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행정수도 네피도의 2월 첫날 아침은 여느 때와 달랐다. 새벽부터 군 병력을 가득 실은 트럭과 장갑차가 의회 의사당과 정부 청사 건물 주변에 몰려들었다. 군인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도로를 차단했으며 모든 여당 의원과 정부 고위 관리 자택에도 군인들이 파견되어 모두 연행했다.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의 관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는 시작되었고 반나절 만에 속전속결로 마무리되었다.

이미 뿌려졌던 군부 쿠데타의 씨앗

쿠데타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뜬금없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8일에 5년마다 있는 의원 총선거가 치러지고 집권 여당인 민주주의민족연맹(NLD)이 친군부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에게 예상보다 훨씬 더 압승을 거두면서 쿠데타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군부는 반세기 동안 실질적으로 미얀마의 모든 권력을 독점해왔다. 군부가 국민들의 민정 이양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헌법 개정을 통해 무늬만 민정 이양을 하게 된다. 전체 의석 4분의 1을 무조건 군부에 할당하게 하고, 핵심 3부인 국방부, 내무부, 국방경비부 장관은 군부가 임명하며 무엇보다 의회 다수당이 간접 선거로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게 한 것이다. 또한 국방안보 평의회를 헌법 기관으로 두고 평의회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즉시 모든 권한이 대통령으로부터 군 최고사령관에게 이관되도록 했다. 군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정치에 개입할 제도적 장치를 튼튼하게 만들어 뒀다.

군부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두 번의 총선거 결과

미얀마의 유명 모델 파잉 타콘이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의미로 3개의 손가락을 편 사진을 자기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태국 민주화 시위 이후 손가락 3개 펴기는 동남아에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미얀마의 유명 모델 파잉 타콘이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의미로 3개의 손가락을 편 사진을 자기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태국 민주화 시위 이후 손가락 3개 펴기는 동남아에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부분 민정 이양 후 치러진 2010년 총선거는 군부의 계획대로 진행됐다. 군부 출신이 옷만 갈아입은 USDP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부정 선거를 치렀고, 신생 야당 NLD는 선거 자체를 보이콧했다. 결과는 군부의 압승이었다. 민정 이양을 해도 군부의 기득권이 크게 침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자 15년간 자택 연금 상태였던 아웅산 수지도 석방했다. 문제는 아웅산 수지를 중심으로 완전한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미얀마 국민들의 요구가 강력하게 터져 나온 2015년 총선거였다. 야당인 NLD는 전체 의석 4분의 1이 군부에 자동 할당되는 불리함을 안고도 전체 의석의 59%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미얀마 군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것은 민정 이양 이후 두 번째로 치러진 2020년 총선거의 결과였다. 상·하원 전체 의석수는 664명인데 군부에 자동 할당 된 166명을 제외한 498명에 대한 선거가 치러졌다. 미얀마 선관위가 치안 불안을 이유로 일부 선거구를 폐쇄해서 최종적으로 476명을 선출했는데 여당이었던 NLD는 395석을 차지했고, 친군부 USDP는 겨우 25석을 얻는 데 그쳤다. 10년간 치러진 두 번의 총선 결과는 미얀마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군부는 현 선거 제도 아래서는 시간의 흐를수록 권력의 핵심에서 차츰 배제될 수밖에 없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미얀마 군부의 빅 브라더로 민정 이양 이후 10년간 군 최고사령관 직을 차지하고 있던 민 아웅 흘라잉은 군부를 대표해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USDP는 지난 총선거가 부정선거라며 1200여 개의 부정 사례를 선관위에 고발했는데 선관위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대부분 기각한 바 있다. USDP와 군부는 2월 1일에 부정선거 조사를 위한 특별 회기를 열자고 의회에 요청했으나 의회 또한 선관위가 이미 최종 판결을 내렸다면서 거부했다. 군부가 직접 행동에 나설 충분한 명분을 제공한 셈이었다. 의회에 특별 회기를 요청한 날이 쿠데타 날이 되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시험대에 올린 군부 쿠데타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미국이 오바마 행정부 때 설정한 ‘아시아 회귀’ 전략을 시험대에 들게 한다. 중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진출을 억제하고 동남, 서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인데 후임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중심주의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오바마 2기라고 할 수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아시아 회귀 전략으로 다시 선회하고자 하며 그 중심에는 중국과 전략적 이해가 엇갈리는 미얀마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가 장기간에 걸쳐 경제 제재를 하는 동안 미얀마를 통치하던 군부의 생명줄은 중국이었다. 중국으로의 수출 규모는 미얀마 전체 수출의 30%를 차지한다. 중국이 없으면 군부는 생존의 기반을 잃게 되니 항상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경우 시진핑 주석이 사활을 걸고 있는 국가 차원의 아젠다 ‘일대일로’ 정책의 실현 무대 중 하나가 미얀마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인도양에서 안전한 해상 수송로를 확보하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 홍콩, 하이난항에서 시작해 파키스탄 과다르항을 경유하고, 케냐 라무항과 탄자니아 바가모요항을 거쳐, 최종적으로 남아공 리처드만항에 이르는 이른바 ‘진주목걸이’ 전략을 실현하고자 한다. 미얀마 서부 해안의 무역항인 시트웨항과 짜욱퓨항은 진주목걸이의 일부로 꼭 필요하다. 시트웨항은 미얀마와 인도 동북부를 연결하는 물류 항고고, 짜욱퓨항은 중국 본토 윈난성 성도 쿤밍까지 연결되는 원유,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의 시작점이다. 

