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우리는 택배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과로사 뉴스를 어느 때보다 많이 접한다. 오늘 밤에 주문만 하면, 다음 날 내 집 앞까지 배송해주는 한국의 배달 서비스는 빠르고 정확하다.

그러나 내가 누리는 편리함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이나 불공정함과 맞바꾼 것은 아닌지 고심하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궂은 날에는 배달을 가급적 자제하자거나 혹은 속도가 느려도 괜찮은 배송을 소비하고 싶다는 일부의 여론도 생겨났다.

어쩌면 이것은 함께 잘살기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호혜와 연대의 시작일 수도 있다. 삶에서 익숙해진 어떤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우리는 현재를,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은 꾸준하게 일어난다. 서울시 강동구에서의 8년간의 활동으로 들려주는 함께강동 자산화사업단 이희동 단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희동 단장(왼쪽 첫번째)이 돌봄SOS센터 도시락을 배달하는 라이더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희동 단장(왼쪽 첫번째)이 돌봄SOS센터 도시락을 배달하는 라이더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Q.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19년까지 강동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으로 있다가 모법인의 센터 수탁 기간이 끝나서 작년에는 백수로 지냈습니다.(웃음) 센터 일이 끝나고 서울시 돌봄SOS센터의 광역추진위원으로 취약계층 식사 지원을 위한 도시락 배달 사업의 공동 배송 모델을 만드는 일을 함께했어요.

현재 공식적인 제 명함은 두 개인데, 첫 번째는 함께강동 자산화사업단 단장이고, 두 번째는 피플로직스라는 물류회사의 기획본부장입니다. 원래 물류 쪽에서 8년 정도 일을 했고, 사회적경제 분야에서도 7년 정도 일을 배웠고, 전공이 북한학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접목해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가지고, 작년부터 인천에서 물류 운송 일을 하는 주식회사를 사회적경제 기업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Q. 물류 분야의 영리 기업에서 8년 정도 일하다가 사회적경제 분야로 옮겼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012년 크리스마스에 저랑 같이 일하시던 기사님이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크리스마스날 안산에 있는 영안실에 갔는데, 아빠 사진 밑에서 저희 둘째 만한 아이가 뛰어놀고 있더라고요. 그 당시 기사님의 유족분들께 부의금으로 간 것이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모은, 말도 안 되게 적은 금액뿐이었어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 이후 기사분들은 기업의 직접 고용에서 특수 노동직으로 바뀌었습니다. 회사가 기사 노동자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지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이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된 거죠.

대학에서 마르크스를 공부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가 대기업에 취직하고 현실을 보니 책으로만 배운 노동자와 실제로 만난 노동자는 달랐습니다. ‘노동자는 정의롭다’라고 배웠는데, 현실의 노동자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그렇게 완전히 다른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들 스스로 조직되어 노동자를 위해 좀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사회적경제를 접하게 된 거죠.

Q. 강동구에서 했던 주요 활동을 무엇인가요?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일할 때는 사회적경제 인식 확산을 위한 사회적경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뜰장을 운영해서 사회적경제 기업 제품의 판로도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 자치구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강동구 내에서 인큐베이팅을 했어요. 사회적경제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해내는 일을 했습니다.

강동구는 지역의 힘으로 ‘함께강동’이라는 사회적협동조합 법인을 세워서 이전에 외부에서 들어온 중간지원조직체가 하던 일을 물려받았습니다. ‘함께강동’이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특화사업단을 모두 수탁받아 운영했고, 도시재생지원센터장도 ‘함께강동’의 조합원입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서울시 혁신 정책의 의제들을 한 조직에서, 그리고 한 지역에서 실험해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강동구에서 그렇게 지역 법인도 만들면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강동구에는 사실 다른 자치구처럼 오래된 지역 풀뿌리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지 않았어요. 기존의 아주 오래된 조직이 많지 않다 보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조금 더 모일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동구는 ‘베드타운’에 가까워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경제 사업자뿐 아니라 마을공동체를 같이 안고 갈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역 일을 하는 단위가 사회적경제 기업가만이 아니라 마을공동체나 주민들의 참여가 좀 더 쉬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곳으로 일하러 나가지 않고 강동구에서 하루의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움직였던 거죠. 그리고 강동구는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논밭이 남아 있는 자치구 중에 하나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일하는 농부분들과도 도시농업과 관련해서 사회적경제와 협업할 수 있었습니다.

