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임정수립 100년, 다시 만세] 8. 대한민국의 뿌리, 임시정부 완전정복
[3.1운동‧임정수립 100년, 다시 만세] 8. 대한민국의 뿌리, 임시정부 완전정복
  • 이로운넷=양승희 기자
  • 승인 2019.04.11 0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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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2.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100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인 ‘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에서 비롯됐죠.

3.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룬 ‘임시정부’ 수립이
올해로 100주을 맞이했습니다.

3.1운동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4.11 임정수립, 발자취를 따라가 볼까요?

4.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1919년 3월 1일, 3.1운동 독립선언
→ 4월 11일 중국 상해 임시정부 설립

한민족 최초의 민주공화국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 및 식민통치 부인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 주도“

          -자료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5.
‧ 대한국민의회(러시아 연해주)
‧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 상해)  ⇒ 상해 임시정부로 통합    
‧ 한성 정부(한국 서울)

“대한(제국)으로 망했으니 대한(민국)으로 흥하자”

6.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형태 
‘국민주권‧삼권분립’ 기초로 구성

임시의정원(입법부) 국무원(행정부) 법원(사법부)

7.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활동

‧ 연통제‧교통국 설치 → 국내외 잇는 비밀연락망
‧ 이륭양행(만주)‧백산상회(부산) → 독립운동 군자금
‧ 파리강화회의 김규식 파견 → 일제 침략행위 폭로
‧ 육군무관학교 설립 → 항일전쟁 위한 청년 교육
‧ 기관지 ‘독립신문’ 발행 → 독립운동 소식 전파

8.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위기

① 초대 대통령 이승만, 미국에 ‘위임통치 청원서’ 제출
 ⇒ 1923년 ‘국민대표회의’ 소집
 
‧ 창조파(신채호) vs 개조파(안창호) vs 현상유지파(김구) 분열
‧ 1925년 이승만 탄핵 이후 1927년까지 ‘집단지도체제’
 
9.
② 1931년 ‘한인애국단’ 조직해 주요인물 암살 계획
‧ 이봉창, 동경에서 일왕 폭탄 의거(1932.1) 
‧ 윤봉길, 상해 홍커우공원 폭탄 의거(1932.4) 

10.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고난

윤봉길 의거(1932) 이후 일제의 극심한 탄압 
상하이→항저우→난징→광저우 등 8년간 이동
1940년 ‘충칭’ 정착해 김구를 주석으로 옹립

11.
김구(한국국민당)+조소앙(한국독립당)+지청천(조선혁명단)
                       ⇓ 
                 ‘한국독립당’ 통일

‧ 조소앙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 채택
‧ 지청천 ‘한국광복군(중국‧연합군과 협력)’ 조직

12.
1945년 광복, 임시정부 요인 환국 준비

김구 ‘당면 정책 14개조’ 발표
“임시정부가 환국해 과도정부 구성한 뒤
주권‧헌법‧국기‧국가 등 모든 권위 양도 후 자진해체”

13.
미군정 vs 임시정부 갈등 
정통성 불인정, 국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환국 

→ 1948년 총선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되며 ‘해산’

                     자료출처:한국근현대역사학회

14.
1919년 수립부터 1948년 해산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정치‧외교‧군사‧교육‧문화 등 전방위적 역할을 했습니다.

15.
정부와 국민들은 10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활약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
‧ 4월 11일 임시공휴일로 검토
‧ 국제학술포럼 및 문화행사 개최 

16.
임시정부가 불어넣은 숨결,
오늘날 대한민국을 움직입니다.

‘19190411’ 여덟 숫자를 마음에 새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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