선택할 카드가 많지 않은 미국, 미얀마 국민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

군부의 저항세력 색출 위협이 있지만 미얀마 국민들은 자신의 SNS에 손가락 3개를 편 사진을 게재하며 저항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게 얼굴은 반만 노출했다.
군부의 저항세력 색출 위협이 있지만 미얀마 국민들은 자신의 SNS에 손가락 3개를 편 사진을 게재하며 저항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게 얼굴은 반만 노출했다.

서로의 전략적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미얀마 군부와 중국 공산당 정부는 순망치한의 관계가 된 지 오래다. 미얀마에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도 걸려있지만 절실함의 정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비록 미얀마 군부에 엄포는 놓았지만 미국이 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다. 현재로서는 경제 제재와 국제 사회를 통한 외교적 고립이 유일한 카드인데 경제 제재는 미얀마 군부가 더욱 중국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유엔 안보리를 움직이는 것도 중국의 반대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자신의 면을 살리기 위해 큰 실효성은 없겠으나 채찍(경제 제재)과 당근(경제 지원) 전략을 병행하며 군부와 타협을 해서 최대한 실리를 챙기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이번 군부 쿠데타는 군부가 다시 미얀마 정국의 중심에 우뚝 선다는 신호탄이다. 이미 1년간의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올해는 군부가 미얀마를 다시 통치하게 된다. 비상사태가 끝나면 다시 총선거를 치르겠다고 했으나 권력의 완전한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가 아니다. 지난 경험을 토대로 군부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헌법을 뜯어고친 후 하게 될 선거라 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향후 정국이 군부가 계획하는 대로만 풀려갈 것인가? 그 키는 이미 군부의 총칼에 굴복한 여당이 아니라 미얀마 국민에게 달려있다. 더는 군정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민주적 사회로 이양할 것을 간절히 원하는 미얀마 국민의 소망은 지난 총선에서 표심으로 분명히 드러난 바 있다.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여당의 권력은 빼앗았는지 모르나, 민주화를 향한 미얀마 국민의 열망은 전혀 꺾지 못했다. 미얀마 국민이 앞으로 어떤 행동에 나서느냐가 앞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총알은 신념을 뚫지 못한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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