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호떡집] 1. 고마운 편지
[은밀한 호떡집] 1. 고마운 편지
  • 이로운넷=최호선 심리상담소 소장 겸 작가
  • 승인 2020.01.10 02: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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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가끔 내가 꽤나 쓸 만한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알버트 밴듀라 교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뿜뿜하는 상태다. TV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내 어깨 위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뽕을 잔뜩 넣어주겠지! 짧은 편지 하나로 잠시 기고만장한 기분을 누려본다. 나에게 뭔가를 물어봐주고, 내 조언이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편지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다정하면서도 굳센 마음을 적어 보내니 참 고맙다.

선생님~~기억하실랑가요~~ 저 이전에 아버지 임종 문제로 메세지 드렸던 **이에요~^^ 

아버지께서는 23일에 편안한 모습으로 임종하시고 어제 삼우제를 치루었습니다. 전에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글을 읽고 다음 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가 혹여나 절망하실까봐 말씀드리는 내내 미소 짓느라 온몸이 떨리더군요... 아버지께서는 우시는 어머니를 달래주시며 '나는 1%의 희망을 믿는다. 이겨낼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희망을 잃지 않으시고 저희에게 힘을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존경스러웠습니다. 선생님께 연락드리기를 너무나 잘 한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인생을 주도적으로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선물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집에 오니 사랑하는 아버지의 향기가 그득한 것이 외롭지가 않습니다! 아래는 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남을 비방하지 마라. 인생의 motto를 가져라.”

울 아부지 참말로 멋지지요!

아버지가 말기암 투병 중이라는 여대생의 고민을 들었다. 너무 슬프고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특히 아버지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 되는지 끝까지 모르는 체 하는 것이 옳을지 물었다.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이제 꽤 오래 전 일이지만 돌아보면 늘 후회되는 일이 있다. 나는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아버지를 보냈다. 그 때는 이미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상태였다. 곧 이별의 순간이 온다는 걸 모두가 알면서도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 아버지 귀에 대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사랑합니다” 했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한 번도 그 고백을 못하고 보내드렸다.

그때는 아버지보다 내가 이별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나는 아직 어렸고 내게 죽음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것이었다. 현실의 일로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 아무 준비 없이 허둥지둥 작별을 했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수 십, 수 백 번의 절을 했던 기억 밖에 없는 장례를 치렀다.

이별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게 되는 이유를 단순하게 분류하자면 세 가지 정도 된다. 첫째 당사자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둘째 가족이나 지인들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셋째 위 두 가지가 합쳐진 경우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가도 정승이 죽으면 안 간다”라는 속담에 드러나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당히 현세를 중시하는 사고를 하는 편이다. 조선 후기의 사회 문화적인 혼란을 겪고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근면과 성실로 번영을 이루자는 구호가 강조되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이 개인과 국가의 가장 큰 목적이던 시대를 지나왔다.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를 덕담으로 주고받으면서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갖기 힘들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생각으로 열심히만 살다가 어느 날 치명적인 상황에 노출되면 극도로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의 개성과 존엄을 유지하면서 품격 있게 삶을 마무리하기 보다는 그동안 살아 온 삶에 대한 회한과 상황에 대한 분노, 억울함 그리고 당황스러움이 자신과 가족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결국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합리적인 대처는 더욱 어려워진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희망과 같은 무게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는 일도 중요한데 그걸 놓치게 된다.

임종을 앞 둔 가족에게 그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운 가족들은 사별 후에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도 비교적 순조롭다. 슬픔의 무게가 다를 수는 없지만 애도 과정의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대처해나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죽음을 앞 둔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yes”다. 

최호선 소장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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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흥 2020-01-10 12:01:17
최호선 선생 글은 페이스북에서 읽고 있어요. 늘 누군가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글이라 불편할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친구를 끊지 않는건 그 마음에 진정성을 알기 때문이지요. 건승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