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책 표지 이미지./사진제공=와이즈베리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책 표지 이미지./사진제공=와이즈베리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 

능력이 곧 정의의 척도인 시대, 개인의 능력이 정말 공정하게 측정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현재의 능력주의 사회에 치명적인 결함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는 이가 등장했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다.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완벽에 대한 반론’ 등 저서로 유명한 샌델 교수는 2010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8년 만에 나온 이번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의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로, 직역하면 ‘능력주의의 폭정: 과연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나?’다.

저자는 책을 통해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됐다”라고 주장한다. 과도해진 능력주의로 인한 도덕 판단력 결여, 능력과 성과로 인해 생겨난 계급 격차와 세습화, 점차 무자비하게 진화해가는 능력주의 민낯 등이 그 증거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가 어떻게 불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지 등을 되짚는다. 먼저 첫 번째 챕터 ‘승자와 패자’에서 그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꼬집는다. 

승자는 자신의 승리에 대해 ‘내 능력으로 얻어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 보상이다’라며 우쭐해지고, 자신보다 덜 성공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게 된다. 반면 실패자는 ‘누구 탓을 할까? 다 내가 못난 탓인데’라고 여기며 자책한다. 소득 격차를 넘어 정신적 격차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 사이에는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결코 바꿀 수 없는 ‘운’이 작동한다. 특별한 능력을 갖춘 채 태어났거나 우연히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거나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된 불운 같은 변수 말이다. 이처럼 각자의 행운과 불운을 사회가 ‘공정한’ 기준으로 측정해 보완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일의 존엄성 하락과 노동자들의 분노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예전만큼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굴욕감이 삶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 챕터 ‘일의 존엄성’에서 사회적 기여 측면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카지노 왕과 고등학교 교사 사이의 보상 격차를 예로 들며 “일의 존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논쟁하자”고 제안한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 사회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는 ‘운’이 주는 능력 이상의 과실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인드로 연대하며, 일 자체의 존엄성을 더 가치 있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사회의 사례가 주로 나와 있지만, 거울처럼 한국 사회의 모습을 되비추는 책이다.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 때문에 우리의 교육·노동 현장에서는 어떤 차별이 발생하는지, 일상생활에서 어떤 소외가 발생하는지 반성하며 돌아보게 된다.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420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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