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은 어렵다. 사랑이나 우정처럼 추상적인 개념을 추구하고, 소비보다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행자와 원주민, 지역의 관계 등 말이다. 이런 관계는 수치로 측정할 수 없어 스스로가 공정여행을 잘하고 있는지 알기도 어렵다. 공정여행의 성과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다. 개개인에게 어떤 경험과 변화를 선물했는지,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 왔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공정여행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과 지구가 함께 웃는, 원주민과 여행자가 모두 설레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가'에는 사람, 지역, 지구, 원주민, 여행자가 모두 행복한 여행기와 공정여행을 이루기 위한 고민이 담겼다. 책은 공정여행을 지향하는 ‘공감만세’의 프로그램과 함께한 저자의 경험을 근간으로 했다.

‘수리웡야이’가 만든 변화, 자리잡은 공정여행
저자는 이주민의 도시로 변해버린 치앙마이에 실망하고 차로 2시간 남짓한 거리에 나꽈우끼우를 방문한다. 이곳에는 '수리웡야이'라는 할아버지가 있다. 그는 사정이 어려워 은행에 땅을 빼앗겨버린 주민들과 함께 '농민회'를 결성하고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 판매했다. 수익을 통해 토지를 공동구매한 뒤에는 학남장이라는 농민 조직을 만들었다.

이후 마을은 외부의 변동이나 압력에 구애받지 않는 자립형 농촌 공동체로 변모해갔지만,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많았다. 교육의료전기수도 등 외부 요인이 마을을 흔들었다. 근처에 외국인을 위한 은퇴 이민촌이 들어서 마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결국 수리웡야이는 마을 위원에 출마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구의원쯤 되는 선거였는데, 그는 "퍼능" 우리말로 "아버지는 1번"이라는 선거 구호를 외치며 선거 활동을 펼쳤다. 결과는 참패. 태국에서 알아준다는 군인, 경찰 출신 경쟁자가 당선됐다. 그가 선거에 떨어지고 난 뒤 저자가 대표로 있는 공감만세는 마을에서 공정여행을 시작했다. 자립형 농촌 공동체 연구 도서관을 세우고, 폐교 시설을 개조했다. 살기 좋은 마을은 결국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마을이라 믿음이 있었다. 작은 인연, 소중한 관계가 마을에 공정여행이 자리 잡게 만들었다.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까 표지./YES24 홈페이지 갈무리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까 표지./YES24 홈페이지 갈무리

부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공정여행지...한국은?
부탄 여행비는 비싸다. 저자가 책을 쓸 당시 부탄에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하루 체류비만 200~250달러에 달했다. 제한된 곳에서 오는 비행기만 받는데, 3시간 남짓한 비행기 푯값은 100만원이 넘는다. 일주일만 여행하더라도 400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다만, 체류비에는 숙박, 식사, 차량과 함께 부탄 최고 수준의 엘리트 가이드 비용이 포함돼 있다. 

총 여행 비용에서 여행 관세는 30%가량이다. 이 돈은 부탄 행복정책의 근간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에 사용된다. 또한 부탄은 매년 500명의 학생을 해외로 유학보내주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들 중 조국에 돌아와 일하는 이가 99%에 달한다. 사적이익과 공적이익이 결합 돼 모두가 혜택을 받는 구조가 공고하다. 

이런 성과 덕분에 여행자를 맞이하는 부탄 국민의 태도는 호의적이다. 누군가 부탄에 여행 오는 일이 자신의 이익을 증가시키는데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유명 관광지인 제주도는 어떨까? 저자는 "제주도 관광 산업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 누구도 팽창한 관광산업의 혜택이 나의 직접 수입이나 수혜와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성과를 어떻게 나누고,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 국가와 국민이 함께 갈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제야 고민을 시작하는 실정"이라고 꼬집는다. 

부탄이 완벽 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부탄의 지역기반관광 사례에서 앞으로 한국의 관광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의 욕망 분출을 위한 소비와 쾌락으로 점철된 해외여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잘못하면 나의 자식은 관광화로 폐허가 된 동남아의 어느 휴양지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사회의 관계를 바꾸는 변화
일본 공정여행가들이 대전을 찾았던 사례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 여행을 통해 공정여행이 현지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나아가 공정여행을 통한 사람 간의 만남이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한다.

일본 공정여행가는 대전을 돌아보며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처와 역사적 사실을 자연스럽게 접한다. 40년 밖에 되지 않은 숲, 유성 5일장에 위치한 '을미의병 사적비', 대전근현대사전시관, 철도 관사청까지 모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의외로 이들을 맞이하는 지역 주민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 할머니는 "일제는 지독히 나빴지만 몇몇 선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한다. 일본인 전체를 원망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한 시장 상인은 보기 힘든 손님이 왔다며 인심 좋게 먹을 걸 더 내어주기도 한다.

역사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일본 공정여행가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전쟁은 잘못된 것입니다. 피해자 중 하나로 유명한 강상중 교수도 우리 집 근처에 살아서 잘 아는데,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다만 평범한 일본 사람을 너무 가해자인 양 몰아붙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걸어가며 누군가가 한 이야기에 일본 공정여행가들 모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까=고두환 지음. 선율 펴냄. 320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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