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설은 찾아왔다. 이번 설은 코로나 종식을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한 '거리두기 설'이다. 가족들과 안부를 묻고 각자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번 기회에 흐지부지된 새해 계획을 다시금 세우고, 올해를 알차게 보내기 위한 재충전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이로운넷>은 설을 맞아 올 한 해 활력이 될만한 책들을 추천한다.

찌질한 인간 김경희 표지./출처=빌리버튼.
찌질한 인간 김경희 표지./출처=빌리버튼.

김경희는 29살까지 두 번의 퇴사를 겪었다. 여전히 밥벌이는 필요했지만, 회사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책을 내고 글을 써서 인세를 받았다. 사업자등록을 하며 조금씩 돈을 벌었다. 책방 직원이 되기도 했다. 

하기 싫은 일을 ‘과감히’ 그만둔 김경희.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거기서 성취를 이룬 김경희. 결과만 보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필요할 때 결단을 내리는 사람 같다. 김경희는 아니라고 말한다. “남들보다 용기가 있어서, 대단해서도 아니다. 그냥 삶의 불확실성을 껴안기로 했다. 한 치 앞도 모를 앞날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날이 즐비해서 김경희는 위축됐다. 회사 일이 아닌 내 일을 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었다.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했다. 문제가 생기면 고스란히 자기 책임이었다. 불안했다. 고생했다며 자기 불안을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친구에게 토로하고 싶다가도 각자 삶을 감당하는 그들에게 자기 고단함을 성토하는 건 쉽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행복한가 자문하면, 그렇지 않았다.

“기댈 곳이라고는 카페 구석의 벽. 지하철 맨 끝자리 손잡이. 기댈 곳이 사람에서 사물로 변해간다.”

김경희는 그 불안에서 느낀 ‘찌질한’ 마음을 고스란히 적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누가 물으면 “원고 쓰고 있어요. 마감이 코 앞이라 바빠요”라고 말한다.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평소처럼 할 거 다 하면서 지내지만 별 볼 일 없는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다. 

남의 삶이 쉬워 보일 때도 있다. SNS에 올라오는 타인의 모습에 ‘부럽다. 잘풀렸다’고 생각하면서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소모했을 그 사람의 치열함은 생각하지 못한다. 5천만원을 모았다고 말하는 친구를 축하해주는 대신 ‘나는 스물아홉에도 5천만원을 가질 수 없구나’라며 작아진다. 

심리상담사가 김경희에게 “고민 없냐”고 물었을 때 그는 행복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심리상담사는 그 반복이 자기합리화의 증명이라고 답한다. 김경희의 얼굴은 벌게진다. ‘자기합리화...자기합리화...’ 몇 번이나 되뇌이다가 결국 다 쏟아낸다. 퇴사부터 지금까지 자신 있게 시작한 일의 성과가 미진하다고. 남들은 저만큼 앞서 나가는 것 같은데 자신은 같은 자리에 고여 있는 것 같다고. 별 의도 없는 말을 뾰족하게 받아들이며 의기소침해지는 자신이 싫다고. 

포장하고 재단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김경희. 저자는 이 마음들을 ‘구차하고 찌질하다’고 표현하지만, 독자는 이 자학에서 위안을 얻는다. 실은 우리도 마찬가지여서다. 우리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 명확한 성취의 서사보다 지지리 궁상에 지지고 볶고 바닥까지 보여준 경험이고, 그걸 찌질하다고 인정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었다.

구차함과 찌질함은 성장의 동력이다. 저자의 말처럼 100% 완벽한 사람은 없다. 찌질함에 위축돼 움츠러들 필요 없다. 찌질함은 당연한 감정이다. 

찌질한 인간 김경희=김경희 지음. 빌리버튼 펴냄. 308쪽/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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