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아래서 노래하면 좋겠어요 / 소풍도 가고 / 와인도 마셔요 / 예쁜 돗자리 깔고 / 
사진도 많이 찍어요 / 꿈같은 시간.. / 소풍이란 말에 이렇게 울컥 할 줄이야 / 
우리 꼭 가요. 벚꽃 만발 할 때 / 아 생각만 해도 좋아요 / 꼭이요”

이것은 안네의 일기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제 친구(대구에 사는 여성 다섯 명)들이 메신저로 나눈 대화예요. 

2월 중순이 지나면서 코로나19는 소멸되는 듯했습니다. 곧 평화롭던 일상을 되찾겠지! 숨 쉬기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마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2월 18일을 기점으로 대구, 경북은 영화에서나 보던 일을 일상에서 경험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깊은 동굴 속에 사는 괴물처럼 실체가 보이지 않는 엄청난 공포가 삶의 터전을 점령했습니다. 매일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는 확진자와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숫자를 들으며 눈 뜨는 아침. 집 근처에서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과 구급차를 자주 보게 되는 일상이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

혹시 내가 누군가를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안에서만 지내야 합니다. 막상 나가려고 해도 갈 곳이 없습니다. 자주 가던 찻집과 식당들은 거의 문을 닫았고 텅 빈 거리에 나갔다 오면 더 불안하고 우울해 집니다. 친구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안네의 일기처럼 애달픈 내용이 되거나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남자는 결의문이 되어 버립니다. 일상이 재난 영화처럼 변해버린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극장의 푹신한 의자에 깊숙하게 앉아 팝콘을 먹으면서 보던 영화 속 장면들이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지요. 재난 영화에는 슈퍼 히어로가 나타나서 상황을 평정하거나, 전직 영웅이었으나 평범했던 아빠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가족을 구하는 결말이 많습니다. 아! 터미네이터에는 엄마가 전사로 등장하는군요. 현실은 영화와 달라서 재난은 계속 되는데 슈퍼 히어로는 등장하지 않지요. 벌써 수 주간 혼돈과 불안 속에 생활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이 됩니다.

정부에서는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제안 했습니다. 일정 기간 대면 접촉을 줄이고, 각종 행사나 모임을 최소화하고, 가급적이면 집안에서 생활하도록 장려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 시기에 정서적인 친밀도를 더 높이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전화나 메신저를 활용하거나 SNS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소박한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좋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표현해 보세요.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기쁨과 위안이 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역할은 계속할 수 있습니다.

바뀐 환경에 맞춰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이 오랜 시간 집안에서만 지내야 할 때는 행복만 가득하지는 않습니다. 갈등도 생기게 됩니다. 나는 대화를 하고 있는데 상대방의 귀에는 잔소리가 들어가기도 하고, 나의 염려를 참견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부탁이 명령처럼 들리는 순간도 있지요.

가족이 집안에 오래 머물기 때문에 늘어나는 가사노동을 적절하게 분배할 필요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리거나 미숙하다고 여기지 말고 적당한 일들을 찾아서 역할을 맡겨 보는 게 좋습니다. 잘 못하면 다시 시도해서 제대로 배우는 계기로 삼으면 됩니다. 잘 해내면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각자 회사, 학교, 학원으로 흩어지느라 못했던 일들을 시도해 보세요. 떡볶이나 팬케이크를 함께 만들어도 좋고, 어려운 퍼즐을 완성 시키는 것도 좋아요.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를 보면서 추억을 만들 수도 있지요.

어떤 사람은 재난을 틈타 자기 잇속을 차리는데 몰두하고, 어떤 사람은 나쁜 뉴스만 전합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것으로 자기 불안감을 해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 때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최대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생존 본능이기도 하지요. 그 본능은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추구하는 삶은 어떤 것이었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상상한적 없는 혼란 속에서도 ‘나였던 나’로 살 수 있다면 진정 용감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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