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단호박죽과 책임감1.'저자가 되면 책임을 져야 해요.'출판사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러니까 북토크, 북콘서트, 강연, 방송 출연 등, 책 판매를 위해 저자도 한 몫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한 요구다. 적어도 마음만은 그렇다. 2.지난번에 부끄러운 책을 하나 내고 나도 그런 과정을 겪었다. 강연, 인터뷰……그 정도는 나도 불만이 없다. 문제는 언제나 방송출연이다. 방송일정만 나오면 그때부터 머릿속이 하얘지고 식욕이 없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겠으니 말이다.3.결국 가까스로 두 번의 라디오방송을 치르면서 진행
18. 1. 텃밭을 하면서 김치 담그는 일이 잦아졌다. 이번 가을만 해도 동치미, 총각김치, 민들레김치 등, 밭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어떻게든 소화해야 했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소들이다. 그냥 내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2. 김장은 처가에 모여 함께 한다. 우리, 장모님, 처제 둘, 처남. 가평 텃밭에서 무와 배추를 실어가면 그때부터 1박 2일의 장정에 돌입하는 것이다. 첫 날은 배추를 절이고, 속에 들어갈 재료들을 씻고 자르고 채를 썰어두고, 다음날은 새벽부터 배추를 씻고 속을 버무려
17. 1.소셜미디어에서지만 요즘 나를 ‘사부’로 삼겠다는 중년남성들이 몇 분 있다. 물론 농담처럼 하는 얘기지만 실제로도 종종 자기가 만든 음식을 소셜에 올리고 자랑스럽게 요리법을 공개하기도 한다.아니, ‘사부로 삼을 생각’은 없다 해도 요리에 도전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과거에 요리를 했던 남자들도 이제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예전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2.얼마 전 만난 선배는 안식년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요리학원에 등록했는데 요리가 그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
16. 1.식탐도 술탐도 많다. 하루 일이 끝나고 저녁 시간만 되면 슬슬 술 한잔 생각이 나는데 직접 음식을 만드는 탓에 나도 모르게(?) 저녁 반찬은 술안주 비슷하게 되고 만다. 김치 찜, 감자탕, 닭발, 찜닭 등등. . . 결국 밥도 술도 과하기 일쑤. 2.문제는 뱃살이다. 살이 안찌는 편이건만 조금씩 조금씩 뱃살이 늘어난 것이다. 지금껏 별로 개의치 않던 아내도 내 나이가 60가까이 되자, 서서히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어휴, 이 뱃살 어쩔겨!” “건강검진 가면 상복부 초음파 신청해요. 아무래도
15. 1. 어릴 때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막걸리를 팔았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셔서 툭하면 “야, 가서 막걸리 받아와라”시며 다 찌그러진 주전자를 들려 보냈다. 가난하던 시절, 당시는 대개가 외상이다. “언제 갚는다고 또 외상이야?” 지금 기억으로도 아주머니는 투덜대면서도 늘 그렇게 막걸리를 따라주곤 하셨다. 2. 아주아주 어린 나이지만 막걸리는 당시에도 어렵지 않게 마셨다. 아버지 몰래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는 건 기본이고 어느 집에서 막걸리를 담그는 날이면 친구 놈이 몰래 지개미를 훔쳐와 나눠 먹기도 했다.
14. 총각김치와 일상의 변화1.“요리가 바꾼 것”이라는 테마로 원고 청탁을 받았다. 원고지 매수는 겨우 5매.사실 음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바뀐 것이 하나 둘은 아니다. 밥상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고 요리 솜씨가 바뀌고 가족 내에서의 입지가 바뀌고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아내와의 관계가 바뀌고 무엇보다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2.과거 번역과 음식 밖에 모르던 번역쟁이는 이렇게 음식 칼럼을 쓰고 방송에도 나가고 여기저기 원고청탁도 받으며 글밥까지 벌고 있다.이게 모두 부엌을 떠맡고 난 뒤 벌어진 일이다. 그 신기한 얘기를 겨우
13. 곱창전골과 닭살 부부1.우리 부부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내가 늘 집에 있기 때문인데, 여행, 지인의 결혼식, 쇼핑 등 우리는 어디든 함께 다니려 한다. 여느 나이든 부부와 달리 집에서 지내는 시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가벼운 접촉도 자주 있는 편이다. 길을 가면서도 손을 잡고, 집안에서 동선이라도 부딪치면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안아주기도 한다. 2.집에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후 서서히 바뀐 습관이기에 나로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심리학에서도 애착은 긍정적 정서를 만들어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12. 시래기밥은 위대하다 1.지난 8월 말 무 파종을 했다. 새들이 무 씨와 싹을 좋아하는 탓에 파종을 한 후 검은 망사비늘로 파종 이랑을 덮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못가 동강동강 허리가 잘린 싹들만 남고 만다. 사실 내 욕심은 무 자체보다 파릇파릇한 무총에 있다. 가을 추수를 할 때 무총을 따로 잘라 베란다에 널어 말리면 귀하디귀한 식재료, 시래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 2.시래기는 최고의 식재료다. 무침, 찌개, 탕, 어느 음식이든 시래기가 들어가면 맛은 무조건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주로 해장국, 된장국, 돼지감자
11. 가지밥과 수확의 계절1.- 올해 고구마가 어때?- 잘 안됐어요. 여름에 그렇게 가물더니 물 찾아 깊이 파고 드느라 크지를 못했나 봐요. - 다 그런가 봐. 충청도 사는 처남네도 수확이 반 밖에 안 된다네. 2.이웃 농막 어르신이 오시더니 혀를 끌끌 차신다. 은퇴 후 이곳에 농막을 짓고 노부부가 운동 삼아 거의 매일 출근하는데 텃밭도 넓고 벌써 10년도 훨씬 전이라 갖춘 것도 많으시다. 자식들 다 출가하고 이제 노부부만 사신다는데, 수확할 때마다 늙은 호박, 들깨도 넉넉히 나눠주시고 농기구도 얼마든지 빌려 쓰시라며 도와주신다.
