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임정수립 100년, 다시 만세] 9. 아리랑의 붉은 승려를 아시나요?
[3.1운동‧임정수립 100년, 다시 만세] 9. 아리랑의 붉은 승려를 아시나요?
  • 이로운넷=최범준 인턴 기자
  • 승인 2019.04.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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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운암 김성숙 50주기...좌익계열 독립운동 전개, 1942년 임시정부 입각
중국 여성 두진훼이와 결혼, 피아니스트 손자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공연 진행

#. 중국에서 활동한 미국 기자 님 웨일스. 옌안에서 김산(본명 장지락)이라는 독립투사를 만난다. 이때 취재를 통해 집필한 회고록은 ‘아리랑’이란 책으로 남아있다. 김산이 남긴 회고에는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김충창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지난 12일,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의 5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운암은 독립운동을 하며 규광(奎光), 충창(忠昌), 창숙(昌淑) 등 이름을 썼다. 김충창은 김성숙이 사용했던 이름 중 하나다.

독립운동이 무르익던 1942년 충칭에서 제34회 임시의정원이 열렸다. 그간 임시정부와 함께하지 않았던 좌파정당들이 대거 합류했다. ‘통일의회’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운암 김성숙도 이때 임시정부에 합류한다. 임시정부 100주년, 운암 김성숙 50주기를 기념하며 김성숙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스님으로 활동했던 김성숙

독립정신이 투철했던 집에서 자란 김성숙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돌아오던 길,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서 온 스님 풍곡신원 선사를 만난다. 그는 그 길로 용문사로 들어가 출가한다. 성숙(星淑)은 이때 받은 법명이다.

김성숙은 이후 남양주 봉선사로 가 불교를 공부한다. 여기에서 손병희, 한용운 등과 친분을 쌓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봉선사 스님들과 시위운동을 주도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출소 후 스님신분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던 김성숙은 중국으로 향한다. 앞서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좌익계열 독립운동, 통합과 단결 강조

1923년, 김성숙은 베이징에 있는 민국대학에 입학한다. 정치학, 경제학 공부와 고려유학생회 등 유학생단체 활동을 병행했다. 그는 중국내 한인 사회운동 분열에 반대했고, 단결을 촉구하였다. 앞서 언급한 김산(장지락)은 김성숙의 후학이며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한 동지기도 하다.

이후 김성숙은 의열단에 가입해 선전부장으로 활동한다. 의열단장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원들을 황포군관학교에 입교시키는 등 활동을 진행했다. 1936년에는 중국 각지 독립운동가들을 모아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조직했다. 1937년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혁명자동맹·조선민족혁명당 등 3개 단체를 통합하여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조직하는데 가담하였다. 1938년에는 김원봉이 설립한 조선의용대에 가담해 정치부 주임, 지도위원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입각, 환국

좌우로 대립하던 독립운동은 1942년, 임시정부 아래 하나로 모인다.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에 합류하면서다. ‘통일의회’라고 불리는 제34회 임시의정원에 좌파계열을 포함한 신입의원 23명이 보궐선거로 당선됐다. 김성숙 역시 이때 임시정부에 입각한다. 당시 임시정부에 입각한 독립운동가로 김원봉, 유림, 류자명 등이 있다. 김성숙은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차장, 국무위원, 외교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광복 후 김성숙은 임시정부 환국 제 2진으로 12월 3일 귀국한다.

제 34회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셋째줄 가운데 있는 인물이 운암 김성숙
1944년 임시정부 조직도. 국무위원회 명단 가장 우측 초록색에 운암 김성숙 선생 

광복 후 국내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하던 김성숙은 그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1969년 4월 12일, 71세로 사망한다. 정부는 장례를 사회장으로 하고 조계사에서 영결식을 거행했다. 1982년에는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그는 중국 여성 두진훼이(杜君慧)와 결혼해 자녀를 두었다. 두진훼이는 조선의 딸을 자처하며 한국 독립운동에 몸 담았던 인물로, 2016년 애족장이 추서된다.

지난 4월 11일 KBS가 방송한 ‘내가 사랑한 아리랑’에 출연했던 중국인 피아니스트 두닝우는 운암 김성숙과 두진훼이의 손자기도 하다. 그 역시 올 3월 해외동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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