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불평등 사회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어떤 정책이 실효가 있는지를 놓고 전문가들의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기본소득은 아무런 조건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다. 기본자산은 기본소득과 달리 특정시점에 소액이 아닌 목돈을 지급한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관련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 무엇이 적합한지 고민해볼 수 있는 ‘불평등 사회 대안과 쟁점 : 기본소득 vs 기본자산’ 토론회가 지난 1월 28일 온라인으로 열렸다. 김두관·소병훈·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공동주최했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강남훈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김두관의원, 소병훈 의원, 허영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출처=용혜인 의원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강남훈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김두관의원, 소병훈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출처=용혜인 의원실

토론회 좌장은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가 맡았다. ‘왜 기본소득 제도인가?’를 주제로 서정희 군산대 교수('기본소득이 온다' 공동저자)가 먼저 발표했고, 김만권 경희대 교수('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저자)의 ‘왜 기본자산 제도인가?’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패널로는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와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이 참석해 발표자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대표주자 총출동

토론회는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도입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먼저 기본소득 측 소병훈·허영 민주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병훈 의원은 “4차 산업혁명 가속화로 일자리 감소 등 경제·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 의원은 지난해 9월 기본소득 정의규정과 지급대상 등을 명시하고, 지급액을 국가기본소득위원회에서 결정토록 하는 ‘기본소득 제정법’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허영 의원 역시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용혜인 의원 역시 “코로나19는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 사회정책의 상상력에 문을 열어줬다. 지난해 5월 정부재난지원금이 그 사례”라면서 “금과옥조로 여긴 재정건전성 고수에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더 적극적 재정정책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용 의원은 “코로나19가 끌어낸 정책적 상상력을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본소득당은 월 60만원 기본소득 지급을 내세우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기본소득 공론화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백승호 가톨릭대교수좌장,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 서정희 군산대교수,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김만권 경희대교수./출처=용혜인 의원실
왼쪽부터 백승호 가톨릭대교수좌장,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 서정희 군산대교수,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김만권 경희대교수./출처=용혜인 의원실

이에 비해 기본자산 측 김두관 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기본자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두관 의원은 “저는 기본자산을 주제로 지난해 두 번 토론회를 열고 신생아기본자산제와 이를 주거 정책과 결합한 국민자산주택제도를 제안했다”며 “기본자산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자산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구조적 불평등 해소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신생아 출생시 2000만원을 신탁해 성년이 됐을 때 5000만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신생아기본자산제’와 재원을 LH에 주거재원으로 신탁해 성년에 주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민자산주택제도’를 제안했다. 

강은미 의원은 “정의당은 ‘부모찬스’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청년이 삶을 열어가기 위한 3000만원 청년기초자산을 제안한다”며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이 대립적으로 논의되기보다 불평등의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지난 21대 총선 제1호 공약으로 모든 만 20세 청년에게 3000만원을 3년에 걸쳐 분할지급하는 ‘청년기초자산제’를 제시했다.

용 의원은 토론회 의의에 대해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의 소통을 위해 여는 장”이라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가 양 대안의 단순대립이 아닌 소통하는 자리였다는 의미다.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은 “일정 소득을 모두에게 보장하는 기본소득과 일정 자산을 제공하는 기본자산은 둘 다 불평등 완화위한 제도”라며 “하나의 제도를 실시하며 다른 제도를 보완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회성 목돈 지급으로는 일상 유지·계획 어려워... 기본소득 정기지급으로 가능”

서정희 교수는 기본소득의 관점에서 기본자산제의 쟁점을 짚었다. 그는 우선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은 모두 사회가 공유한 부에 대한 권리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뿌리가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본자산이 기본소득의 5가지 요건(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 중 보편성, 정기성과 무조건성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은 매달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반면, 기본자산은 성인이 되는 시기 일회성 목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서정희 교수가 '왜 기본소득인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서정희 교수가 '왜 기본소득인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서 교수는 “기본자산은 기회의 평등과 같은 ‘거시자유’를 추구하지만, 일회성 지급에 그치기 때문에 생활의 안정성이라는 목표는 배제한다”며 “목돈을 통한 자유 추구는 결국 자산 증식을 꾀하는 투자자의 삶을 선택하게끔 유도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기본소득은 삶의 최저선을 보장해 일상의 유지와 계획이 가능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기본자산 지급 대상을 청년으로 설정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삶에서 위험은 특정 연령에게 국한되지 않는다”며 “특히 공유부 분배라는 관점에서 보편성은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본자산이 불평등의 본질적인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고 봤다. 서 교수는 “한국에서 논의되는 기본자산은 증세없이 기존 상속세로 지급하자는 것”이라며 “증세없는 낮은 수준의 기본자산은 자산 불평등 완화 효과도 낮다”고 꼬집었다. 

