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 이미지./출처=허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 이미지./출처=허블.

단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등장하는 ‘마을’속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낭만과 성애가 없는 대신 불행이나 왜곡도 없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지만 배제하지도 않는다. 감정이 없기에 이곳은 유토피아다. 다름을 결함으로 여기지 않는 곳에서 마을 속 사람들은 행복하게 자란다. 

이들은 성인이 되면 지구로 ‘순례길’에 떠난다. 차별하고 미워하고 경계짓는 지구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격렬한 감정이 날뛰는 곳에서의 적응은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마을로 돌아올 수 있지만 순례자들은 계속 지구에 머물러 투쟁한다.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이들에게 원래의 마을도 더이상 유토피아가 아니다. 도피처다. 순례자들은 지구가 마을 같은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맹목적 행복을 누리기 보다 공존을 위해 애쓴다. 

너와 내가 공존하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단편 ‘스펙트럼’에서 과학자 희진은 조난당한 타 행성에서 외계 생물체 ‘루이’를 만난다. 언어가 다르고 모습도 달라 소통이 불가능하다. 루이가 쓰는 색채 언어를 해석하려 노력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완전한 타자”라는 걸 깨닫는다. 

그래도 희진은 포기하지 않는다. 루이 또한 자기 공간을 내어주며 희진이 머무를 수 있도록 배려한다. 희진은 지구로 돌아와서도 남은 여생을 루이의 색채 언어를 이해하는데 쓴다. “그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생물이다” 희진이 해석 가능한 문장은 그것 하나지만 그 문장을 발음할 때마다 미소짓는다.

김초엽 작가가 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SF단편집이다. 문명이 발전됐어도 차별과 배제가 여전한 세계에서 소설 속 주인공들은 공존을 위해 애쓴다.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공존이 가능하지만 이해의 과정은 지난하고 어렵다. 주류로 동화되는 것을 공존으로 착각하는 이도 있다. 

주인공들이 회의적으로 자문하는 순간도 있다. 타인에 대한 재단을 이해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정말 이해가 가능할까. 이해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고 끝끝내 우리는 고립되는 게 아닐까.

김초엽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이해가 '빛의 속도로 가는' 일만큼 어렵고 불가능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모든 단편에 수록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많이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소설 속 순례자가 스스로 다짐했던 것처럼 어쩌면 이해는 투쟁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해결되지 못한 고통을 붙잡고 공존을 모색하는 사회 아닐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지음. 허블 펴냄. 344쪽/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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