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회적 경제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쓴 김기섭 박사는 2016년 ‘우리나라 자발적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와 그 진화론적 이해’라는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의 새로운 진화과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사람들로 시작되고, 이들이 이용을 넘어 노동으로 결사하며, 이런 결사가 당사자 이익을 넘어 모두를 이롭게 하고, 마지막으로 이런 지향이 중층적으로 연계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화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자리한 수화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이관혁, 이하 '수화더하기')이 그에 적절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드러나지 않는 일상적인 단절과 배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

수화더하기는 조합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조합 주된 조합원이 농아인이다. 청각장애로 인해 언어장애까지 갖게 된 이들이다. 61명 중 31명이 장애가 있는 조합원이고, 나머지는 이들을 돕기 위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2015년 12월 12일 창립해 오는 3월 3번째 총회를 맞는다.

처음 이들이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만들려는 게 목적이 아닐까 넘겨짚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만든 목적은 거의 ‘저항’에 가까웠다. 아무도 손 잡아주지 않는 현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지금 상황에 대한 ‘부드러운 저항’이었다.

청각장애인으로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불편해 소통을 위해 구화술까지 배웠다는 이관혁 이사장은 “농아인 문화를 향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TV를 보는 건데, 이 마저도 통역과 자막 없이 그냥 보는 것”이라고 했다. 장애가 없는 이가 소리를 끄고 TV를 보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방에서 TV밖에 볼 수 없는 ‘단절’에서 벗어나, 장애만 아니라면 누구나 아주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을 장애인도 함께 누리자는 생각이 협동조합 설립을 이끌었다. 누구의 의도된 기획도 아니었다. 창립총회 전 열두 번의 발기인 회의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고도 견고하게 형성된 내용이었다.

그래서 정관에 농아인의 ‘권익보호와 권리증진’을 목적으로 두고, 문화서비스 제공과 교육을 사업으로 명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문학 강좌와 ‘뉴스 풀어 이야기하기’, 양초 만들기와 목공 특강 등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또한, 그림그리기와 네일아트, 커피핸드드립 등 취미프로그램 운영도 병행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농아인 교회 한쪽을 리모델링해 카페를 만들었다.

조합 설립에 산파역할을 한 윤미자 상임이사는 “이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무시와 배제를 당하고 세상과 단절되는 게 일상 자체”라며 “장애가 있는 조합원 중 절반 이상이 일자리가 있는데, 이들에게 일자리는 말 그대로 단순히 돈을 버는 공간이지, 소통이나 자아실현, 사회생활의 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장애가 잘 드러나지 않다보니 일상적인 단절과 배제 역시 드러나지 않는 다는 것. 그는 “진짜 생존만을 위해 일하는 것에서 벗어나 남들과 동일하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그 틀을 만들자는 게 협동조합 설립 취지였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 수화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 이관혁 이사장과 윤미자 상임이사
2018년 정기총회 모습(사진제공 : 수화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

사업적 현실 “잘 지키는 게 제일, 잘 버텨야죠!”

박 이사장과 윤 상임이사는 올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잘 지키는 게 제일이죠, 잘 버텨야죠!”라고 했다.

조합을 해야 하는 간절한 이유에 비하면 고단함이 묻어나오는 대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델 자체가 사업성과는 거리가 먼 모델이기 때문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이기에 앞서 본질은 이용자 협동조합이다. 조합원은 단절과 배제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이용하고자 조합에 가입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대가로 일정 정도의 이용료를 낸다. 그러나 이 이용료는 사업적으로 의미가 없다.

그래서 현재는 상근자도 없고 이사장과 상임이사, 이사들의 노력봉사로 조합을 꾸려가고 있다. 카페에서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음료를 판매하긴 해도 유동인구가 많지 않을뿐더러 애초부터 공동체 공간적 성격이 강했기에 카페 역시 사업적으로 고전이다. 조합원에게 이용료를 많이 받는 것 역시 조합을 만든 취지와 역행하기 때문에 쉽지 않고, 조합원 형편 역시 녹녹치 않다.

카페를 포함해 전체 매출이 2018년 1천만 원이 채 안 된다. 수입에서 상당을 차지하는 게 이사회 회비 수입이다. 이사들이 회의를 할 때 마다 참석수당을 받는 게 아니라 회비를 내고 이를 조합 운영에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용료 수입은 작년 고작 87만8천원이다.

윤 상임이사는 “사업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조합 목적과 사업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래도 조합 설립 취지를 지속적으로 살려 나가기 위해 어떤 사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미프로그램 활동을 통해 만든 조합원 작품을 카페에 전시하고 있다.

조합원 참여율은 65%, “먹고사는 문제로 문화향유에서 배제되는 것을 극복하는 과제”

A. F. 레이들로 박사는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에서 ‘결의는 협동조합의 생명선’이라고 했다. 공통의 필요충족을 위해 통일된 방법으로 결의한 사람이 협동조합의 가장 큰 힘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화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은 건실한 조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해 이용자 조합원의 조합 사업 참여율은 65% 정도이다. 이 수치는 법인 설립 이후 지금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후원자 조합원은 취미나 문화프로그램 운영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고 또 임원들은 재정운영까지 책임지고 있다.

윤 상임이사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일을 하고, 일 때문에 지쳐 문화 향유는 생각조차 못하는 조합원들이 많은 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게 우리의 과제 중 하나며, 사업적으로는 미미하지만 우리 조합을 이끌어 가는 힘은 조합원의 필요에 의한 참여”라고 했다.

“이용을 넘어 다양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 이사장은 “삶에 너무 많은 제약이 있는 농아인의 문제를 해결해, 단절과 배제, 낙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협동조합이 지향하는 바”라며 “문화향유 배제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복장애 등으로 인해 일하기 힘든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 노동활동 개발, 사회적협동조합의 소액대출과 상호부조 사업을 활용한 조합원 돈의 문제 해결, 미래 설계를 도와주는 가계재무 상담 등이 그것이다.

윤 상임이사는 “조합이 조합원의 재미있는 놀이터이자 삶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한다”며 “더 나아가 지역의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는 협동조합과 연대해 어려운 이들이 근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의 성패를 사업의 규모로 판단하는 요즘 상황에서 수화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목적과 수단의 작동방법, 주체와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조합원 자녀들도 취미 프로그램에 참여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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