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젊은 청년들이 한산에 더 많이 와서 삶의 터전을 일궈 함께 잘 살면 좋겠다.”

처음 한산면에 왔던 날이 기억난다. 한산면 주민자치위원장님을 소개 받고, 인사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민 2800명이 살고 있는데, 매년 평균 100명씩 줄어들며 저출산 고령화 현상의 절차를 이미 오래전부터 밟고 있었다고. 정말 멀지 않은 미래에, 한산이 1500년을 이어온 전통자원, 사람들이 사라지고 소멸할 것이라는 걱정을 오랫동안 하셨다는 이야기와 우리에게 잘 정착해서 한산초등학교에 아이들도 보내고 같이 더불어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한산에 우수한 전통 자원들의 명맥을 이어온 자부심과 노력이 위원장님의 얼굴에서 물씬 느껴졌다. 사실 이날은 도시 청년이었던 내가 한산소곡주와 한산모시를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주민자치위원장님이 직접 집에서 빚으신 소곡주 3병을 선물로 받았다. 전통주라고는 막걸리 밖에 몰랐던 나에게 너무나도 생소하고 신기한 술이었다.

“평생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은 사람은 없는 술이여.”

너털웃음과 함께 전해주신 한산소곡주를 팀원들과 그 자리에서 3병을 다 마셔버렸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술이 있다니!" 처음 먹는 술에 모두가 감동 했다. 27년 인생에 한번도 들어본 적 없고, 맛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통감하며 소곡주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한산모시문화제의 청년기획단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문화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던 터라, 매일 저녁 한산에서 소곡주를 마시며 기획도 하고 소곡주에 대해 알아온 정보들을 나누며 진지하게 토론했다.

SINCE 635. 한국에서 가장 역사 깊은 술이라는 것, 백제 의자왕과 선대왕들이 즐기던 술로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무왕 37년(635년), 의자왕 16년(656년) 소곡주를 즐겨 마셨다'는 1500년 역사를 간직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 술이다. 예로부터 뛰어난 맛과 품질로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불렸다. 현재까지도 이어져 한산면 300개집에서 술을 담그는 대한민국 대표 가양주이다. 그 중 69개의 허가 양조장에서 소곡주를 유통하고 있다.

우리가 왜 앉은자리에서 3병을 다 먹었는지, 오랜 역사와 유래를 통해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우리는 저녁마다 도시에서 술자리에서 마시던 소주, 맥주가 아닌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지 않고 품질이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빚는 소곡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이 술은 온라인으로 마케팅이 잘 된 편은 아니다. 소곡주의 유래나 정보에 대해서도 인터넷에 쉽고 많은 정보들도 별로 없었다.

우리는 한산에 오는 많은 청년들에게 소곡주를 소개하면서 알리기 시작했다. 단맛이 많이 나는 소곡주로 하이볼을 만들어 먹어보기도 하고,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삶기술학교가 생기고부터는 많은 디지털노마드들의 홈술 메이트로 소곡주가 자리 잡았다. 밤새 소곡주와 함께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소곡주 밋업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누군가는 우리를 삶기‘술’학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출처=삶기술학교
출처=삶기술학교

그렇게 도시에서 한산으로 정착한 디지털노마드들이 즐기는 것에만 그치지 않게 된 계기가 생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판매를 주로 해왔던 소곡주 양조장들의 타격이 심각해 진 것이다. 실제로 매출이 30% 떨어졌다는 소곡주 조합장님의 걱정에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2020년 열악한 소곡주 농가를 돕기위한 ‘소곡주 사가자’ 프로젝트/출처=삶기술학교
2020년 열악한 소곡주 농가를 돕기위한 ‘소곡주 사가자’ 프로젝트/출처=삶기술학교

온라인으로 술을 대신 팔아주는 프로젝트를 해보자

2020년 추석에 진행 했던 '소곡주 사가자'는 20~30세대들에게 소곡주를 친근하게 알리는 단기간 온라인 마케팅으로, 700병 이상 판매하며 매출을 올려 취약 농가들을 도와준 프로젝트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산소곡주 판매를 온라인으로 전환하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일오백 프로젝트’다. 일오백 프로젝트는 디지털노마드들이 현대의 감각에 맞게 리브랜딩한 신선하고 맛 좋은 한국 최초의 술 한산소곡주를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것이다.

술을 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300개 양조장들과 계약양조 방식을 통해 열악한 환경의 양조장에게 판매된 수익을 배분한다. 한산소곡주의 다양성을 보존함과 동시에 쇠퇴하고 있는 전통주 사업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민과 정착한 도시청년들의 상생으로 지속가능한 삶

주민의 전통주 제조기술과, 디지털노마드의 아이디어 협력을 통해 한산소곡주의 매력과 우수성을 글로벌하게 알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쇠퇴하는 지역 산업의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로 진행하려 한다.

실제로 IT 글로벌 수출을 통해 주민들과 정착한 디지털노마드 청년들이 함께 상생하고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를 실현해보려 한다. 제3회 국제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1호 정하봉 소믈리에는 '품질이 좋은 원재료를 사용한 한산소곡주는 깊은 향미와 다양한 맛이 매력적인 한국 술이다' 라는 극찬을 듣고 기회를 잡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올해 삶기술학교는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함께 일할 수 있고, 로컬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며 지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노마드타운을 만들기 위해 일하면서 한달살기를 시작했다. 한산에 머물면서 소곡주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이터 소싱, 소곡주 온라인 유통, 일오백 프로젝트를 확산하기 위한 ‘소곡주’ 테마의 공간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

한산소곡주 판매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기위해 탄생하게 된 것이 ‘일오백 프로젝트’다./출처=삶기술학교
한산소곡주 판매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기위해 탄생하게 된 것이 ‘일오백 프로젝트’다./출처=삶기술학교

우리는 판매를 넘어 혁신에 도전하고 싶다.

매년 100명씩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소멸위기로 사라져가는 전통 산업을 디지털노마드의 새로운 시각으로 전환하여 대한민국 전통주 산업의 네고시앙 ‘일오백 한산’으로 주민들과 디지털노마드 도시 청년들이 함께 지속가능한 산업을 이끌어가려 한다.

한산에서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일오백 프로젝트는 5월 초에 와디즈 펀딩 런칭을 시작으로 혁신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만들며, 지역에서도 우리 청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이 달콤해질 날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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