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 헬프: 돌봄과 복지제도의 근본적 전환’ 책 표지 이미지./출처=착한책가게
‘래디컬 헬프: 돌봄과 복지제도의 근본적 전환’ 책 표지 이미지./출처=착한책가게

지난 2015년 ‘망가진 사회적 서비스를 고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TED 강연은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80만 넘는 뷰를 기록하며 영국 사회복지계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연사로 나선 사회활동가 힐러리 코텀은 연설의 원 제목대로 “사회 서비스는 망가졌다.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Social services are broken. How we can fix them?)”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해당 강연에서 코텀은 “실업이나 불운 등 때문에 위기에 처한 영국 가족들이 70개가 넘는 정부 부처를 통해 각종 사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어떤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대신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장 중요한 자원은 ‘관계’라고 강조한다. 서로 연결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 바로 ‘관계적 복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2018년 영국에서 출간한 그의 저서 ‘래디컬 헬프(Radical Help)’로 이어진다. 책 제목은 ‘근본적인 지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부제처럼 ‘돌봄과 복지제도의 근본적 전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내에서는 2020년 말 협동조합 착한책가게에서 번역과 출판을 맡아 한국어판으로 내놓으면서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책에서 코텀은 “단도직입적으로 진실을 말하자면, 전후 체제의 서비스와 기관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며 “20세기 만들어진 복지 체계를 가지고 21세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복지제도의 기틀이 된 ‘베버리지 보고서’가 21세기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낡았으며, 현재 우리 시대에 맞게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1부에서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점으로 형성된 복지국가 수립의 역사와 현재 드러난 문제점을 짚는다. 2부에서는 복지제도 전환을 위해 저자가 10여 년에 걸쳐 실행한 5가지 실험 사례를 소개한다. 3부에서는 5가지 실험을 위해 방법론으로 활용한 도구와 전략 등을 정리했다.

△첫 번째 실험 ‘가족의 삶’에서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일터도 건강도 희망도 없이 사회 밖으로 몰려난 가족의 어려움을 탐구했다. △두 번째 ‘성장하기’에서는 인간발달에서 중요한 형성기인 10대에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들여다본다. △세 번째 ‘좋은 일’에서는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점을 알아본다. △네 번째 ‘건강하게 살기’에서는 현대에 등장한 신체적·정신적 질병에 관해 다룬다. △다섯 번째 ‘잘 늙어가기’에서는 기존 기관이 감당하지 못하는 노년기의 욕구 등을 조명했다.

위의 실험에서 중심에 깔린 전제는 “문제가 생긴 뒤 사람들을 집단화해 그들의 욕구를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기존의 행태로부터 근본적으로(radical) 돌아서는 것”이다. 코텀은 개인‧ 가족‧지역사회가 건강하게 배우고 일하고 서로 맞닿으며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 탐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영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했지만, 한국에도 적용 가능한 여러 방법이 담겨 있다. 복지 사각지대와 불충분한 사회 서비스, 분절적이고 중복된 전달 체계, 부족한 재정 등이 공통적인 문제로 꼽히기 때문이다. 현 정부 역시 2018년부터 ‘커뮤니티케어’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펼치고 나섰고, 지난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지역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돌봄의 필요성은 더 부각되는 상황이다.

저자는 “수혜자에게 변화를 지시하거나 개선을 강요하는 대신, 그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다양한 관계를 통해 서로 돕고 나눔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경험을 통해 능력을 개발하도록 지원하자”고 주장한다. ‘당사자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고, 사회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래디컬 헬프=힐러리 코텀 지음, 박경현‧이태인 옮김, 착한책가게 펴냄. 376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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