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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과 지방분권전국회의는 올 한 해 동안 '지방분권'에 관한 담론들을 이슈화하는 데 서로의 역량을 모으기로 하고 공동기획으로 <지방분권으로 지역소멸과 인구절벽을 막자>라는 기획 특집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이기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기우 명예교수
이기우 명예교수

"게마인데는 국가보다 중요하고 게마인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민이다(Die Gemeinde ist wichtiger als der Staat und das Wichtigste in der Gemeinde sind die Bürger)". 

 지방자치에 관하여 독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이다. 독일 초대 대통령이었던 테오도르 호이스(Theodor Heuss)가 1953년 6월 독일 지방자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라이헤르 폼 슈타인(Freiherr vom Stein)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게마인데(Gemeinde)는 지방자치단체로 번역될 수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도 풀뿌리 기초지방자치단체이다. 게마인데는 주민들이 국가를 처음으로 접하는 곳이고, 주민들이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함께 형성하는 곳이다. 이 점에서 게마인데는 국가의 기초가 된다. 슈타인도 "자유로운 게마인데는 자유로운 국가의 초석이 된다"라고 했다. 

 게마인데는 국가공동체를 이루는 최소의 지역적인 단위가 된다. 이는 세포가 생명체를 이루는 최소 단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코끼리와 같은 거대한 생명체의 세포도 작은 다람쥐의 세포와 마찬가지로 작다. 세포의 크기가 이처럼 작은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에 최적의 크기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세포의 표면적을 가능한 넓게 유지함으로써 물질대사와 노폐물의 배출을 원활하게 하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세포의 크기는 세포의 종류와 기능에 따라 차이가 있다. 타조알과 같이 큰 세포도 있지만 진핵세포의 경우에는 대체로 10-100μm 정도이다. 만약 세포의 크기가 10배로 늘어난다면 정상적인 생명현상이 유지되기 어렵게 된다. 

 국가의 최소 단위인 게마인데도 마찬가지이다. 주민들 간의 정보소통을 긴밀하게 하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하여 공동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게마인데의 규모가 작아야 한다. 이에 많은 철학자와 국가학자들은 정치공동체의 규모에 큰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루소, 몽테스키외, 토크빌 등의 대학자들은 예로부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작은 공간에서만 실현가능하다고 하면서 작은 국가의 원칙을 강조했다. 

 특히 스위스의 역사학자인 아돌프 가써(Adolf Gasser)는 "민주주의는 작은 공간에서 날마다 실제적으로 행사되고 실현되는 곳에서만 큰 공간에서 건강한 발전가능성을 가진다"고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작은 지방단위에서만 공동체윤리를 구성하는 집단적인 신뢰와 집단적인 법적 신념이 형성되고 내외적으로 전체주의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저항정신이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역사적으로 확인하였다. 1920년까지 유럽 전역에 선거제도를 비롯한 민주주의와 인권이 헌법에 보장되었지만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풀뿌리의 작은 공간에서 지방자치가 자리잡지 못한 국가에서는 이를 지켜내지 못하고 자유민주주의가 붕괴되는 '민주주의의 떼죽음'을 초래하고 전체주의 국가로 전락하였다.

그는 이러한 지방부자유의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권력적 관료주의에 의해 싹트는 죽음의 씨앗을 잉태한 '병든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반면에 영국이나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같이 작은 규모의 지방단위에서 오랫동안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린 국가들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었다. 그는 이러한 지방자유의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불렀으며 유럽을 전체주의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풀뿌리 기초지방자치에 기반을 두고 유럽을 아래에서 위로 형성할 것을 역설하여 국제조약인 유럽지방자치헌장으로 결실을 맺었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나라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규모는 우리나라보다 매우 작은 편이다. 세계에서 지방자치가 가장 발전된 스위스에서는 인구가 870만에 불과하지만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게마인데의 숫자는 2131개나 된다(2024년 현재). 게마인데의 평균규모는 약 4000명 정도이다. 또한 게마인데 중에서 90%는 인구규모가 5000명 이하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규모가 이보다 훨씬 더 작아서 평균 약 1800명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인구가 5000만명을 넘는데 기초지방자치단체는 226개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평균규모는 약 22만7000 명이나 된다. 스위스에 비해 우리나라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규모는 약 55배가 크다. 세포의 크기가 55배로 커진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대한민국에서 지방자치와 국가의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발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병든 민주주의가 된다.

(표1)각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규모(2015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규모가 이렇게 커진 것은 잘 알려진 것처럼 1961년의 군사정부가 읍면자치를 정지하고 군자치를 도입하였고, 1988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에서 이를 무비판적으로 법제화했을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시군통합을 무리하게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규모는 세계에서 가장 크며, 다른 나라의 광역지방자치단체 수준의 규모에 근접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풀뿌리 기초자치가 없다. 역대 정부의 권력적 관료주의에 의해 풀뿌리 기초자치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도 주민들은 실명의 구체인 인간이 아니라 추상화된 숫자로 존재하게 되어 주민이 주도하는 지방자치를 체감하기 어렵다. 주민은 지방자치의 주체로서 존재감을 느낄 수 없고 행정의 관리대상이 된다. 주민은 지방행정의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한다. 주민은 지역공동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책임을 지는 주체가 되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행정이 해결해 주도록 끊임없이 요구하는 행정의존적 고객으로 전락한다. 주민들이 자력으로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지는 주체적인 시민을 육성하는 지방자치의 본래 목적은 실종되고 만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된 이후 풀뿌리 지방자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대응하여 중앙정부는 2000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를 전국적으로 도입하였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자치권이 없어 관변단체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비판이 신랄하게 제기되었다. 이에 행정안전부에서는 2010년부터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주민자치회의 근거를 마련하고 2013년부터 시범실시를 시작하였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시범실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미 2021년 말에 1213개의 읍면동에 주민자치회가 설치되었다. 

