
③ 왜 유엔은 SDGs를 만들었는가?
④ 지속가능발전 기본법이 시행된다
⑤ 지속가능발전의 핵심은 협치와 시민참여 - 숙의공론장
⑥ 지속가능발전은 융합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⑦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성평등
⑧ 지속가능한 도시란? 모두를 담는 그릇 - 포용도시
⑨ 지속가능발전과 탈성장
⑩ 지속불가능성과 기후위기

요즘 국제 정상들이나 주요 기구들의 회의를 보면 모두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내세운다. 최근 열린 국제회의의 주요 화두는 SDGs의 이행과 목표의 달성이다. 1970년대부터 고민하던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이 점차 확대되어 현재는 주류가 되고 있다.

1713년 한스 칼 폰 칼로위츠, 지속가능성 최초 언급

왜 선진국은 지속가능발전을 말할까? 역사적 원천을 먼저 살펴보자. 1713년 한스 칼 폰 칼로위츠(Hans Carl von Carlowitz)는 작센(Saxony)의 사라지는 숲에 대한 반응으로 ‘지속가능성(Nachhaltigkeit)’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그 당시 광업과 종사자 수천 명의 생계에 위협이 닥쳤다. 광산의 광석 고갈이 아닌 심각한 목재 부족 때문이었다. 광석 제련과정에서 땔감으로 목재가 사용되면서 주변의 숲이 완전히 사라졌다. 결국 목재 가격의 상승은 광산산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 과정을 목격했고, 임업에 대해 종합적으로 저술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최초로 언급했다.

1950년 유럽사회의 도시화율, 전 세계의 50%

유럽 각 나라는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새로운 성장의 경험을 하게 되고 동시에 식민지를 경영하게 된다. 특히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이 그리 크지 않지만,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까지 거의 모든 세계를 지배하면서 식량과 인적 자원을 끌어왔다.

20세기를 전후로 세계만국박람회가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오늘날 유럽 여행을 가면 오래된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으리으리한 대리석 건축물은 바로 이 시기 자원과 힘이 모두 유럽의 도시로 몰렸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자신들의 부와 힘을 과시하는 욕망이 표현된 것이다. 

유엔 해비타트가 2016년 발표한 전 세계 도시화율에서 당시 도시에 집중된 힘을 살펴보면, 1950년에 이미 유럽 사회는 50%의 도시화율을 보였고, 아시아는 고작 17.5%에 불과했다.

하지만 선진국도 1950년대 이후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한다.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이제는 자국의 힘만으로 성장을 고민하는 시기가 되었다. 외부의 자원을 가지고 고도성장을 경험하던 나라들이 이제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와 같이 연평균 5% 이상의 경제성장은 더이상 힘들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1962년 레이첼 카슨, 자연환경 파괴에 대해 경고  

한편, 이 시기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 나타난다. 1962년 레이첼 카슨(Rachel-Carson)은 ‘침묵의 봄’이란 책을 내고 자연환경 파괴에 따른 인류에 대해 경고를 했다. 그동안 무분별하게 자행하던 환경파괴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작되었다.

종교계에서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린 화이트 2세(Lynn White Jr.)는 「우리의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근거」라는 논문에서 창세기 1장 28절 “땅을 정복하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역시 환경문제에 대한 가치 변화가 나타난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1970년 지구의 날이 처음 열렸고, 지구환경을 이대로 두면 안된다는 인식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1972년 로마클럽이 보고서를 냈고, 인류의 성장 방식에 대한 경고가 나타났다.

뉴욕 타임즈 지구의 날 기사(1970년)
뉴욕 타임즈 지구의 날 기사(1970년)

이 변화는 1987년 유엔환경계획(UNEP)의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에서 당시 위원장을 맡고 있던 노르웨이 브룬트란트 수상의 이름을 딴 '브룬트란트 보고서(Brundtland Report)'에 잘 나타나 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지속가능발전의 개념과 정의는 200쪽이 넘는 이 보고서에서 다루고 있다. “미래세대로 하여금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발전”으로 우리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저성장시대, 새로운 고민 필요  

불과 반세기만의 변화는 단순히 환경 문제가 중요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선진국의 GDP 성장률을 보면, 거의 0%에 근접할 정도로 낮은 성장률을 보인다. 이제는 과거의 영화를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을 직감했고, 저성장시대의 새로운 성장 전략을 자연스레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시에 고층건물을 세울 때도 유지 관리가 중요해졌다. 고층 건물을 세울 기술적 역량은 되지만, 이 건물을 채울 경제적 능력이 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도시 외곽을 개발할 때도 도시 전반에 걸쳐 올바른 정책인지 재판단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저성장 시대와 함께 기후위기, 사회적 양극화, 인구고령화, 청년실업 등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결국 해결 방법을 모색하면서 나온 결과는 지속가능발전이었다.

선진국의 이러한 변화는 현재 저성장시대에 들어선 우리나라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경험한 우리는 아직도 성장의 향수를 갈망한다. 고도성장만이 살 길인 것처럼 성장 전략을 내세운다. 하지만 우리도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다수의 선진국이 이상주의자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지속가능발전’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그들도 나름의 생존 전략을 고민한 결과가 ‘지속가능발전’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는 G7의 문턱에 서서 선진국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동안의 성장과 발전이 가져다준 결과다. 하지만 이제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현재 발전에 관한 방식이 지탱가능한가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변곡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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