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제가 보기에 어른들은 아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가다가 우리 지역이 이대로 사라질 거라는 걸요. 그런데 뭘 어떻게 바꾸는게 힘들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김혜진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공동체장은 지역소멸이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느끼는 지역의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이러다가 우리지역이 사라지면 군산이나 익산과 통합되겠지’라며 속상해 하신다”고 말했다.

김 공동체장은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지역소멸이 아니다. 그러려고 이곳에 내려온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역의 자원들을 활용해 청년들도 지역에서 잘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도 보였다. 그는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온 청년들이 재미있게 일 하면서 잘 지낸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지역의 전통 자원을 활용해서 잘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로운넷>은 ‘로컬에서 온 편지’ 코너를 통해 지역의 소식들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 ‘로컬에서 온 편지’ 필진을 대표해 충남 서천에서 다양한 소식을 전해온 김혜진 공동체장과 인터뷰를 진행 했다.

김혜진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공동체장
김혜진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공동체장

“저는 도시생활이 힘들었어요”

대학 때는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신축건물이라고 해서 계약을 하고 들어갔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벌레는 처음 봤다. 도시도 어둡게 느껴졌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표정이 없었다. 소모적인 느낌도 들었다. 취업에 성공해도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게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서 계속 지낸다고 삶이 나아질까?”, “경쟁으로 오히려 내 삶이 피폐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혜진 공동체장이 지역에서 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고향이 충남 천안인데, 주말마다 천안에 내려가 문화 기획하는 친구들의 활동을 구경했다. 무엇인가 만들어 나가는게 너무 재밌어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지역에서 사는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지역으로 내려왔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천안에서는 청년창업 사회적기업 '자이엔트'의 문화기획 파트에서 일을 했다. 현재 머물고 있는 한산 지역과는 2016년에 인연이 닿았다. 한산에서 전통 섬유 축제 ‘한산 모시 문화제’가 열리는데, 이 축제가 매년 우수관광 축제로 선정되다가 2016년에 떨어졌다. 당시 한산 모시 문화제를 운영하던 단장은 젊은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축제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고, 한산 모시 문화제 청년기획단이 만들어져 초청받아 가게됐다.

당시 한산에는 청년이 많지 않았다. 가장 젊은 나이라고 해도 50대였다. 김 공동체장은 “마을 어른들께서 우리가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활기가 생긴다며, 이곳에 남아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어 보라고 이야기 해 주셨다”며 “그렇게 기획활동을 했고, 꾸준히 활동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빈집을 개조한 아트스테이 '노란달팽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청년들이 넘나드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 자료를 찾아보던 중 행정안전부 사업을 알게돼 참여했고, ‘청년들이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이 시작되면서 2019년부터 주소지를 옮겨 살고 있다”고 했다.

출처=김혜진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공동체장
출처=김혜진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공동체장

“주민들과 계속 소통하고 대화해 나갔죠”

“저희가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요즘은 지역에 살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TV프로그램만 봐도 연예인들이 시골에 가서 밥해먹는게 하나의 방송 트렌드로 자리잡았잖아요. 지역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그런 프로그램도 생긴게 아닐까요?”

하지만 청년들이 지역에서 자리잡는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도 지역에는 ‘성공 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 ‘서울에서 일이 잘 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의도와 달리 지역 주민들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청년들을 보며 ‘기회를 뺏어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김 공동체장은 “어른들은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우리도 어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다 보니 마찰이 생겼었다”고 했다.

그래서 주민들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정착한 첫 해에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리를 만들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장 등 일손을 도우며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많이 만들었다. 김혜진 공동체장은 “한산 주민 수가 2700명 정도인데, 주민이 지금은 우리도 진짜 주민이라는 생각으로 잘 대해 주시고 많이 인정해 주신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거예요”

어려운 점은 또 있다. 지역에 사는 청년들이 많지 않다 보니, 지역에 정착한 청년들을 정치적인 요소로만 보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는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일 뿐인데, 어느순간부터 정치적인 요소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어느 편에 서지 않으면 도태되는 분위기가 지역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보니, 원래 해오던 일이 선거로 인해 중단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정치적인 세력에 의해서 정말 사소한, 하지만 계속 진행이 되어야 하는 일이 멈추는게 비일비재한 편”이라며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누가 지역에 내려오려고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 요즘에는 힘들어 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창업하는 사람들은 선거 기간에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죠.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우리의 일을 하는 거고요.”

출처=김혜진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공동체장
출처=김혜진 삶기술학교 한산캠퍼스 공동체장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오세요”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겪어 왔다는 그에게 ‘청년들에게 지역에 사는 것을 추천하는지’ 묻자 “반반”이라며 웃었다. 김혜진 공동체장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지역에서 해도 상관없거나,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는 추천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힘들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그는 “시골집을 고쳐서 사는 것도 큰 로망이고, 굉장히 좋은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 해야 할 게 정말 많다. 그 과정을 버틸 수 없다면 힘들지 않을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혜진 공동체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 쭉 있고 싶다”고 했다. 매력적인 자원이 많고, 굳이 농사일이 아니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이 지역에 있기 때문. 그는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즐겁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 계속 남아있는 것”이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지역에 있다면 오면 좋겠다. 지역에 오면 보이는 자원들이 많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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