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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Utopia)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다. 차별과 계급이 없이 누구나 하루 6시간 일하고 남은 시간은 나름대로 교양을 쌓으며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세상이다.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세운 섬나라, 모든 인간이 평등한 ‘율도국(栗島國)’이 바로 그런 곳이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생계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 자급자족한다. 그곳에는 화폐가 없고 변호사와 상인 두가지 직업이 없다. 법률이 간단하고 쉬워서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 없고, 시장은 생활 필수품의 교환장소이고 화폐경제가 통용되는 곳이 아니니 상인도 있을리 없다. 불로소득도 없고, 빈부격차도 있을 수가 없다. 오직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만 있을 뿐이다.

욜로(YOLO)라는 말이 대중화된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래퍼 드레이크가 발표한 노래 ‘You Only, Live Once’가 선풍을 일으키면서 ‘욜로’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멋지게 즐기자는 것이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미국의 고학력 고소득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이른바, 파이어(FIRE)족이 생겨났다.

파이어는 경제적 독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은퇴(Retire Early)의 약자로 만든 신조어다. 이들은 하루 빨리 은퇴자금을 확보하고 일찌감치 은퇴를 꿈꾼다. 수익과 소비의 비중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제한된 소비만 하는 검소한 ‘린 파이어’(Lean FIRE), 여유로운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은퇴를 준비하는 ‘팻 파이어(Fat FIRE)', 부수입으로 은퇴를 준하는 ‘사이드 파이어(Side FIRE)', 은퇴 후에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것을 염두에 두는 ‘바리스타 파이어(Barista FIRE)'가 있다.

이즈음 재테크라는 유령이 나타나 노동으로 부터의 해방을 부르짖고 있다. 유튜브에는 온통 주식광고로 도배되고 환상에 사로잡힌 파이어족들이 개미떼 처럼 주식시장으로 몰려든다. 평생 일속에 파묻혀 번 아웃하기에는 인생이 짧다고 느꼈기 때문인지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과 실업수당, 주식 시장 호황을 틈타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인생의 대 전환을 시도한다. 한순간 클릭으로 벼락부자가 되고 알거지가 되는 것을 보면 노동의 가치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한다.

이른바 MZ세대라 불리는 신세대는 분명 삶의 방식이 기성세대와 다르다. 이들은 아껴서 부자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가진 것으로 최대로 즐거움을 누리며 살자는 소비 지향적 라이프 스타일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내집 마련의 희망도 사라지고 금리가 인플레를 따라가지 못하니 저축도 무의미하다. 뼈 빠지게 일해봐야 미래를 보장할 수 없으니 일단 즐기고 보자는 주의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전염병의 대유행이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토마스 모어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꾼 지 500년이 지난 이제, 인간은 세계 도처에 실제로 존재했던 천혜의 자연과 지상낙원마저 파괴해 가며 근대 물질문명을 이룩해왔다. 온통 돈의 노예가 되어 한탕주의가 노동의 가치를 송두리째 허물고 있다.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란 과연 이런 곳 일까? 왜 정치권력의 억압과 횡포에는 저항하면서도 경제적 불평등의 현실은 당연시 하고 저마다 부자가 되고 싶어 ‘가즈아’를 외치며 일확천금을 꿈꾸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우리 모두에게 부(富)의 유토피아를 약속했지만 기실은 마치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한쪽으로만 부를 쏠리게 할 뿐 결코 경제적 민주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 노동자의 인권은 사용자의 갑질에 짓밟히고 사회적 약자들은 발아래 풀잎처럼 신음하고 있다. 삶의 터전인 자연 환경마저도 파괴되고 상부상조하던 전래의 미풍양속은 팽배한 황금만능주의 앞에서 사라진채 사회가 날이 갈수록 각박해 지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삶의 가치일까?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일찌기 건설업으로 한몫 잡고는 지리산 골짜기로 들어갔다. 청정한 자연 속에서 그림같은 집을 짖고 아담한 농장에 약초를 재배하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세상 살이와 달리 분명 여유롭고 목가적인 일상이었다. 하지만, 절해고도와 같은 외진 곳에서 삶에 거는 새로운 희망과 역동성은 찾을 수 없어 솔직히 그리 부럽지는 않았다. 녹슬어 없어지기 보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더 보람된 삶이 아닐까 싶다. 

내 집 마련과 결혼을 포기한 MZ세대들이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차트에 울고 웃는다. 오늘날 파이어족이 바라는 유토피아는 어떤 것이고 그곳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허망한 유토피아를 쫒다보면 마음은 공허해지고 신경 말초적 쾌락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온갖 기만과 불법이 난무하게 되고 급기야는 전체주의 정부에 의해 억압받는 암울한 세상인 디스토피아(Dystopia)를 맞게 된다.

태풍이 불면 어떤 이는 담을 쌓고 어떤 이는 풍차를 돌린다. 위기 속에서 스스로 기회를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희망을 갈구하는 청년들에게 푼돈을 나누어 주기 보다 비전을 제시하고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정령 이 시대는 그런 지도자를 소망한다. 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안정적이고 안전한 일터다. 노동이야 말로 부와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결코 돈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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