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내와 사별하고 2년 만에 재혼을 해서 새 가정을 이루게 된 50대 가장입니다. 비록 한번 어려운 일을 겪고 재혼을 했지만 새로 이룬 가정을 행복하게 꾸려보겠다는 기대를 품고 재혼을 하게 됐습니다. 각자 아이를 한 명씩 데리고 재혼하는 상황이라서 처음에는 서로 적응하는데 힘이 들수도 있을거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든 일이 많아서 당황스럽습니다.

제 아내가 된 사람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멀쩡한 침대를 바꾸자고 했습니다.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서 바꿔줬습니다. 아직 한참 더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는 게 아까웠지만 허락을 했지요. 그랬더니 이번엔 부엌 살림을 사들이고 멀쩡한 그릇들을 내다버렸습니다. 소소한 살림들은 무슨 돈으로 사는지? 집에 들어갈 때마다 뭔가 자꾸 없어지고 새것으로 채워져서 남의 집 같습니다.

저희 집은 단촐한 편이라서 제사가 딱 한 번 밖에 없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다 죽은 아이들 엄마 제사만 간단하게 지내면 되지요. 낳아준 엄마 제사상을 정성껏 차려주면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고 집안도 편안할텐데 그걸 안하려고 합니다. 평소에는 참 좋은 사람인데 고집을 부릴 때는 꽉 막혀서 말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애들하고 잘 지내려면 이 정도는 해야된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꼼짝을 안합니다. 재혼할 때는 예상도 못 했던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가끔 집 현관문이 지옥문 같습니다.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제 인생은 왜 이럴까요? 첫 결혼은 사별로 끝났고 재혼마저 위태로우니 저는 불행만 달고 다니는 놈 같습니다.       

-재혼남 B-

B 선생님 많이 지친 것 같네요. 살다보면 이런 날들이 있지요. 찬바람이 휘몰아 치다가 몇 날 며칠 비만 와서 천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 될 때도 있잖아요. 그런 날에도 우리가 묵묵히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언젠가 바람이 그치고, 보이지 않지만 비구름 위에 여전히 해가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우선 새로운 가정 이루신 것 축하드립니다. 여러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잘 헤쳐 나오셨네요. 제 조언이 도움이 될지 자신은 없지만 두 가지만 말씀 드려볼게요.

출처=Getty Images Bank
출처=Getty Images Bank

첫 번째는요. 즐거운 나의 집은 없습니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화목하게만 지내면 더 바랄것이 없겠지만 세상 사람들 사는 모습은 거의 비슷해요. 부부란 원래 다글다글 싸우기도 하잖아요. 애들은 또 왜 그럴까요? 전교 일등도 못하는 주제에 늦잠을 자고 어른들한테 대들기도 하지요. 버르장머리 없이 제 방 문을 꽝 닫고 들어가기도 합니다. 못된 친구와 어울려서 속을 태우기도 하지요. 그 못된 친구의 부모들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 애는 착한데 못된 애들하고 어울려서...”

B 선생님은 사별하고 재혼을 하셨으니 좀 더 완벽해보이는 가정에 대한 꿈이 컸을거라고 짐작합니다. 이번에는 남들처럼 화목하게 오래 잘 살아야지 다짐을 하셨겠지요. 그리고 많이 노력도 했을겁니다. 이제 마음을 조금 느긋하게 먹어보면 어떨까요? 간혹 다툼이 있어도 괜찮아! 사춘기 애들한테 고분고분 하기를 바라는건 지나친 욕심이야! 완벽한 집 따위는 없어! 가족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시되 완벽한 결과를 기대하지는 마세요. 앞에 말씀드렸듯이 즐거운 나의 집은 없어요. 가족이란 얼굴만 봐도 즐거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때론 못마땅하고 혀를 끌끌 차다가 문득 애틋하기도 하지요. 온전히 즐겁고 행복하기만 기대하지는 마세요.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가정들도 알고보면 어딘가 부족하고 조금씩 삐걱거리면서 산답니다.

두 번째 드릴 말씀은요. 사모님께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마세요. 기대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상대를 원망 하시면 안 돼요. 남편 전처의 제사상을 차리는 일이 가족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을 요구해서도 안되고 선생님 뜻대로 안됐다고 실망하지도 마세요. 

사자를 초대하면서 채소와 과일만 잔뜩 차려놓거나 배고픈 코끼리에게 스테이크를 주면 환영받을까요? 선생님은 전 부인의 제사를 잘 차리면 애들도 새엄마를 잘 따를 거라고 기대하시지만 사모님이 꿈꿨던 결혼 생활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 다름과 차이를 찬찬히 살피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면 더 많이 보이고, 더 잘보여요.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자면, 즐거운 나의 집은 없습니다. 그런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우리 삶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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