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파랑' 책 이미지./출처=허블
'천개의 파랑' 책 이미지./출처=허블

‘콜리’는 부서질 걸 알면서도 낙마한다. 

콜리는 경주마의 속력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기수 휴머노이드다. 연구원의 실수로 ‘칩’이 잘못 부착돼 인간처럼 생각하고 소통할 수 있다. 그래서 콜리는 다른 기수 로봇과 행동이 다르다. 자신이 타는 경주마 ‘투데이’에게 말을 붙이며 안부를 묻고 교감을 시도한다. 교감은 투데이를 빨리 달리게 만든다. 그러나 인간은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투데이는 무리한 질주를 거듭해 연골이 닳고, 이전만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이번에도 순위권에 들지 못하면 투데이는 ‘쓸모 없는’ 말로 분류돼 안락사를 기다려야 한다. 콜리는 투데이의 죽음을 지연시키고 싶어 추락을 자처한다. 경기 도중 실격되면 다음 대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어서다.

하반신이 부서진 콜리도 이제 쓸모없는 로봇이다. 폐기를 앞둔 상황에서 ‘연재’가 콜리를 발견한다. 연재는 형편이 어려워 로봇개발의 꿈을 접은 학생이다. 자기 환경에 “몸을 맞추는 일이 성장”이라고 믿고, 이룰 수 없는 꿈을 붙들기보다 자신이 쓸모 있게 쓰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다. 
 
연재는 콜리를 수거해 고치고 대화를 시도한다. 연재가 콜리에게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투데이를 지켰다는 콜리의 사연은 쓸모에 존재가치를 두고 필요에 따라 관계 맺는 보통 인간의 마음과 다르다. 이후 연재는 투데이와 콜리의 회복을 도우며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는 것만이 삶의 가치가 아님을 깨닫는다. 나아가 스스로 놓쳤던 관계를 회복한다.

사람은 쓸모를 기준으로 사물에 가치를 매기고 분류한다. 고장 나 쓸모없어진 휴머노이드와 경주마를 폐기하는 것처럼. 이 잣대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서열이 생기며 더디거나 약한 사람은 배제된다. 

쓸모를 증명해야 배제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성은 상실된다. 그런 세계에서 연재는 역설적으로 폐기를 기다리는 로봇에게 인간성을 배우고, ‘고장’이 쓸모없음이 아니라는 것도 학습한다. 그리고 좀 쓸모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자문한다.

“다리를 고치고 싶다는 건 아냐. 물론 고치게 된다면 좋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하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소설은 또한 소통의 문제를 짚는다. 인간성이 부여된 휴머노이드는 말과 인간과의 대화에서 ‘호흡’을 살핀다. 표정을 보고, 맥락을 읽고 상대방의 ‘진짜’ 마음을 읽기 위해 애쓴다. 인간이 호흡을 살피는 법을 잊은 것 같은 지금의 시대에 이것 역시 기이한 아이러니다. 로봇이 오히려 인간다움을 실천하고, 제 능력을 잊었던 인간은 로봇을 통해 다시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와 관계 맺는데 “감정을 낭비하고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연재는 콜리와 대화하며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된다. 

◇천개의 파랑=천선란 지음. 허블 펴냄. 376쪽/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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