그는 토론 말미에 “거시자유는 물론이고, 생활안정성과 자산불평등 완화는 모두 중요한 문제”라면서 “기본자산 단독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기본소득으로 생활안정성을 보장하고, 거기에 더해 기본자산을 도입되는 것은 고민해볼만 하다”고 밝히며 발표를 끝마쳤다.

“기본자산이 재원마련 용이하고, 실현 가능성 더 높아”

김만권 교수는 발표를 통해 기본자산이 더 나은 이유를 소개했다./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김만권 교수는 발표를 통해 기본자산이 더 나은 이유를 소개했다./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이어서 발표를 진행한 김만권 교수는 먼저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은 그 목적이 각각 ‘기본적 소비력 보장’과 ‘인생계획 실행 기회 제공’으로 상이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본자산은 ‘최소한의 사회적 상속’을 주자는 것”이라면서 “세대 간 불평등 완화에 더 효과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기본자산이 필요한 이유로 ▲계층이동 가능성 ▲재원마련의 용이성 ▲최초 수용과정에 있어 정치적 안정성 등 3가지를 들었다. 

먼저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해 “기본자산은 인생계획을 실천함으로써 계층간 이동 가능성을 높인다”며 “특히 여럿이 모은다면 상당한 자본금이 돼 실행력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모은 자본금으로 협동조합을 구축하거나 사회적기업을 설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그는 “기본소득은 불평등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수긍하며 만들어진 순응적 대안이라면, 기본자산은 결과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재원 마련의 용이성에 대해서는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모두 훌륭한 대안”이라면서도 “당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건 기본자산”이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은 1인당 매달 30만원씩 준다고 가정하면 180조원이 필요한데, 기본자산은 정의당의 청년사회상속제(만 20세 청년에게 3000만원 지급)를 예로 들어 약 16조원 안팎이면 가능하다는 분석을 소개했다. 

김만권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매 20년마다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액수의 금액을 배당하는 변형된 기본자산 '생애주기자본금'을 제안했다./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김만권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매 20년마다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액수의 금액을 배당하는 변형된 기본자산 '생애주기자본금'을 제안했다./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김 교수는 “기본소득을 실시하려면 기존 조세체계와 분배체계를 다 바꿔야 하지만, 기본자산은 기존 분배체계에서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원규모가 작기에 “기존 복지 수혜자의 조세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어 최초 수용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더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 교수는 “기본소득은 모든 구성원이 혜택을 보지만 기본자산은 유권자 대다수가 직접 수혜를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기본자산보다 주목받는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로 김 교수는 ‘생애주기자본금’을 제안하기도 했다. 생애주기자본금은 매 20년마다,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액수의 목돈을 배당하는 제도다. 가령 20살, 40살, 60살에 새로운 인생설계를 위한 목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모두의 생활영위 가능케 해” VS 기본자산 “부모찬스 대신 사회찬스”

이어진 토론시간에서도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에 대한 첨예한 토론이 펼쳐졌다. 먼저 안효상 상임이사는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은 정당성과 원천이 다르지 않다고 전제했다. 안 이사는 "개인들에게 물질적 토대를 제공해 자유를 실질적인 것으로 만들려 한다는 점에서 두 아이디어는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정당성을 사회 공유부에서 찾는다는 점과 개인의 자유 증진을 목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기본자산제는 일상적 소비를 넘어서는 목돈을 개인에게 귀속시킨다”면서 "공공의 것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소유적 개인주의가 강화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반면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공유지분권에 기초해 모두에게 적절한 생계수단을 제공하는 제도”라고 봤다. 공유지분권 모델이란 문명의 이점을 보존함과 동시에 모두에게 적절한 생계수단을 일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형태를 말한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이 토론하고 있다./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이 토론하고 있다./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유튜브 캡처

다음 토론자로 나선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은 자산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기본자산이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상당한 누진적 조세가 없다면 기본자산제로 자산불평등 해소가 쉽지 않다”면서도 “기본소득도 소액에서 시작할 수 있듯 기초자산도 한 번에 큰 규모로 시작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소장은 기본자산, 특히 ‘청년기초자산제’가 부모찬스대신 사회찬스를 위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나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해주자는 의미”이라며 “청년들이 겪는 취업, 주거, 결혼 등의 과제를 개인 책임이 아닌 사회 책임의 영역으로 넣자는 것”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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