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그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 또한 거세지는 중이다. 모든 상황이 현재진행형이라 우리의 관심은 오랜만에 동남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얼마 전 홍콩에서는 우산혁명이, 태국에서는 대규모 반왕정 시위가 있었다. 최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민주화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데 미얀마 반 군부 시위도 그 연장선에 있다. 여러모로 2010년대 초반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휩쓴 재스민 혁명이 오버랩된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통해 동남아에 대한 인식의 지평 확대

1681년 당시 바타비아 지도. 운하를 통해 구역별로 나눴음을 알 수 있다.
1681년 당시 바타비아 지도. 운하를 통해 구역별로 나눴음을 알 수 있다.

미얀마 상황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해서 더 관심이 증폭되는 이유도 있지만, 그럼에도 관련 보도의 양과 질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동남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특파원의 수박겉핥기식 기사나 단순 외신 요약 수준을 벗어나 한국어가 능숙한 미얀마인을 라이브로 연결해 현지 상황을 한국 시청자에게 바로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미얀마 청년들 또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러 언어로 즉시 업데이트하며 세계 여론을 움직이고 있다.

이번 민주화 시위는 미얀마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대한 우리 인식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회를 더욱 깊이 이해하려면 피상적인 정보를 통해 얻는 선입견을 벗어야 한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를 할퀴고 간 수해 관련 보도가 좋은 예다.

우리나라 겨울이 인도네시아의 우기인데 툭하면 열대성 폭우가 쏟아져 자카르타 곳곳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는다. 자주 반복되는 물난리라 그런지 우리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한다. 배수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도심 주요 도로가 거대한 수영장이 된 사진을 보며 개도국 정부의 무능함을 그냥 비웃고 만다.

자카르타의 고질적 수해 문제와 근본 원인
사실, 폭우가 쏟아지면 자카르타에 물난리가 나고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이유는 지반이 계속 내려앉고 있기 때문이다. 움푹 꺼진 지형이 만들어지다가 도시 배수시설이 감당할 수 없는 강수량의 비에는 도시 전체가 피해를 본다. 수해 원인을 사회 인프라의 부실함에서만 찾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면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항해시대가 도래하자 영국은 1600년에 인도양과 동남아시아에서 향료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동인도회사를 만든다. 2년 뒤 네덜란드 또한 독자적으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경쟁에 뛰어든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북부 해안의 작은 항구를 거점으로 삼고, 선조인 바타비 족의 이름을 따라 그곳을 바타비아라고 명명한다. 바타비아는 네덜란드의 동남아시아 식민지 쟁탈전을 위한 교두보가 된 후 계속해서 확장됐다. 

식민지배를 돕는 목적으로 건설된 운하
네덜란드인들은 바타비아에 격자 형태로 여러 개의 운하를 파서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눴다. 운하는 바다로부터 물품을 내륙으로 운송하기 쉬운 루트일 뿐 아니라 외부 침입으로부터의 방어에도 유리했다. 무엇보다 운하와 운하로 연결된 본국의 암스테르담을 머나먼 타국에 재현함으로써 향수병을 달래는 효과도 있었다. 운하의 또 다른 역할은 네덜란드인과 피지배계층의 구역을 명확히 구분해서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다.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던 네덜란드인들은 인종별 거주지역을 따로 만들어 두었고 서로 섞여 살다가 하나로 뭉쳐 저항할 가능성을 아예 막고자 했다. 

문제는 네덜란드인들이 운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 있었다.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자 운하는 오·폐수가 뒤섞여 악취를 풍겼고 온갖 질병의 온상이 됐다. 생활환경이 계속 열악해지면서 네덜란드 지배층은 거주지를 내륙 깊숙이 이전한다. 예전에는 생활용수를 운하에서 얻었지만 운하가 닿지 않은 지역으로 이전하고 보니 깨끗한 물의 확보가 큰일이었다. 곳곳에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파이프를 설치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한편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피지배계층에게 식수의 확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오염되기 전까지는 운하의 물을 사용했지만 운하에 의존할 수 없게 되면서 네덜란드 지배 계층처럼 지하수를 가져다 쓰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됐다. 

도시 전체 침하는 식민지 유산 

바타비아는 식민지 시대에도 자주 수해 피해를 입었다. 원인은 운하가 제기능을 못해서였다.
바타비아는 식민지 시대에도 자주 수해 피해를 입었다. 원인은 운하가 제기능을 못해서였다.

인도네시아는 1949년 네덜란드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한다. 독립 투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바타비아는 자바어로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자카르타로 개명됐다. 하지만 식민지 시절 특권지배층만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던 상하수도 시스템은 여전히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특혜였고 절대 다수 주민은 예전처럼 우물을 깊이 파서 식수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카르타 출발 당시 50만 명에 불과하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72년이 흐른 현재 인구는 무려 100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수도관을 통해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있는 주민은 전체의 4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여전히 지하수를 끌어다 쓰고 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자카르타 전역에 약 2500여 개의 우물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개인이 자기 집에 판 우물은 아예 집계도 되지 않았다.

자카르타 수도권의 인구는 2030년대가 되면 3000만 명대에 도달해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많은 인구가 생존을 위해 계속 지하수를 퍼올리고 물이 빨려 올라가서 빈공간은 계속 무너져 내리는 악순환이 계속 되니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침하되는 것이다. 2050년대까지 도시 면적의 50%가 완전히 침수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지경이다. 이처럼 지금 자카르타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350년간 지속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라고 해야 정확한 분석이다. 

민주주의를 찬탈한 군부 세력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미얀마 국민에게 우리 여론의 관심이 쏠린다. 그런 관심에 부응하고자 미얀마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에 대해 다양한 분석글이 나오고 미얀마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 또한 넓어지고 있다. 자카르타 수해 문제를 예로 들었는데 동남아시아 관련 여러 이슈에 대해 현상만이 아니라 본질까지 파악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동남아시아는 지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나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는 우리 관심의 영역에 놓아둘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눈을 들어 남쪽을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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