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하 잉쿱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안미하 잉쿱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잉쿱사회적협동조합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잘’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영어를 알게 하는 교육을 해요. 우리나라는 영어를 많이 사용해 영어를 모르면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요. 아이들이 뭔가를 하고 싶을 때 영어라는 벽에 부딪히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자력으로 살 수 있고 노력해볼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죠."

영어를 모른다면 생활 전반에 제약이 많이 생긴다. 영어를 사용하는 브랜드, 단어, 제품이 많다. '파리바게뜨 앞에서 만나자'라고 했을 때 영어로 적힌 'PARIS BAGUETTE' 간판을 읽지 못하고 길을 헤맬 수 있다. 일상 뿐 아니라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한 뒤에도 학업과 업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기초교육이 보장된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겠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잉쿱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안미하, 이하 잉쿱)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모여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에게 영어교육을 진행한다.

잉쿱은 교육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의 영어교육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성인영어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은 강사가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다. 협동조합 운영 10년차에 접어들며 지난 4월 영리법인 형태인 '협동조합'에서 비영리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유형을 변경했다. 이를 통해 잉쿱의 공신력 확보와 기업과의 협업으로 더 많은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할 예정이다.

교육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는 강사들/출처=잉쿱사회적협동조합
교육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는 강사들/출처=잉쿱사회적협동조합

경력단절 여성, 복지사각지대 아동의 현실 알게 돼

안미하 이사장은 학업과 사업 등을 하며 15년 간 미국에서 활동하다 2011년 한국에 들어왔다. 잠시 다음 스텝을 고민하던 찰나에 우연히 재능기부로 영어교육을 하게 됐다. 재능기부를 하며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을 마주했다. 영어를 모를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과 고학력과 자격증, 경력 등이 있지만 일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아이들이 상담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상황이 많아 아이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며 "엄마들 역시 석박사 유학은 기본이고 영어교사자격증, TESOL* 자격증이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지만 알파벳부터 알려줘야 했다. 아이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던 탓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가정환경으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시피 했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았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했을 거라는 가정하에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교육 과정에서 알파벳은 이틀이면 끝난다. 처음 보는 외국어를 이틀 만에 배우고 문장을 배우는 건 성인에게도 쉬운일은 아니다. 그는 "무엇을 상상하던 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아이들이 많다"며 "'요즘 시대에 영어를 왜못해? 열심히 안해서 그런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속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말하는 건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의 약자.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국가에서 영어를 교육하는 방법을 수료하는 과정. 수료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영어교사 자격증이 발급된다.

영어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출처=잉쿱사회적협동조합
영어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출처=잉쿱사회적협동조합

아이들에게 장기 교육을 제공하는 컴브릿지 프로젝트

"10년이라는 세월이 우리에게 준 것은 확신이에요. 우리가 이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임할 수 있고 또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이제는 좀 더 규모를 키우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야죠."

잉쿱은 아이들에게 단기적인 교육보다 장기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어 공교육에 들어가는 초등학교 3, 4학년 아이들부터 영어교육을 진행한다. 그는 "교육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지지를 통해 안정감을 형성해 주는 것 역시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한 번 맡은 아이는 끝까지 끌고 간다"며 "초등학교 저학년에 만난 아이들이 대학을 진학 할 때까지 인연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컴브릿지 프로젝트를 통해 영리기업과 함께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장기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컴브릿지는 컴퍼니(Company)가 브릿지(Bridge)가 된다는 의미다.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통해 보육기관이나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1년 간 장기적인 영어 교육을 진행한다. 안 이사장은 "벤츠 코리아와 교육 사업을 하며 성과를 추적했는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일반집단과 비교했을 때 읽기실력이 더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뿐만 아니라 선생님에 대한 신뢰도와 정서적 지지도 역시 높았다"고 말했다. 이어 "컴브릿지 프로젝트로 전국 240개의 보육원과 기업을 연결해 전국의 아이들과 엄마 강사들과 함께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영어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출처=잉쿱사회적협동조합
영어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출처=잉쿱사회적협동조합

AR, VR 활용한 한영 교육 콘텐츠로 수익모델 개발 

안 이사장은 자체 영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한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깨나 속썩이던 아이가 잉쿱의 교육을 받으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고 나아가 외부 대회에서 수상까지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안 이사장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더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참가비가 비싸 아이들이 대회에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까짓것 잉쿱 내외부의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회를 직접 개최했다. 6개 중 4개 분야에서 잉쿱의 학생들이 수상을 거머졌다. 그날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변화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이들에게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이렇게 바뀔 수 있구나를 체감했다"며 "한 아이는 '한 번도 공부로 자랑해본 적이 없었는데 자랑 할 수 있게 해준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잉쿱은 울고 웃던 10년간의 경험을 동력으로 사업범위와 규모를 넓혀간다. 영어 교육 외의 장기적인 수익모델을 위해 AR과 VR을 활용한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직간접 체험을 통해 기후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과학프로그램을 기획중에 있다. 콘텐츠는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 언어로 제작중이다. 

"10여년의 경험으로 많은 걸 배웠죠. 농담처럼 '이미 장전 된 총은 그만 닦자!'고 이야기 해요. 영어교육은 아이들이 변할 수 있는 매개체에요. 잉쿱에서 일한 선생님들이라면 아이들의 인생이 변하는 것을 한 번쯤은 봤을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더 고맙다'라고 이야기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그래 가자!'라는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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