 주민자치회는 양적으로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체감자치는 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으며, 주민자치회에 참여하는 의욕적인 위원들은 "이게 무슨 자치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자치회는 여전히 관변단체로서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풀뿌리 지방자치와는 거리가 멀다. 행정안전부가 풀뿌리지방자치를 실현한다고 24년이 넘도록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동원해서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회를 확산시켜왔다. 하지만, 주민의 체감자치는 실현되지 못하였고 주민의 자치의식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높여 행정만능주의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실패한 모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실패이유는 간단하다. 중앙정부 주도로 도입한 주민자치위원회나 주민자치회가 풀뿌리 지방자치와는 거리가 먼 제도였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읍면동에 지역문제를 자기책임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자치권과 과세권, 자치조직권을 부여하여 제대로 된 풀뿌리 기초지방자치를 실시할 생각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대신에 주민자치위원회나 주민자치회라는 관변단체를 만들어 풀뿌리자치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무마하고 무력화시키려 했다.  

 풀뿌리 기초지방자치를 실현하는 방법 또한 간단하다. 모든 선진국에서 오래전부터 실시하여 경험이 축적되고 성과를 거두고 있는 수준의 규모에서 제대로 된 기초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하면 된다. 농촌지역의 읍면과 도시지역의 동이 선진외국에 비하여 규모가 약간 크긴 하지만 그나마 가장 근접하는 기초지방자치의 지역적이고 기능적인 단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표2) 읍면동의 규모

자료= 행정안전부, 2023 행정안전통계연보
자료= 행정안전부, 2023 행정안전통계연보

 선진국에서는 우리의 읍면동보다 작은 규모의 기초자치단체에게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계획권, 자치조직권, 자치인사권 등의 자치권을 부여하여 지방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한다. 우리나라 주민의 교육수준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점을 감안하면 읍면동수준에서 기초지방자치를 실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읍면동자치를 한꺼번에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염려가 앞선다면 자치의지와 자치역량이 구비된 읍면동부터 순차적으로 시범실시를 하고 보완하여 확대해 가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카운티로부터 시티나 타운이 독립해서 풀뿌리 기초자치단체를 형성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읍면동수준의 지방자치는 구태여 대의기관으로 지방의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으며 주민 전원으로 의결기관을 구성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전원의회). 권력이 집중되는 지도자 원칙에 의한 독임제 집행기관 대신에 협동의 원칙에 의한 합의제 집행기관으로 하는 것도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무부(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가 읍면자치를 폐지하고 세계 지방자치사에 유래가 없는 관변단체인 주민자치회와 주민자치회를 만들어 풀뿌리 자치로 위장한 것은 작은 공간에서의 풀뿌리 기초지방자치에 대한 철저한 불신에 기인한다. 독일 지방자치의 아버지인 슈타인이 1808년 개혁정치의 일환으로 지방자치를 도입하면서 "신뢰는 인간을 고귀하게 하고, 영원한 후견은 인간의 성숙을 저해한다(Zutrauen veredelt den Menschen, ewige Vormundschaft hemmt sein Reifen)"고 설파하였다. 

  읍면동 수준의 '주민자치회'는 관변단체로 전락하여 순수한 민간자율활동 조직으로서 보기어렵고, 지방자치(주민자치)와 성격도 다르며, 실시 단위도 규모가 잘못되어 실패한 모델이므로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풀뿌리 지방자치로 위장한 주민 '자치'회의 명칭도 명실상부하지 않다. '자치회' 개념이 지방자치의 개념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자치회'를 설치해야만 주민자치(주민의 자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제대로 된 게마인데자치(풀뿌리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는 스위스 등의 자치 선진국에서는 '주민자치회'가 없어도 주민자치가 잘 실현되고 있다. 우리의 통반리수준에서 순수하게 비영리적인 민간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의 근린회(neighborhood association)나 일본의 정내회(地縁団体) 등은 주민의 친목도모와 공동관심사의 논의를 위해 바람직하지만 이것을 지방자치(주민자치)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다른 나라에서 기초자치단체가 담당하는 교육, 소방, 경찰과 같이 기본적인 생활자치 사무조차도 광역자치단체가 처리하고, 재정수단도 광역위주로 배분되어 있다.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는 풀뿌리자치 단위로는 규모가 너무 크다. 체감적인 생활자치는 작은 공간인 읍면동 수준의 규모에서만 실현가능하다. 공동체윤리와 책임감을 갖춘 시민은 바로 이 작은 공간에서 일상적인 자치경험을 통해서 육성된다. 풀뿌리 지방자치는 시민을 육성하는 시민학교(Bürgerschule)이다. 민주적인 역량과 민주적인 정신을 가진 시민이 없이는 국가수준에서 실질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일상적인 자치경험을 통해서 민주적 시민을 육성하는 읍면동수준의 풀뿌리 기초자치는 국가보다 중요하다. 

 

이기우 프로필: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현), 향부숙지도교수(현),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 의장(전) 

저서: 스위스의 지방분권과 자치(2021, 2인공저), 이제는 직접민주주의다(2016), 분권적국가개조론(2016), 연방주의적 지방분권에 관한 연구(2010, 2인 공저)

역서: 유럽의 구원으로서 지방자유(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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