10. 국민음식 ‘돼지고기김치찌개’와 깨달음의 과정1.음식을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쌓이는 지식, 상식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나물은 소금물에 데쳐야 초록빛을 유지하고 변색을 피할 수 있다. 냉동고기는 살짝 얼었을 때 썰어야 쉽다. 등 푸른 생선은 기름기가 많아 팬에 구울 때 식용유가 필요 없다 같은 것들이다. 지금이야 식구들이 주문만 하면 뭐든 뚝딱 만들어낼 정도지만 처음 부엌에 들어갈 때만 해도 하나하나가 다 장애고 난관이고 고통이었다. 이 나물은 양념을 뭐로 하지? 죽순은 데쳐야 하나 삶아야 하나? 계란프라이는 기름을
9. 형님 생각과 콩나물국밥1.공부를 시작한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1983년 1월, 폐결핵으로 의병제대 한 후 아현동과 명동 등지에서 인쇄소를 다녔다. 문제는 여전히 중환자인 탓에 작업 도중 툭하면 코피를 쏟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결국 인쇄소를 그만두고 형한테 고백했다. 가정형편에 도움이 되려 했지만 몸이 이래서 미안하다. 조금만 도와주면 대입공부를 하고 싶다.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는 1975년에 따놓았으니 이제 졸업자격 검정고시 준비부터 해야 했다. 형님은 “그 말 해주기를 기다렸다”며 순순히 동의해주었다. 난 학원에
8. 기숙사로 간 딸과 오징어볶음1.딸은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2학기에는 용케 대학기숙사 응모에 당첨돼 한 시름 놓았다. 집에서 다닐 때는 툭 하면 늦잠을 자거나 밤늦게 돌아오는 통에 솔직히 상 차리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아침에 아내와 아들을 먹여 내보내면 딸은 9시~10시나 되어야 부스스 방에서 나온다. 2.대학생이니 제 밥 제가 찾아먹을 수 있지만, 그래봐야 기껏 라면을 끓이거나 빵을 집어 제 방으로 들어간다. 이왕이면 제대로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 3.그렇게 4~5일 보지 않고 지내면 내 속도, 손도 편하건만 막상 기숙사로
7. 깻잎찜과 선택의 기적아내를 부엌에서 풀어주자고 생각했을 때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당연한 선택이기는 했다. 아내는 직장에 다니고 나는 회사를 그만 두고 몇 년 전부터 집에서 작업하고 있으니 아닐 이유가 없다. 문제는 자신감. 과연 내가 음식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괜히 며칠 하다가 포기하면 더 우스워질 텐데 괜히 애먼 고생 사서 하는 것 아냐.15년이 흘렀다. 난 포기도 하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또 음식도 제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뭣보다 덤까지 얻었다. 아내는 100프로 나를 신뢰하고, 아이들도 아빠를 다시 보기 시작했
1.어릴 적, 어머니의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여섯, 일곱 살쯤 부모는 이혼하고 그 이후 계모가 두 번 바뀌었다. 계모들도 금세 떠난 탓에 기억도 없지만 그때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탓에 그 후로도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한 적은 없다. 2.당시 나와 동생의 밥은 중학교 1학년생 작은누나가 챙겨주었다. 누나는 학교를 다니고 어린 동생들을 먹이고 목욕도 시켜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음식을 한다기보다 대개 이웃집 반찬을 얻어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3.그래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하
고추반찬 3형제와 텃밭농사1.텃밭이 있는 가평 북면은 추운 곳이라 작물도 가림이 크다.마늘은 겨울에 동사하기 일쑤고 배추도 일조량이 작아 맘처럼 크지 못한다.옥수수는 아직 성공한 적이 없고 오이, 호박은 매년 들쭉날쭉이다.뭐든 제대로 하고 싶건만 일주일에 한 번밖에 가지 못하는 데다나름 친환경 농법이라 아직은 시행착오가 더 많다.2.그나마 감자, 고구마는 그럭저럭 수확이 괜찮다.가장 확실한 작물은 고추다. 병충해도 심하지 않아 친환경농법으로도 충분하다.매년 배추는 줄이고 고추를 늘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나중에 말려서 고춧가루를 만들
이로운넷을 풍성하게 할 외부 필진을 소개합니다'김재춘' '박승호' '손종수' '이강백' '이진주' '조영학'1. 김재춘 가치혼합경영연구소 소장인간과 삶의 실상에 관심이 많은 공익활동가이다.24년 전 광고회사와 벤처회사에서 기획 일을 시작했지만 마음에 뜻한 바 있어 종교단체에서 수행생활을 하기도 했다.이후 비영리 분야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했고, 잠깐 행정과 정치 분야에 몸담기도 했다.다양한 분야를 넘나든 경력과 경험을