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 서민을 위한 베르사유궁을 꿈꾸다' 책 표지 이미지./출처=교보문고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 서민을 위한 베르사유궁을 꿈꾸다' 책 표지 이미지./출처=교보문고

"임대주택은 한 사회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 사회의 구성원이 얼마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집은 사람이 존엄성을 갖고 생활하기 위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주택이 부동산이 아닌 주거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단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도시계획가이자 건축가 저자는 프랑스에서 7년 유학했다. 그는 거기서 외국인 신분으로 지냈던 삶이 한국에서보다 더 안정적이었다고 말한다. '집’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내내 같은 집에서 살았다. 주택 보조금까지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10년 동안 7번 이사했다. 한 번은 집주인이 전기 요금 아낀다고 엘리베이터를 못 쓰게 해서, 한 번은 아파트 재건축 때문에 퇴거 통지를 받고, 한 번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서.

저자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한국에서는 경제적인 이익의 문제를 둘째로 치더라도 생활과 안정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내 집’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모두가 집을 구매할 수는 없는 법. 몇 달 혹은 몇 년만 살고 나오고 싶은 사람도 있다. 임대주택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냥 임대주택이 아니라 쫓겨날 걱정 없는 임대주택.

저자는 프랑스가 주거 안정을 위해서 얼마나 촘촘하게 제도로 뒷받침하는지 소개한다. 국민 약 70%에게 ‘사회주택’이라는 임대주택에 들어갈 자격을 준다. 임대료가 저렴할 뿐 아니라 갑자기 대폭 오를 염려도, 경매에 넘어갈 걱정도 없다. 세입자가 월세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회주택 관리기관’에서 대신 내주고 나중에 갚게 하는 제도까지 있다.

그 돈은 다 어디서 오나. 역사는 19세기 중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자들이 살 주택을 위해 기금을 모으며 시작됐다. 이 기금은 법제화돼 사회주택 건설비용뿐 아니라 주거 보조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정부 재원 말고도 민간기업의 의무 참여가 있었기에 프랑스의 사회주택은 전체 주택의 17%에 달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내나 싶지만, 기금을 내는 회사 입사자에겐 사회주택 신청 자격이 생겨 오히려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요소가 된다.

사회주택은 허름한 데다 입지도 별로일 거라고? 저자에 의하면 프랑스 사회주택은 도시계획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있고, 첨단 건축 기법으로 시공하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주거 환경을 만든다는 공공적 가치를 고려해 도시 속에서 오히려 ‘특권’을 누리는 존재다.

저렴한 임대료로 질 좋은 사회주택에서 살 수 있어 다행이나... 매달 내는 월세가 여전히 부담이라면, 사면 된다. 일정 소득 이하 계층이 대상인 자가 전환 제도가 있다. 신청 후 일정 비용을 내고 의무 거주 기간만 지나면 그 사회주택의 소유주가 된다. 일반 주택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살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집을 갖게 된다는 것은 저소득층에게 큰 희망이 되고,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자산이 된다”며 이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사회주택 입주 자격은 프랑스 국민의 70%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프랑스의 주거 복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85%가 입주 자격이 있는 ‘중간주택’도 있다. 사회주택에 들어갈 소득 기준은 안 되지만 민간임대주택 입주는 버거운 이들을 위해서다. 최근 파리에서는 사회주택이 밀집한 지역에 중간주택을 짓게 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소셜믹스’도 이루고 있다.

프랑스 찬양으로 끝나는 책은 아니다. 프랑스도 나름의 고민이 있다. 파리의 경우 부자 동네 서민 동네가 나뉘어 있고, 서민 동네일수록 사회주택이 비율이 더 높다. 입주자 선정 과정에서 딜레마도 있다.

그렇지만 계속 노력한다. ‘균등한 도시’를 위해 부자 동네에 사회주택과 중간주택을 늘린다. 재건축하는 건물에는 의무적으로 사회주택 비율을 부여한다. 주택 소유자가 집을 놀리면 세금을 높게 물린다. 집이 필요한 사람이 살 기회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주거권 보호'가 가지는 의미는 우리나라보다 커 보인다.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최민아 지음, 효형출판 펴냄. 256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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