Q. 지역에서 사회적경제를 알리고 지원하고, 주민을 조직하는 중간지원자의 역할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활동했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기본적으로 사회적경제라는 것이 사람마다 정의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행정 같은 경우는 사회적기업이 몇 개인지, 마을기업이 몇 개인지 개수를 더 중요시하고, 성과 위주로 가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적경제라는 것은 사회가 조금 더 커지고, 공동체가 만들어지면서 그들이 지역 안에서 하는 경제 행위입니다. 그래서 주민 또는 시민의 마을공동체나 풀뿌리 시민사회 없이는 사회적경제가 어려울 거예요. 그들과의 관계, 특히 사회적경제에 대해서 얼마나 연대 의식을 갖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사회적경제센터에 있을 때도 주민 교육, 연대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Q. 서울시의 돌봄SOS센터 사업 중 도시락 공동 배송 사업을 운영하면서 ‘사회적경제 배송’이라는 개념을 소개해주셨습니다.

2019년에 돌봄SOS센터 시범사업을 서울시 5개 자치구에서 진행했는데, 식사 지원 사업을 운영하면서 배송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었습니다. 제가 기존에 물류 분야 일을 했고, 사회적경제도 알고 있다 보니 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보자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2020년 추가, 공모를 통해 돌봄SOS센터 식사 지원 도시락 공동 배송 모델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공동 배송 모델화 사업의 모니터링과 컨설팅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 배송 모델을 만들어 돌려보는 거였어요.

‘라이더협동조합’이라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연대 및 사회적경제 조직화와 주민조직화 모델이 기본에 있습니다. 동남권서울시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라이더협의회를 구축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들을 도시락 배송에 결합하도록 하고, 그 조직을 사회적경제 기업화하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제가 사회적경제 분야로 옮겨와서도 물류 일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물류는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야 사업이 가능한데, 사회적경제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여태까지 시도하지 못하다가 작년에 도시락 배송을 하게 되면서 그 규모의 경제가 모인 거죠. 일종의 씨드 물량이 되어준 겁니다. 이 물량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원에 우리가 가진 다른 돌봄 서비스나 재화를 엮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개념입니다. 라이더들이 단순히 도시락만 배달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더 창출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일회용 도시락이 아닌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다회용기를 회수하면서 라이더가 도시락을 받으시는 분들의 건강이나 안부 체크 내용을 취합해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사회적경제 배송 모델들은 확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라이더들이 단순히 돌봄SOS센터의 도시락만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소상공인 또는 사회적경제 조직과 연결되는 것을 고민할 수도 있고요. 또 지역에는 예를 들면, 공공급식 같은 공적 물류가 있는데 이런 물류들을 사회적경제와 연계해서 같이 풀어볼 수도 있습니다.

Q. 사회적경제를 통한혁신과 대안 모색을 위해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변화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사회적경제와 함께 꾸고 계신 미래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사회적경제 임팩트 사업을 하면서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 취약계층 노동자가 취약계층을 돌본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가 굉장히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요즘 많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저희는 중장년 라이더들에 좀 더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젊은 라이더들처럼 일하는 것이 어려워지다 보니 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오전에 정기적인 배송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 돌봄SOS센터의 도시락 배송 사업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민들이 주민을 돌보는 개념을 모델화하려고 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이 지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사례를 시도해보는 것이기도 하고요. 불편 없이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제가 만들고 싶은 사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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